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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규제 풀지 못하면 중국과 일본에 뒤지는 넛 크래커 될 것"

중앙일보 2017.11.21 17:40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17일 성남시 판교벨리에서 현 경제상황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17일 성남시 판교벨리에서 현 경제상황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해 말 기준으로 매출 1000억원이 넘는 벤처 기업이 513개입니다. 이들 매출을 더하면 110조원이에요. 벤처기업의 가능성을 숫자가 증명함에도 중견 벤처 스케일업(scale-up)에 대한 정부 정책이나 의식은 여전히 부족해요.”
 





[인터뷰] 안건준 한국벤처기업협회장,
1000억 벤처 513개 일년 매출 110조원 돌파했지만
"중견 벤처 스케일업 정부 정책과 의식 부족해"

중국 신설 법인수 한국의 100배...일본 중소기업은 10배
20년 전 한국 벤치마킹하던 이스라엘을 우리가 쫒고 있어
벤처기업협회, 이달 말 ‘혁신벤처생태계 발전 5개년 계획’ 발표

 지난 17일 경기도 판교 크루셜텍 10층에서 만난 안건준(52) 벤처기업협회장은 이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원형 회의 테이블에 인터뷰 사전 답변서가 놓여 있었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속 깊이 담아둔 얘기라는 뜻이다. 스케일업은 스타트업(start-up·창업벤처) → 스케일업(scale-up·성장성숙) → 레벨업(level-up·중견 글로벌)으로 이어지는 벤처기업 성장 사다리의 중간에 위치한다.
 
-스케일업이 왜 필요한가.
“1997년 벤처 특별법 제정 이후 20년 동안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던 회사가 9만 개 정도다. 그동안 어떤 회사는 망하고 어떤 회사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6만3000개가 살아남았다. 이것만 해도 굉장한 숫자다. 이들 벤처에 대한 스케일업을 통해 매출 1000억원이 넘는 기업 1000개가 나온다면 또 다른 매출 100조원 벤처 기업 집단이 만들어지는 거다. 그러면 좋은 일자리가 생긴다. 창업벤처가 만드는 게 불안한 일자리라면 스케일업 기업은 정규직을 채용할 수 있다. 스케일업에 대한 적극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구체적인 방법론이 있나.
“벤처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기업 생태계는 대기업 맞춤형이다. 소위 말하는 재벌 생태계다. 옥스퍼드 사전에 재벌이란 단어가 등재될 정도로 재벌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단어가 됐다. 이를 부정하면 벤처 생태계를 만들 수 없다. 한국형 혁신벤처 생태계를 말할 때 대기업 생태계를 부정하는 건 앙꼬(팥소) 없는 찐빵이란 얘기다. 숫자도 증명한다. 벤처기업 72%가 B2B 영역에 걸쳐있다.”
 
