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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탈리 칼럼] 세 가지의 미래

중앙일보 2017.11.24 01:45 종합 33면 지면보기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혼돈의 시대,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에는 그곳이 이 세상 어디에 있든, 이 지구상에서 최고로 잘사는 나라가 됐든 그 반대의 경우가 됐든, 어쨌거나 적어도 세 가지 사회 모델이 있다. 이 모델들은 각각 셀 수 없이 많은 변수로 이루어져 있다. 복잡하고도 미묘한 실제 현실에서는 세 가지 모델이 반드시 독립적으로 적용되는 것만도 아니고 오히려 한데 섞이는 현상이 드물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가 무엇인지 갈피를 잡아 보려면 이 셋을 따로 나누어 정리해 보는 것도 무용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유토피아로 가는 노정에
기술과 포퓰리즘·공감
세 가지 사회 모델 존재
나만 살자는 이기심이나
불평등과 갈등 건너뛰어
이타주의 사회 직행해야

우선 기술 모델이다. 이 모델은 기술 진보와 시장을 기반으로 극히 소수 인구와 대다수 인구 간에 소득과 자산 및 교육기회 격차를 심화한다. 가면 갈수록 인공에 가까운 삶과 소수의 기업주가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다. 미국 서부와 중국 거대 기업의 실제 비즈니스 수행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터져 나오는 모습을 우리는 이미 목도하고 있다.
 
그들은 개인주의와 자기도취·배신을 미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특권층은 지구 탈출의 기술을 꿈꾼다. 언젠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자신의 의식을 다른 곳에 이식함으로써 본래 육체에서 벗어나 저 먼 은하계를 향해 지구에서 달아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황폐해져 흙도 공기도 물도 없이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지구에 그대로 남겨질 수많은 사람은 아랑곳없이 말이다.
 
다음은 포퓰리즘 모델이다. 이 모델은 다국적 기업들 앞에서 문을 닫아걸고 지구 온난화와 그 영향을 부정하면서 언론과 교단을 깎아 내린다. 선동가와 광대, 영적 멘토를 자처하는 사람을 위해 부와 권력, 지식을 갖춘 엘리트들을 어떻게 하면 몰아낼까 궁리한다. 세계화와 기술 진보로 발생한 당장의 결과를 거부한다. 이렇게 가면 민족주의나 분리주의 주장, 또는 정체성과 종교에 기반을 둔 전체주의, 전쟁 위기까지 촉발할 수 있다.
 
아탈리 칼럼 11/24

아탈리 칼럼 11/24

마지막으로 공감 모델이다. 물건·자산의 공유, 무상 서비스, 축재(蓄財)의 거부, 시간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여성과 약자 보호를 지향하는 특성을 보인다. 자연과 다양한 형태의 삶을 존중하고, 이타주의·비폭력에 희망을 거는 부류다. 이 모델은 나아가 영혼의 힘을 발견하고 수행에까지 기대를 건다.
 
이것은 너무 단순하게도 우리가 ‘지성’이라 부르고 마는 그것을 초월하는 힘이다. 이 새로운 힘은 뇌과학만큼이나 마음 챙김 명상으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는 그동안 등한시된, 그렇지만 육체와 영혼의 엄청난 잠재력을 표현하는 가장 비정통적인 기술이다.
 
이 세 가지 유토피아는 각자 본연의 동력으로 움직인다. 이들은 전진 중이다. 셋 중 어떤 모델이 승리할지 당장은 알기 어렵다. 적어도 초반에는 국가별로 득세하는 모델이 달리 나타날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향후 상황이 어떻게 될지 장기적으로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우선 기술적 논리가 부와 힘·지식으로 무장한 엘리트들을 매혹하며 한 시대를 풍미할 것이다. 이들은 모험과 수익에 대한 희망에 부푼 최우수 계층의 학생을 빨아들일 것이다. 이 대열에 함께하지 못해 안달하는 이들에게는 부와 영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의 부스러기 정도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합리라는 이름으로 거행되던 세계화는 결국에는 민중의 보복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민중은 다양한 현신(現身) 속에서 정체성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 그 방식이야 민주적 절차가 됐든 폭력적 수단이 됐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엘리트들을 축출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포퓰리즘도 결국은 실패를 맞이할 것이다. 폐쇄 사회의 말로가 항상 그렇지 않은가. 인간이란 닫힌 세상에서는 천성적으로 도망쳐 나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타주의 모델이 그다음 순서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것은 경착륙이 될 수도 연착륙이 될 수도 있다.
 
이타주의는 이미 전(全) 세대의 다양한 행동 방식 속에서 환경 및 사회 쟁점들에 대한 이성적 해답을 도출하기 위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굳이 약육강식과 선동의 저 야만스러운 사회 모델들을 경험하지 않고, 곧장 이타주의의 세상으로 건너가는 일이야말로 당연히 더욱 현명한 선택이 되리라.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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