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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의 寫眞萬事]분열을 부르는 댓글, 이대로 둘 것인가

중앙일보 2017.11.23 00:03
 칼에 베인 상처도 아프지만 말에 찔린 상처는 더 치명적이다. 칼은 육체를 공격한다. 말은 정신을 공격한다. 말의 공격에 정신의 둑이 무너지면 정신을 담고 있던 육체는 파도를 맞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기도 한다. 독한 말은 독보다 독하다. 독한 말을 내뱉는 것은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독약을 뿌려대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어가 다른 이민족 간의 전쟁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 간 내전이 훨씬 잔인하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이민족 간 전쟁은 영토나 통치권을 뺏으면 대충 종료된다. 같은 민족 간의 전쟁은 생각이 다른 쪽의 씨를 완전히 말리려 한다.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즘 세력과 공화파 양측에서 100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일부는 전투로 인한 희생자뿐만 아니라 공중폭격, 처형, 암살 등으로 인한 희생자의 총합을 100만 명이라고 추산한다. 최근의 통계는 희생자 수를 50만 명 내외로 보기도 한다. 희생자 가운데는 세계 각국에서 참전한 의용군도 상당수 포함된다. - 미국 남북전쟁의 희생자는 무려 75만 명이 넘는다. 표면적으로는 노예 제도를 유지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벌어진 전쟁인데 양 진영의 감정이 격앙돼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자세로 맞붙은 결과다. 이들은 심지어 종교도 같았다.
 
댓글들

댓글들

 
 멀리 갈 것도 없다. 3년여 간 벌어진 6.25전쟁에서 남한 측 피해자는 민간인과 군인을 합쳐 160만여 명, 북한 측은 350여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 이 숫자에는 유엔군과 중국군의 사상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 6.25전쟁 직전 남북한 인구가 약 3천만 명이었다. 3년간의 전쟁동안 남북한 합쳐 50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으니 우리말을 사용하는 인구 6명 중 1명이 넘게 피해를 입은 셈이다. 이른바 단일 민족으로 우리끼리 벌인 전쟁에서 그랬다. 이념은 생각보다 무섭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 간의 싸움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내전으로 인한 피해를 장황하게 거론하는 이유는 대개 내전이 벌어지기 전 전조 증상으로 말의 전쟁이 벌어지는데 지금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댓글들의 다툼이 거의 내전 직전 벌어지는 말의 전쟁 수준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 간에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말다툼으로 보기엔 너무나 악랄한 언어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다. 내 편이 아니고,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인상이 들기만 하면, 사실 확인이나 최소한의 절제 없이 무자비한 공격이 감행된다. 이런 언어들은 서로에게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독한 언어를 구사하는 자는 상대방을 공격하기 전 자신에게 먼저 상처를 입히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상대방 역시 아무리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 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잠재의식에 상처가 남고, 이 상처들이 쌓이고 잠복한 상태로 내부 압력을 높여가다가 때가 되면 한꺼번에 폭발해 공동체를 자기파멸로 이끈다.
 
 
 최근 박정희 동상 건립 문제로 인한 마찰, ‘태극기 부대’와 ‘촛불 세력’ 간의 대립,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충돌, 전 정권 지지층과 현 정권 지지층의 갈등 등 보수와 진보 세력이 불화할 때마다 중간지대를 설정한 공권력이 없었다면 벌써 심각한 물리적 대결이 벌어져 우리 사회를 결딴냈을 게 분명하다. 생각하기도 싫은 가정이지만 만에 하나 이 땅에 다시 내전이라도 벌어진다면 두 진영 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두려워진다.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의 성격을 갖는 동시에 생각이 완성되는 틀이기도 하다. 한글을 사용하는 자는 한글로 생각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자는 영어로 생각한다. 언어가 없으면 생각을 정리할 도리가 없다. 댓글은 댓글 작성자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댓글에 사용되는 언어를 순화하는 것은 곧 댓글 작성자의 거칠고 공격적인 정신이 순화되는 선순환의출발이 된다. 반사회적인 댓글을 순화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공간은 정글에서 공존의 풀밭으로 변모될 것이다. 폐허가 된 심성은 본연의 인성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다. 생각이 순해지면 행동도 순해지기 마련이다. 양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공격적 성향은 본능의 발현일 수 있다. 댓글의 포악성은 인간의 공격적 본능이 익명성이라는 장치를 만날 때 통제불능 상태로 악화된다. 댓글을 작성할 땐 내가 어디에 사는 누구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러면 지금 같이 편파적이고 불쾌하며, 무책임한 댓글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게 된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오물을 뿌려대는 어둠의 전사는 실명제라는 빛에 노출되는 순간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질 것이다. 댓글 실명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우려가 단골로 등장해 실명제 논의를 방해한다. 맞다. 실명제가 도입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게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명제가 도입되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거칠고 무례하며 악의적인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고, 정정당당하며 절제된 비판으로 상징되는 품격있는 자유가 인터넷 공간에 넘쳐야 한다.  
 
 이제 표현의 자유만큼 인간의 존엄도 존중받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 언제까지 짐승들의 언어 때문에 인간들의 관계가 이간되는 악순환을 견뎌야 하는가. 
 
 김춘식 중앙일보 포토데스크 부국장 kim.choonsik@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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