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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판 수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미래 없다

중앙선데이 2017.11.26 01:00 559호 2면 지면보기
사설
11·15 지진으로 인해 일주일 연기됐던 수능이 무사히 마무리됐다. 경북 포항 지역에선 시험이 치러지기 전후에도 여진이 이어졌지만 수험생이 대피하거나 시험이 중단되는 등의 우려했던 재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포항을 방문해 “전체 수험생들이 다 중요하지만 1%가 안 되는 포항 지역 5600명 학생들의 안전과 공정함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연기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가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으며, 이후 모든 입시 일정을 순차적으로 조정하는 등 혼란을 최소화한 점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여기에 다른 지역의 수험생과 학부모도 어려움에 처한 포항 지역 수험생들을 격려하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인내와 배려심을 발휘했다. 온 국민이 나서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 사태를 극복한 것이다.
 
수능이 결과적으로 혼란 없이 치러진 데 안도하면서도 연기 결정의 중요 요인이었던 공정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때가 됐다. 지난 23일 오후 1시10분부터 30분 동안 인천공항 인근 상공에서는 총 15대의 항공기가 지상 1만 피트 고도에서 선회했다. 영어듣기평가 시험 때 비행기의 이착륙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전국의 모든 학생이 동일한 시험을 같은 시간에, 그것도 단 한 번만 치러 거둔 점수가 공정함의 잣대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수능 시간 때마다 비행기 이착륙을 금지시켜야 하고, 공공기관의 출근 시간도 한 시간 늦춰야 한다. 출제 위원들은 한 달 이상 감금 생활을 해야 하며, 정답이 두 개인 문제가 나오면 나라가 절단 날 것 같은 혼란을 겪어야 한다.
 
상당수 수험생은 ‘금수저 전형’이라고 비난받는 학생부종합전형 등에 비해 수능이 훨씬 더 공정한 시험이라고 믿는다. 이때 공정함이란 실력 외에 다른 요인, 즉 부모의 배경이나 가정 환경, 경제력, 입학사정관 등 평가자의 주관 등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객관식 오지선다로 나온 정량적인 점수가 인성평가 같은 정성적인 평가 결과보다 더 공정하다는 믿음도 관여돼 있다.
 
이번 수능 1교시 국어 시험에서 환율의 오버슈팅(overshooting·시장 가격의 일시적 폭등 또는 폭락)이나 디지털 통신 시스템 부호화 과정을 소재로 한 어려운 지문이 나와 수험생들이 짧은 시간에 지문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문항의 출제는 변별력 확보라는 말로 포장돼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누군가는 틀리게 하기 위해 고교 교사나 대학 교수도 이해하기 힘든 지문을 내는 것이다. 수능은 이처럼 전국 59만 명 수험생을 상대로 촘촘히 줄을 세우는 데 치중할 뿐이며, 우리 학생들이 미래 사회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오로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 정답을 고르는 능력만 길러줄 뿐이다.
 
오지선다 객관식 수능만이 공정하다는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출제자의 의도, 정답을 고르는 능력은 사람보다 인공지능(AI)이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부터 고교로 이어지는 학교 교육이 AI 등에 의해 많은 직업이 대체되는 미래 사회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식을 학생의 머리에 집어 넣고 있지 않은지 돌이켜봐야 한다. 일본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 교육, 고교 교육, 대학입시 등을 포함한 총체적인 교육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입시와 관련해선 현재 우리의 수능과 같은 대학입시 센터시험을 폐지하고, 2020년부터 주관식 서술형 문제를 포함한 대학입학 공통시험을 도입해 학생들의 사고력과 판단력을 평가한다. 고교가 주입식 교육을 할 수밖에 없게 한 현행 대입시험을 완전 폐기하고 새로운 제도로 교체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대학의 교육과정·교수법, 교사 자격증 제도도 한꺼번에 손을 댄다. 단순히 입시제도를 손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친다는 점에서 정부의 수능 개편과는 대조적이다.
 
기성세대는 수능을 망친 수험생에게 “인생은 단판에 결정되지 않는다”고 위로한다. 그러면서도 위험천만한 단판 시험은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해마다 수능에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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