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찬호의 시시각각] ‘김종대 파동’이 알려준 진실

중앙일보 2017.11.24 01:42 종합 34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1980년대 운동권에 입문한 대학생이 PD(민중혁명파) 대신 NL(민족해방파)을 선택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 경우가 많았다. 깊이 고민하고 공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자고 나면 아침에 ‘오늘의 할 일’이 내려온다. 그냥 그대로 따라하고 저녁에 모여 ‘총화’를 하면 끝이었다. 골치 아픈 마르크스 원전 읽으며 노선 투쟁을 벌이는 PD와 달리 편하고 성과도 분명했으니 그쪽에 선 거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586 대북관
젊은이들에게 비아냥 대상 전락

요즘 청와대와 여당을 장악한 586 NL은 전두환과 싸우다 ‘왼쪽 전두환’이 된 사람이 많다. 적이 워낙 밉다 보니 적의 적인 북한에 호감을 품고, 심지어 대안으로 여기게 된 경우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3대 세습에 인권 유린, 핵무장 같은 북한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그때의 생각이 틀린 것이었음을 깨달은 NL이 많다. 하지만 인간은 자존심의 동물이다. 대놓고 북한을 비판하진 못한다. 자신의 과거에 침뱉는 격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의 악행이 드러나도 ‘평화’니 ‘민족’ 같은 말로 물타기를 하면서 피해 가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NL들의 자기 변호에 깔린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던 젊은 세대가 그 물타기의 본질을 확실히 알게 된 사건이 터졌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북한 귀순병의 몸에서 다량의 기생충이 나왔다는 이국종 교수의 발표를 ‘인권 침해’로 몰다가 네티즌의 몰매를 맞고 있는 상황이 그것이다(김 의원이 골수 NL은 아니다. 하지만 군축 운동을 하다 보니 NL 비슷한 성향을 갖게 된 듯하다). 김종대의 ‘인권 테러’ 운운은 북한에 불리한 뉴스가 터지면 “우리가 잘한 건 뭐 있나. 북한만 욕하지 말자” 식으로 물타기를 하는 전형적 수법이었다. 그런데 네티즌들의 반응은 과거와 달랐다. 상식과 달라도 너무 다른 궤변에 격렬히 반발한 것이다. 게다가 이국종도 가만 있지 않았다. 기자회견을 열고 김종대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정의당 안팎에선 “당원이 된 게 부끄럽다”는 성토가 줄을 이었고 의료계는 김종대 국회 퇴출 운동에 들어갔다. 민주당 의원(박범계·표창원)들조차 이국종 응원에 가세했다. 급기야 김종대는 이국종에게 "위로와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물러섰고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종북세력과 결별했다던 정의당의 이미지는 네티즌들의 조롱 속에 크게 훼손됐다.
 
이번 사건은 전두환과 싸우다 뒤틀린 대북관을 갖게 된 586 세력이 더 이상 20~30대 젊은이들의 의식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전대협 세대(50대)와 90년대 대학을 다닌 한총련 세대(40대)가 공유해온 대북관이 2000년대 이후 대학을 다닌 20~30대에겐 비아냥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20~30대에게 북한의 실상을 감추거나 감싸는 건 종북몰이나 색깔론 못지않게 유치하고 거부감을 주는 행위다. 주민들 몸에 기생충이 들끓게 만든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에는 입을 다물면서(정의당 대선후보 심상정은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에 기권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사실을 공개한 의사를 인권 테러범으로 모는 행태에 공감할 20~30대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제는 진보지만 안보는 보수”를 외치는 유승민에게 20대 젊은이들이 몰리는 현실을 민주당과 정의당의 586들은 직시하기 바란다.
 
사족: 김종대가 잘한 것도 있다. 586 대북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국민이 진실을 깨닫게 해준 점에서 공이 크다. 환자 살리기에 온몸을 던진 이국종의 감동 스토리를 만천하에 드러내 영웅이 고갈된 대한민국에 멋진 스타를 만들어준 공도 적지 않다.
 
강찬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