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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사회 본성 들춰낸 '로마서 8:37', “나쁜 놈이 진짜 나쁜 이유는…”

중앙일보 2017.11.21 17:44
 
 

'동주' 각본·제작 신연식 감독 최신작 '로마서 8:37'
성경 구절로 묻고 감독이 답하다

‘로마서 8:37’를 연출한 신연식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로마서 8:37’를 연출한 신연식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매거진M] “노골적인 기독교영화”라는 신연식(41) 감독의 단언대로다. 그가 각본·제작작 ‘동주’(2016, 이준익 감독)에 이어, 고심 끝에 내놓은 ‘로마서 8:37’(11월 16일 개봉, 이하 ‘로마서’)은 굴곡진 근현대사 속에 뒤틀린 채 뿌리 내린 한국 기독교 사회의 본성을 들춰내는 영화다. 3대째 모태 신앙을 가져온 평신도인 그는 내부자의 입장에서 오랫동안 외면해온 죄를 마주했다. 우연히 접한 교단 내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녹취 파일. 그 “살아있는 고통의 목소리”는 그를 더는 망설일 수 없게 했다. 어떠한 상업자본 없이 제작·투자·각본·연출을 겸한 건 기도와 같은 이 작품을 온전히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영화에서 발췌한 성경 구절에 신 감독이 직접 응답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요한복음 8:47)
‘로마서 8:37’

‘로마서 8:37’

모태 신앙으로 출발했지만, “그리 성실한 신자는 아니었다”는 신연식 감독이 자세를 고쳐먹은 건 서른 살에 들어설 무렵이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소설을 썼다. 그때부터 “무엇이 돼야겠다는 게 아니라, 생각이 나서” 글을 썼다. “하루에 원고지 100장 정도는 우스웠다”고 그는 귀띔했다. 써둔 시나리오가 있어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스무 살에 자연히 연출부 막내로 영화계에 들어섰다. 그런데 10년째 참여한 영화마다 불발됐다. 또래들이 착실히 경력을 쌓는 걸 지켜보며 가진 것 없던 그의 20대는 “절망 그 자체”였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생전 처음 사랑에 빠지면서야 그는 깨달았다. “어느새 영화가 내게 우상이 돼있었구나.” 우상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얼마든지 버릴 수 있어야 무언가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그럴 수 없다면 그것의 노예일 뿐. C S 루이스의 신앙 소설에 의지했던 어느 날의 기도 중 문득 (하나님의) 그 ‘말씀’을 깨달은 후 세상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공부를 왜 하나. 서울대 가려고? 아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하는 게 공부다.” 그는 영화를 그만둘 각오로 그 성취 대신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단편영화 의뢰가 들어왔고, 2005년 장편영화 ‘좋은 배우’로 데뷔하기에 이른다.
 
“영화감독이 되려고 무진 애쓸 때는 그렇게 안 됐는데 영화를 왜 해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 한번에 감독이 됐다.” 신 감독의 말. ‘로마서’의 주인공인 목사 지망생 기섭(이현호)의 운명도 같았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누가복음 10:20)
‘로마서 8:37’

‘로마서 8:37’

 
처음에는 “죄보다 말씀이 먼저”였다. 신 감독은 5년 전 대형 교회 설립자인 유명 목사의 재단에서 영화 제작을 의뢰 받았다. 그의 목회 철학이 담긴 영화면 어떤 형태든 좋다는 그 제안은 얼마 안 가 유야무야됐다. 그러나 “말씀을 삶의 순간에 적용하며 사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독교 컨텐츠가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마음은 남았다.
 
원죄는 기독교 철학의 기본이다. 구원을 이야기하기 전에 죄의 문제를 다뤄야했다. 신약성서에서 죄를 다룬 로마서 6장을 주목한 이유다. 그러나 ‘로마서’가 “이런 작품이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자료 조사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한국 기독교 사회는 그가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깊고, 짙고, 복잡한 죄에 싸여”있었다. 교회를 둘러싼 법정 분쟁들을 취재하며, 고민은 더해갔다.
 