안 회장은 골프장을 예로 들어 일본과 한국의 벤처 생태계를 묘사했다. 그는 “골프장 페어웨이에 잔디가 깔려있고 울창하고 멋진 나무들이 가장자리를 지키는 명문 골프장이 바로 일본”이라며 “기술 벤처들이 페어웨이를 지키는 잔디라면 대기업은 이를 둘러싼 멋진 나무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페어웨이에 소나무가 듬성듬성 솟아 있고 잔디도 듬성듬성하다. 한국은 훌륭한 소나무만 쳐다보면서 ‘멋진데 얼마짜리일까’라고 묻는다. 잔디를 더 심어야 하고 이들이 햇볕을 쬘 수 있도록 소나무도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17일 성남시 판교벨리에서 현 경제상황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17일 성남시 판교벨리에서 현 경제상황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정부가 재벌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소나무 옮겨 심겠다고 정부가 나서 삽질을 시작하면 가지가 상할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제2의 창조경제 아니냐. 정부가 강제하면 안 되고 민간이 주도해 소나무를 옮겨 심어야 한다. 이를 통해 대기업과 혁신 벤처가 함께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벤처기업협회는 이달 말 ‘혁신벤처생태계 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법제도 체계 혁신과 민간중심 정부정책 혁신, 공공데이터 전면 개방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안 회장은 “5대 대기업과 생태계 조성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제 부처 합동으로 이달 초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을 내놨다.
“DJ정부 시절인 1997년 벤처기업특별법을 만들었다. 다소 급진적이기도 했지만, 결과물이 나왔다. 당시 이스라엘 기업인들이 벤치마킹한다며 이를 공부하고 한국을 찾아왔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남한 면적의 7분의 1에 불과한 이스라엘에서 벤처 혁신을 배우겠다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벤처 기업 제도가 발전하지 못하고 낙후된 거다. 예를 들어 DJ정부 시절에는 스톡옵션 특례가 연 5000만원이었는데 20년 전보다 돈의 가치가 떨어졌음에도 이번 대책에선 2000만원으로 줄어 크게 의미 없는 정책이 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낙후한 건가.
“경제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맞춰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중국은 혁신을 일본은 환골탈태를 이뤄냈다. 일본 인구가 한국에 비하면 2.4배지만 중소 및 벤처기업은 10배가 많다. 중국은 인구도 땅도 한국의 30배지만 올해 상반기 신설 법인 수는 우리의 100배다. 인구 30배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땅이 넓은 중국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김동연 부총리께서 창업 생태계 대책 발표하면서 한국의 기술벤처 기업 수가 전체 신설 법인의 21%라고 하셨다. 중국은 43%다. 중국은 대기업과 벤처 생태계가 지난 20년 전부터 함께 만들어졌기 때문에 잘 섞여 있다. 한국은 이와 다르다. 굉장한 벽이 있다. 이걸 깨야 한다. 이런 추세로 가다간 중국과 일본 사이에 한국이 끼는 넛 캐랙커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에는 대기업 생태계가 없기 때문에 한국의 벤처 생태계가 만들어져 대기업 생태계와 시너지를 낸다면 이스라엘이 부러워하는 거대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안 회장은 2년 전 중국 시골 마을의 경험을 꺼냈다. 그는 “북경에서 비행기로 몇 시간 걸리는 시골 식당이었는데 모바일폰으로 예약이 가능했다. 리어카 끌고 다니는 노점상이 단말기를 들고 다니면서 핀테크를 하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중국이 앞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케일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타이밍을 놓친 거다. 한국은 60~70년대 미국 박사들이 귀국하면 국책 연구소에서 연구하게 했다. 20년 전부터 중국 출신 해외 박사들이 귀국하는데 중국 정부는 돈 빌려주면서 기업하라고 한다. 그때 앞질러 간 거다. 샤오미나 화웨이 CEO들도 만나는데 자신만만하다. 우리는 규제부터 체크하지만 중국 기업인들은 저질로 놓고 본다. 사실상 사후 규제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중국 정부가 미국 규제를 수입하는 식이다.”
 
-최근 바이오 벤처 기업들의 생명윤리법 개정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 시판과 연구는 분리해야 한다. 시판을 규제할 수는 있지만,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걸 막는 게 맞는 건가. 기술 개발 이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멀리 이스라엘까지 갈 것도 없고 중국만 보면 된다. 핀테크가 대표적인데 한국은 힘 있는 은행들이 핀테크를 잡고 있지 않나.”
 
 -정부 일자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일자리위에는 사회단체, 소외계층, 농업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런 목소리들이 잘 혼합이 안 된다. 일자리를 만드는 주제가 일자리를 나누는 주제에 묻히는데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 방점을 둬야 한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의 경청하는 자세는 역대 대통령 중 최고다. 지난달에 민간 주도로 일자리 200만개 만들겠다고 했는데 대통령께서 의미 있게 받아들였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17일 성남시 판교벨리에서 현 경제상황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17일 성남시 판교벨리에서 현 경제상황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엔지니어 출신으로 정부 주도 연구개발(R&D) 정책에 대해 평가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지 않지만, 경제 규모에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나눠 먹기 예산이다. 대학교와 정부 출연연구소가 R&D 예산을 통해 운영비를 댄다. 민간이 주도해 R&D 아이템 선정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R&D 성공률이 아닌 사업화에 대한 필요성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1일 취임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창업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파산으로 인한 채무면책 부여와 민간금융기관의 연대보증 폐지 등 과감한 창업 안전망 확보가 필요하다. 재도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창업 의지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신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창업안전망 구축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의지를 가져주시기를 기대한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1990~1997 삼성전자 기술총괄본부 선임연구원
1997~2011 럭스텍 최고기술경영자(CTO)
2001~현재 크루셜텍 대표이사
2017 2월~현재 제9대 벤처기업협회 회장
2017 8월~현재 정부 일자리위원회 위원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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