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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메르켈' 시대 시작될까…메르켈은 재선거 불사 배수진

중앙일보 2017.11.21 17:18
연정협상 결렬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EPA=연합뉴스]

연정협상 결렬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EPA=연합뉴스]

“포스트 메르켈 시대가 시작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소속된 기독민주당 내에서 보수적 목소리를 내온 알렉산더 마치 의원이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에 한 말이다. “메르켈 총리가 9월 총선을 낭패로 이끌었을뿐 아니라 연립정부 구성에서도 실패했다”고 비판하면서다.

자메이카 연정 협상 불발 후폭풍
메르켈, 소수 정부 구성에 회의적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협상에 기대

메르켈 총리직 수행 지지율 58%
기민당 내에서도 85%가 메르켈 지지

경험ㆍ균형감에서 메르켈의 대타 없어
재선거가 9월 총선과 비슷하면 위기 현실화
극우정당만 더 약진할 가능성도

서방 자유진영의 리더 메르켈 흔들리면
유럽 난민정책 둘러싼 분열 심화할 듯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서방 자유 진영의 대표로 자리매김해온 메르켈 총리가 벼랑 끝에 몰렸다. 총선에서 1949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데 이어 안정적 정부를 구성할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2년 재임 중 가장 큰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메르켈 총리는 배수진을 쳤다. 그는 공영방송 ARD에 출연해 녹색당과 소수 정부를 구성하는 방안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라며 “새로 선거를 치르는 게 낫다"고 말했다. 재선거를 치르더라도 기독민주ㆍ기독사회 연합의 대표로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기 국면에 몰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대화하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 [EPA=연합뉴스]

대화하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 [EPA=연합뉴스]

재선거가 실제 실시될지 여부는 구원투수로 나선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의 연정 협상 결과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슈타인마이어의 시간이 왔다"며 초유의 헌정 위기를 풀 핵심 플레이어로 그를 주목했다.
중도좌파 사회민주당 출신인 슈타인마이어는 ‘자메이카 연정' 협상을 박차고 나간 친기업 성향 자유민주당을 포함해 사민당에도 메르켈과의 연정 가능성을 타진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민당은 최고위원회를 열고 재선거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자민당이 협상에 복귀할지도 미지수다. 연정에서 이민과 기후변화 대응 방안 등을 놓고 자민당과 대립했던 녹색당 소속 한 중진의원은 “크리스티안 린트너 자민당 대표가 메르켈을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하려고 연정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고 의심했다.
메르켈 총리가 또다시 난관을 이겨내고 돌파구를 찾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ARD의 여론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57%가 연정 협상 실패를 부정적으로 봤다. 하지만 그 책임이 메르켈의 기민당에 있다고 답한 이는 9%에 그쳤다. 메르켈이 다시 총리직을 맡는 데 대해서도 58%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P=연합뉴스]

베를린자유대 크리스티안 페스탈로자 교수는 “메르켈보다 더 경험이 많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며 “해외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존경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독일과 유럽을 위해서 우리의 주요 파트너가 강력하고 안정적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며 이를 통해 우리가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응원이 메시지를 보냈다. 메르켈 총리는 기민당 내에서도 85%의 지지를 받고 있다.
메르켈의 난민 포용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 [중앙포토]

메르켈의 난민 포용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 [중앙포토]

관건은 상황이 악화해 결국 재선거가 치러질 경우 메르켈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느냐다. 21일 현재 각 언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선거를 하더라도 정당지지도가 지난 9월 총선과 크게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은 작았다.  
일간 디벨트가 전문기관 씨베이를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선호도는 재선거 41.7%, 사민당과의 대연정 17.3%, 기민ㆍ기사연합과 녹색당 간 소수 정부 18.8%, 기민ㆍ기사연합과 자민당 간 소수 정부 15.5%였다. 하지만 기민ㆍ기사연합 지지자들은 대연정 31.8% 대 재선거 26.2%, 사민당 지지자들은 대연정 18.2% 대 재선거 40.4%의 지지 분포를 보여 양대 정당 지지자들의 생각이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델(왼쪽)과 가울란트 AfD 공동원내대표 [EPA=연합뉴스]

바이델(왼쪽)과 가울란트 AfD 공동원내대표 [EPA=연합뉴스]

재선거에서 오히려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더 약진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메르켈은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메르켈의 퇴장은 EU를 비롯해 세계 질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유럽 통합 재무부 설립과 통합 조세정책 및 해외에서의 합동 군사활동을 제의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독일에 난민 문제에 소극적인 후임 정부가 들어설 경우 유럽은 난민대책을 둘러싸고 분열에 빠질 것이라고 FT는 경고했다. 세계는 메르켈의 위기를 ‘독일판 브렉시트'‘독일판 트럼프의 당선'에 해당하는 사건이라며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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