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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김정은의 ‘차이나 패싱’

중앙일보 2017.11.23 01:48 종합 30면 지면보기
정용환 정치부 차장

정용환 정치부 차장

2011년 5월 두만강을 건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 영빈관에서 2박 일정을 보냈다. 양저우에 있는 동안 김정일 일행의 동선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졌다. 김정일이 난징으로 떠난 뒤 영빈관에 들어갔다. 김정일은 1호 건물 수방원(首芳園)에 묵었다. 수방원 바로 옆 2호 건물인 서방원(舒芳園)에는 왕자루이(王家瑞) 당시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체류했다고 직원들은 귀띔했다.
 
왕 전 부장은 김정일의 전 일정을 밀착 수행했다. 중국 공산당이 정부 기구보다 우위에 있는 중국에서 중련부장은 외교부장보다 서열이 높다. 이런 정치 시스템을 채택한 나라가 북한·베트남 등 몇 안 남다 보니 조명을 덜 받아서 그렇지 당 총서기의 대북통들이 발탁되는 핵심 요직이다. 역대 평양의 중국대사들도 상당수가 중련부 고위 간부들이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특사로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했던 쑹타오(宋濤) 중련부장이 자국으로 돌아가자 중국국제항공은 평양 취항을 중단했다. 시 주석의 친서를 갖고 간 쑹 부장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시진핑과 김정은의 인적 핫라인 구축 시도는 물거품이 된 모양새다. 중련부장의 역할과 위상을 고려할 때 일회성 전령이 아니라 북·중 관계 특유의 끈끈한 공식 라인을 되살리자는 시 주석의 구애였다.
 
지난달 평양을 방문했던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북한 관리들이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의 방북을 거절했다”며 “무슨 말을 할지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쑹타오 부장을 훑고 지나간 찬바람이 느닷없는 게 아닌 것이다.
 
시진핑이 느낄 낭패감은 결이 다르다. 집권 2기를 맞은 시진핑은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라는 두 축으로 서진(西進)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해당 지역 국가들은 대북 제재를 종용하는 미국에 절절매고 전통적 영향권으로 인식되던 북한으로부터 차이나 패싱을 당하고 있는 중국을 예의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역할론이 바닥을 드러낸 이상 앞으로 상황 전개는 북·미 구도로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대기권 재진입 등 고도화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입증해야 하는 김정은은 시간에 쫓기고 있다. 제한적 북폭과 레짐 체인지의 공포를 안고 벌여야 하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중간에 브로커를 세울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중국까지 제친 마당에 운전석 쪽에 한눈팔 것 같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 정부의 외교 자산을 퍼부어야 할 방향은 김정은이 이미 정해 버린 셈이다.
 
정용환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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