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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세자 빈살만 "피의 숙청? 웃기는 이야기"

중앙일보 2017.11.24 15:53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 [AFP=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 [AFP=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개혁가인가, 집권을 위해 '피의 숙청'을 지휘하는 야심가인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초로 형제 승계가 아닌 부자 승계로 차기 왕권을 예약한 무함마드 빈살만(32) 왕세자를 놓고 바깥에서의 해석은 분분하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인터뷰해 23일(현지시간) 온라인판에 먼저 게재했다. 

NYT, 사우디 차기 권력자 빈살만 왕세자 인터뷰
"부패 놔두면 G20서 탈락" 108조원 국고 환수
"이슬람 재해석이 아니라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머릿속에서 구상한 게 실현되는 걸 보고 싶다"

 
프리드먼의 첫 질문은 이달 초 반부패척결위원회가 왕족들을 무더기로 체포한 것이 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81) 국왕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기 위한 숙청 작업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왕세자는 "우스꽝스러운 해석"이라고 대꾸했다. 그들은 이미 빈살만 왕세자의 왕위 승계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부패로 신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매년 정부 재정의 약 10%가 부정부패로 증발한다고 추정한다. 정부는 수년간 부패와의 전쟁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왜냐고? 전부 바닥(잔챙이)부터 훑기 시작해서다."
 
왕세자에 따르면 리야드 시장으로 50년간 재직하면서 단 한 번도 부패에 휘말린 적 없는 그의 아버지는 2015년 왕위에 오르면서(당시 유가가 떨어지던 시기였다) 이를 척결하겠다고 맹세했다. 
 
"아버지는 이런 부패 수준으론 사우디가 G20 지위를 유지하지도, 성장하지도 못한다고 봤다. 2015년 초 그가 부하들에게 내린 첫 명령은 고위직의 부패에 관한 모든 정보를 모으라는 것이었고, 2년간 작업한 결과 약 200명으로 추려졌다."
 
모든 데이터가 준비된 뒤 검찰이 액션을 취했고, 기소된 왕자나 억만장자들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감옥에 가거나 부정하게 모은 돈을 국고로 환수시키거나. 
 
"우리가 수집한 서류를 보여주자 95%가 (국고 환수에) 동의했다. 약 1%가 결백을 증명해 무죄 방면됐고, 4%는 결백하다면서 변호사를 대동해 소송하겠다고 말했다. 사우디 법에서 공공검사는 독립적이다. 왕이 해고할 수는 있지만 검사가 하는 일에 개입할 수는 없다. 우리는 전문가들을 활용해 이 과정에서 어떤 기업도 파산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국고 환수금은 약 1000억 달러(108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빈살만의 숙청에 서방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프리드먼은 3일간 사우디에 머물면서 반부패 드라이브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썼다. 외국에선 반부패척결이 합법적으로 진행되는지 우려하는 반면, 사우디 국민은 "그들을 다 거꾸로 매달아 주머니를 탈탈 털어버려야 한다"며 동조한다는 것이다. 
 
사실 반부패척결보다 더 혁신적인 건 사우디의 이슬람을 온건화하는 작업과 현대화다.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여성의 운전을 허가하는 등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이슬람을 '재해석'하는 게 아니라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언자 무함마드(571~632) 시절에는 뮤지컬 극장도 있었고, 남녀가 자연스레 어울렸으며, 아랍 내 기독교와 유대교를 존중하는 문화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1979년 이슬람 혁명의 여파로 사우디가 강경 이슬람 세력에게 흔들린 지난 30년이 비정상이었다고 주장했다.
 

"메디나(예언자의 도시)의 첫 상업 판사는 여자였다. 예언자는 무슬림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때 장관 중 한명이 스마트폰을 꺼내 프리드먼에게 195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모습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보여줬다. 공공장소에서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히잡도 쓰지 않은 채 남자들과 섞여 활보하고 영화와 콘서트를 관람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불법화된 풍경이다. 
 
사우디는 이제 공립학교에서 최초로 여학생들이 체육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다음 달 6일엔 레바논 출신 소프라노 히바 타와지가 첫 여성 전용 콘서트를 연다. 왕세자는 NYT 인터뷰에서 여성들이 축구 경기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안도 통과됐다고 말했다.  
 
사우디의 30세 여성 창업가는 프리드먼에게 "우리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혜택 받은 세대"라고 말했다. 어머니 세대는 여자가 운전하는 건 상상도 못 했고, 미래 세대는 여자가 운전을 못 하던 시절을 상상할 수 없을 테지만 자기 세대는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새로운 기회를 십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젊다면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건 2015년이다. 지방선거가 실시된 2015년 12월 12일(현지시간) 수도 리야드에서 여성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건 2015년이다. 지방선거가 실시된 2015년 12월 12일(현지시간) 수도 리야드에서 여성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리드먼은 사우디의 변혁이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고 봤다. 9.11 테러 이후 사우디의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잠재적인 테러리스트, 혹은 석기 시대에 멈춘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보인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제는 종교적·경제적 변혁과 첨단 기술을 이야기하는 젊은 지도자가 나타났고, 장관도 60대가 아닌 40대로 물갈이가 됐다. 젊은이들을 짓누르던 이슬람 근본주의의 억압도 덜어져 사우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사우디의 젊은이들이 보기에 왕세자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너무 속도를 낸다는 것이다. 고위 공무원들은 왕세자의 재촉 때문에 미친 듯 일한다. 젊은 왕세자는 마음이 급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걸 성취하지 못하고 죽을까 두렵다. 인생은 너무 짧고,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내 눈으로 그걸 보길 열망한다. 그래서 서두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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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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