‘로마서 8:37’

‘로마서 8:37’

“싸움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 교회 안에 하나님이 없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성돈 교수의 말이다. 신 감독은 “한국 사회는 불안정한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더 안전한 조직에 속하려고 하는 왜곡된 전체주의가 뿌리 내렸다. 조직이 무너지면 개인이 무너진다고 여긴다. 기득권은 이걸 이용해서 존재한다. 생태계가 복잡해질수록 자신을 보호하고 서로가 서로의 죄를 감춰주는 시스템만 발달해왔다”며 “한국 교회들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로직’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교회 실세들의 ‘밥그릇’ 싸움과 추악한 성추문을 고발하는 ‘로마서’는 그래서 누군가에겐 불편할 영화다. 이 누가복음 10장 20절은 교회의 위선이 들통 나는 결정적인 계기의 순간 삽입되며 현실과 뜨끔한 대조를 이룬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복을 주리라. (출애굽기 20:24)
‘로마서 8:37’

‘로마서 8:37’

 
‘로마서’의 플롯은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이 세상에 최초의 죄가 들어왔고,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 받았다”라는 기독교적 관점을 토대로 했다. 신 감독은 이렇게 설명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악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로서의 죄다.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창조주인 하나님에게서 독립해 세상사를 마음대로 (가치 판단)하고 싶어 한 원죄가 그것이다. 한 공동체 내에 세대와 세대 간에 죄와 구원이 연결돼 있다.”
 
외도로 얻은 요섭(서동갑)과 현민(김다흰) 형제를 입양아처럼 키워온 아버지 강 장로(최종률). 그의 혼외정사는 원죄의 메타포다. 형 요섭의 죄악을 알고 어릴 적 자신들이 버려진 강가에서 기도하다 불타 숨진 현민은 대속(代贖)의 존재.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고 그 연약함을 통해 죄가 발현된다”고 생각한 신 감독은 “최대한 선악의 구도를 피하고자” 했다. “나쁜 놈이 진짜 나쁜 건, 너무 나빠서 나도 나쁜 놈이라는 걸 까먹게 만든다는 거야”라던 김 목사(김세동)의 대사처럼, 스스로를 경계하며.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 속인 자들, 그릇된 우상을 숭배하느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시편 115:5~8) 개개인이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어려운 여정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라. (로마서 8:37)
‘로마서 8:37’

‘로마서 8:37’

‘동주’를 비롯해 연출작 ‘조류인간’(2015) ‘러시안 소설’(2013) 등 그가 각본을 쓴 영화들은 모두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부조리를 인식하는 결말을 다룬다는 점에서 기독교적”인 지점이 있었다. 그러나 ‘로마서’는 “창작자로서의 도덕성을 넘어선 책임감”이 요구됐다. “내게 이런 영화를 만들 자격이 있을까. 끝까지 싸울 힘이 있을까.” 
 
거창한 사명감보다 갈등과 의심 그 자체가 동기 부여가 됐다. 파국으로 치닫는 극의 중심을 지키는 이가 희생적인 영웅도, 파문당한 악인도 아닌 힘없고 갈등하는 평범한 목회자 기섭이 된 까닭이다. 기섭은 가까이 있었으나 미처 몰랐던 성폭행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접하면서 존경해온 목사 요섭이 감춰왔던 진실에 눈뜨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신 감독은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기독교적인 방식”을 극 중 기섭과 피해자들의 관계에만 적용하지 않았다. “영혼이 다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요섭의 위선이 구원받길 기도하며 공동체 내 부조리에 무심했던 스스로의 죄 값을 감당하려 하는 극 중 여러 인물들의 모습은 한국 기독교 현실에 대한 신 감독 자신의 것이기도 할 터. 이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신을 감싸듯 암전 화면을 밝히는 로마서 8장 37절의 구절은 그런 그의 간절한 기도와도 같이 다가온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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