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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베트남에 공손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앙일보 2017.11.24 11:29
표정을 자세히 봤다. 확실히 그는 정중했다. 만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의 오연함은 찾기 힘들었다. 11월 12일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차 베트남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났을 때 얘기다. 미소 덕인지 양국 정상 회담의 성과는 컸다. 우선 서로 '포괄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젝트도 공개했는데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와 양랑일권(兩廊一圈 중국-베트남 철도 연결을 통한 경제권)의 연결 추진이다. 이 외에도 경제·투자·인프라·금융·문화·교육 분야에 대해서도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환한 웃음으로 쫑 베트남 서기장과 환담하는 시진핑 주석(좌) [사진 신화망]

환한 웃음으로 쫑 베트남 서기장과 환담하는 시진핑 주석(좌) [사진 신화망]

이날 시 주석은 왜 그렇게도 시종 공손한 표정으로 쫑 서기장을 대했을까. 양국 관계로 따지면 한·중보다 중·베트남이 훨씬 껄끄럽고 불편한데도 말이다. 더구나 79년엔 국경 전쟁까지 했고 아직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나라가 아니던가.

79년엔 국경 전쟁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남았지만,
중국·베트남,우호적 기류 흘러, 최근 시 주석도 베트남 찾아

이유는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 탓, 美 트럼프 대통령 ‘인도·태평양’ 추진 중
중국 부상에 반감있는 인도 끌어들여 중국 포위하려는 전략

다급해진 중국, 느긋한 베트남 “남중국해 문제 원만 해결 강조”
베트남, 끊임없이 중국에 이의 제기하는 ‘결기’ 보여줘

 
그 이유는 알려면 최근 국제 정세를 좀 살펴봐야 한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본·한국·중국 아시아 3개국 순방에 맞춰 미국은 이 지역을 아태(Asia-Pacific) 대신 ‘인도·태평양(Indo-Pacific)’이라 재명명했다.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와 아예 인·태 전략을 공공연히 논하고 이후 한국에 조인하라고 채근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속셈은 뻔하다. 중국의 부상에 반감이 큰 인도를 대중 포위 전선에 적극 참여시키자는 것이다. 마침 나렌드라 모디 총리 집권 이후 인도의 대외정책도 ‘룩이스트(Look East)’에서 ‘액이스트(Act East)’로 바뀌면서 '아세안 퍼스트'를 외치고 있다.
미국과 손잡고 인·태 전략을 추진하는 인도의 모디 총리(좌) [사진 동방IC]

미국과 손잡고 인·태 전략을 추진하는 인도의 모디 총리(좌) [사진 동방IC]

실제로 인도는 당장 중국의 위협을 모른 채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지난 10월 중국과의 도클람 지역 군사대치도 인도의 이런 우려를 보여준다. 여기에다 최근엔 중국이 일대일로를 앞세워 파키스탄과는 물론 동남아 각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태 전략은 미국이나 인도나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닐 수 없다.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전략을 모를 리 있겠나. 마침 APEC이 열리는데 그게 바로 해상 실크로드(일로)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인도양 진출의 교두보인 베트남인 거다. 미국이 베트남까지 인·태 전략에 합류시켜 중국을 포위하면 일대일로엔 최악의 악몽이다. 겉으론 느긋해 보여도 시 주석이 다급한 이유다. 시 주석이 아무리 거만하고 오만해도 이런 국제 정세 속에서 베트남에 큰소리칠 입장은 아니었던 거다.
중국이 그리는 양랑일권 경제권 [사진 바이두 백과]

중국이 그리는 양랑일권 경제권 [사진 바이두 백과]

그래서 시 주석은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와 양랑일권(兩廊一圈)의 접합이라는 전술을 다시 들고 나왔다. 양랑일권은 중국과 베트남이 2004년 합의한 양국 경제구 건설 프로젝트다. 쿤밍~베트남, 난닝~베트남을 잇는 두 개의 경제 회랑에 광시와 광둥, 윈난, 하이난, 홍콩, 마카오를 잇는 하나의 경제권을 연계시키자는 게 골자다. 이 경제권이 완성되면 면적은 14만㎢, 인구는 3900만 명을 포용하게 된다. 중국은 베트남을 중국 남부 경제권에 합류시켜 미국 주도의 인·태 전략에 조인이 어렵게 대못을 박자는 속셈이다.
 
물론 베트남도 만만찮다.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쫑 서기장은 남중국해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강조하면서 "모든 당사국이 자제력을 발휘하고,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적법한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두 나라가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선언'(DOC)과 남중국해 행동준칙'(COC) 초안 등의 전면적이고 실질적인 이행에 나서야 한다고 중국을 압박했다. 중국과 아세안은 남중국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2002년 DOC를 채택했지만, 후속조치인 COC 제정은 중국 측의 미온적인 태도로 늦어지고 있다. 일대일로를 얘기하는 시 주석에 "이때다"하고 남중국해 영유권 해결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의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남중국해 [사진 바이두 백과]

중국과 베트남의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남중국해 [사진 바이두 백과]

쫑 서기장의 '결기'에 시 주석은 "양국이 계속 좋은 이웃, 좋은 친구, 좋은 동료가 돼야 한다"며 경제를 비롯한 다방면의 교류·협력만을 주문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 주석의 속도 많이 상했을 것이다.  
 
사실 중국이 베트남에 공손한 또 다른 이유는 대국에 굴하지 않고 자국의 이익을 지켜내려는 '결기'에서 찾아야 한다. 79년 양국 전쟁이 그렇고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서 끊임없이 중국에 이의를 제기하고 무력에 굴하지 않는 리더십 말이다. 항불, 항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보응웬지압의 DNA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얘기다.  
 
요즘 중국이 남중국해를 넘어 인도양으로 나가는 해상실크로드가 첫 번째 시험대에 섰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의 남하를 막으려는 미국과 인도에 이어 대국에 굴하지 않고 떨지 않는 베트남의 '결기'가 합류해서다. 최근 시 주석의 미소는 베트남의 결기라도 우선 비단(일대일로)으로 가려보려는 '혼신의 몸짓'으로 보인다.  
 
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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