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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매뉴얼·교육, 정부·지자체 유기적 협조 필수

중앙선데이 2017.11.26 01:00 559호 5면 지면보기
포항 지진 그후, 피해 줄이려면
22일 서울 중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지진대응 훈련이 진행됐다. 어린이들이 머리 보호를 위해 방재모자를 쓰고 있다. [사진 서울 중구청]

22일 서울 중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지진대응 훈련이 진행됐다. 어린이들이 머리 보호를 위해 방재모자를 쓰고 있다. [사진 서울 중구청]

2016년 11월 22일 오전 5시59분쯤, 일본 후쿠시마 인근 해역에서 규모 7.4의 지진이 발생했다. 경주(규모 5.8)나 포항 지진(규모 5.4)보다 훨씬 강한 지진이었다. 당초 지진이 새벽 시간에 발생해 피해가 클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대피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상자가 20여 명 발생한 것 외엔 별 피해가 없었다. 비결로는 일본 정부의 발 빠른 대응과 평소 지진 관련 교육이 철저히 이뤄져 왔다는 점이 꼽힌다. 실제 이날 지진 발생 3분 만에 총리 관저에 연락실이 설치됐고, 18분 후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국민에게 해일, 피난 등에 관한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할 것, ▶조속히 피해 상황을 파악할 것, ▶자치단체와 협력해 재해 응급 대책에 전력을 기울일 것 등의 대책을 지시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지진 발생 1시간20분 만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진으로 놀란 국민들을 다독였다. 지진 발생 직후부터 NHK와 후지TV 등 일본 방송사들도 긴급으로 지진 관련 소식을 내보냈다.

‘고객 대피 후 따뜻한 음료 제공’
매뉴얼 따른 백화점 별 피해 없어

95년 6434명 희생된 일 고베
방재 시스템 전부 뜯어고쳐

캘리포니아는 지진 교육 의무화
관련 자료 인터넷 통해 주민 제공

 
일본도 고베 지진 때 쓰라린 경험
흔히 지진 대응 선진국으로 일본이 꼽힌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진에 잘 대응했던 것은 아니다. 1995년 고베 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 때에는 6434명이 목숨을 잃고, 4만3792명이 다쳤다. 이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은 재해대책기본법을 비롯한 각종 법령을 정비했다. 방재 관련 시스템도 뜯어고쳤다. 대피소 대책, 이재민 생활 재건 지원제도, 자원봉사자와 구호물자 관리 체계 등도 확립했다. 특히 지진 피해가 컸던 고베시는 지진을 비롯한 각종 자연재해 관련 지식과 대피 방법 등을 담은 ‘생활 속 방재 가이드’를 만들어 각 가정에 배포했다. 재해 시 대피 장소를 실내(토사재해, 홍수, 해일 시)와 야외(지진, 해일, 화재 시)로 나누어 명칭과 소재지, 전화번호 등을 상세히 담았다. 지진 등 대규모 재난 시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해 우선 업무도 정했다. 지진이 발생하면 한 달 동안 응급 대응과 재해 복구 등에 주력하면서, 평상시 업무 중 중단할 수 있는 일부는 중단해 행정력을 재난 극복에 집중하기 위한 조치다.
 
지난해 경주 지진에 이어 올해 포항 지진까지 발생하면서 지진 선진국 못잖은 지진 대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민국도 이제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어서다. 
 
물론 우리 정부도 노력 중이다. 지난해 9월 발생한 경주 지진이 방아쇠가 됐다. 우선 이번 포항 지진에서 확인된 대로 긴급재난문자(CBS) 발송 체계를 기상청으로 일원화했다. 또 지진대피소의 위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 옥외대피소 8155곳과 실내구호소 2489개소를 구분해 지정했고, 네이버와 다음 지도 등에 이를 수록해 대피소의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올 하반기부터 신축하는 모든 주택에 대한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경주 지진 당시 저층 주택들의 피해가 특히 컸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하지만 이번 포항 지진에서 확인된 대로 지진이 발생한 이후 사후 대책 등은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은 형편이다. 박하용 행정안전부 지진방재정책과 서기관은 “지진 방재 종합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지난해 말 수립한 ‘지진 방재 종합대책’을 꾸준히 추진 중이고, 내년에는 5년 단위의 중장기 계획으로 포항 지진과 관련한 내용들을 보강한 ‘2차 지진 방재 종합대책’을 수립해 지진 대비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우선 제대로 된 지진 매뉴얼이 필요하다. 허둥거리다가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매뉴얼의 힘은 이번 포항 지진에서도 확인된다. 
 
한 예로 포항 지역에서 점포를 운영 중인 롯데백화점은 자체 지진 발생 대응 매뉴얼에 따라 소비자들을 신속히 대피시켜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매뉴얼 내에는 소비자들이 놀라지 않도록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이후 따뜻한 음료를 제공하라는 등의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롯데백화점 측은 지진 발생 다음 날인 16일 휴점을 하고 서울에서 급파된 시설안전팀 등 전문가 20여 명을 동원해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했다. 오용석 롯데백화점 수석은 “백화점은 많은 소비자가 이용하는 대규모 시설인 만큼 점포별로 평소 화재와 지진 대피 등의 훈련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며 “임직원들이 사용하는 모바일 앱에도 위기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지진 발생 시’ ‘태풍 발생 시’ ‘구제역 발생 시’ 등 다양한 경우에 대비해 관련 내용을 숙지하도록 해 놓았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과 학생들을 위한 지진 대비 교육도 필수다. 미국 내에서 지진 위험이 가장 큰 캘리포니아주는 주(州) 재난관리국(Cal OES)이 주 교육부, 총무부, 지진 안전위원회 등과 함께 유치원부터 14학년까지 사용할 교육용 교재를 개발하고, 각급 학교들은 이 교재를 활용한 지진 대비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토록 하고 있다. 또 인터넷 등을 통해 관련 자료들을 일반 주민들에게도 제공한다.
 
행정기관과 민간 영역 파트너십 있어야
한국의 경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지진 대비와 관련해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익명을 원한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가 운영하는 국민재난안전포털과 안전디딤돌앱에 잘못된 대피소 정보가 게재돼 있어 이를 수차례 지적했지만 최근에서야 수정이 이뤄졌다”며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 원활한 협력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지진대응법제 전문가인 이진수 영남대 로스쿨 교수는 “지진은 그 속성상 짧은 시간 동안 피해가 발생하지만 피해 규모는 대단히 크다”며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정확한 경보 체계를 바탕으로 지역사회 내에서 꾸준한 지진 교육과 공공 행정기관 상호 간, 그리고 행정기관과 민간 영역 간에 끊임없는 파트너십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기·이유정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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