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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언론 길들이기' 논란…CNN은 막고, 싱클레어는 터주고

중앙일보 2017.11.21 15:10
 
미 법무부가 850억 달러(약 95조원)에 달하는 통신공룡 AT&T와 영화ㆍTVㆍ케이블의 콘텐츠 강자인 타임워너의 초대형 합병에 제동을 걸었다.

미 법무부, AT&T와 타임워너 합병 제동
트럼프, CNN 빼고 팔아야 빅딜성사 암시
우호기사 많이 쓴 싱클레어 위해 규제완화

 
미 법무부는 20일(현지시간) AT&T와 타임워너의 합병을 막기 위해 워싱턴DC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타임워너 인수에 제동이 걸린 공룡 통신기업 AT&T. [AP=연합뉴스]

타임워너 인수에 제동이 걸린 공룡 통신기업 AT&T. [AP=연합뉴스]

 
법무부의 메이컨 델라힘 독점금지국장이 총대를 맸다. 델라힘은 “양사의 합병이 독점금지법을 위반해 소비자에게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주장을 폈다. AT&T가 타임워너의 망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케이블을 공유하던 경쟁자와, 다양한 콘텐츠를 즐겨온 소비자들에게 수억 달러 가량의 추가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는 논리다.
미 법무부의 메이컨 델라힘 독점금지국장. AT&T와 타임워너의 합병을 저지했다. [AP=연합뉴스]

미 법무부의 메이컨 델라힘 독점금지국장. AT&T와 타임워너의 합병을 저지했다. [AP=연합뉴스]

 
이에 대해 랜달 스티븐슨 AT&T 최고경영자(CEO)이자 회장은 발끈했다. 그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논리”라며 "같은 시장에서 비슷한 업종끼리 합치는 수평계열화도 아닌 수직계열화를 위한 인수합병에 독점금지법을 들이대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AT&T 랜달 스티븐슨 회장이 20일(현지시간) 분노에 찬 표정으로 미 법무부를 비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AT&T 랜달 스티븐슨 회장이 20일(현지시간) 분노에 찬 표정으로 미 법무부를 비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실제 AT&T가 지난해 10월 타임워너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배경은 넷플릭스와 아마존, 구글과 같은 플랫폼 강자들과 경쟁하기 위해서였다. 타임워너는 영화사인 워너브러더스를 비롯해 유료채널 HBO와 터너방송 산하의 TV방송사를 여럿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은 CNN도 들어있다. 통합 회사의 매출은 2015년 기준으로 1890억달러, 직원은 30만명이 넘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AT&T가 타임워너를 인수하려면 CNN을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이번 법무부의 소송제기가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를 순방하면서도 “AT&T와 타임워너의 합병이 소송으로 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면서 “굉장히 존경받는 인물이 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관심을 보였다. ‘굉장히 존경받는 인물’은 델라힘 국장을 지칭한다.
뉴욕 맨해튼의 타임워너 본사 외벽에 비친 짙은 구름이 AT&T와 합병에 제동이 걸린 사실을 말해준다. [AP=연합뉴스]

뉴욕 맨해튼의 타임워너 본사 외벽에 비친 짙은 구름이 AT&T와 합병에 제동이 걸린 사실을 말해준다. [AP=연합뉴스]

 
결국 CNN 보도에 불만을 드러내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거래에 제동을 걸면서 CNN에 불이익을 주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설령 소송에서 법무부가 패소하더라도 초대형 합병을 추진해온 두 회사의 합병 페이스를 늦춰, 보이지 않는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전통 미디어 업체들간의 급격한 합종연횡이 일어나고 있는 시기에 소송으로 1년 정도 늦어지면 CNN이 속한 타임워너는 물론 AT&T에게도 치명적인 상처를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결정한 또 다른 행보는 이와는 정반대 편이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난 16일 한 회사가 동일 시장에서 신문과 방송을 동시에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975년부터 적용해온 동시소유 금지조항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한 회사가 복수의 방송사를 소유하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다.
 
미디어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자신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써온 싱클레어 방송그룹을 챙겨주기 위한 결정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싱클레어 그룹은 현재 39억 달러를 들여 ‘시카고 트리뷴’과 같은 유력지와 지역방송을 거느린 트리뷴미디어를 인수하려는 중이다. 이번 계약이 성사되면 싱클레어는 유력신문은 물론 미국 인구 72%에 닿는 지역방송국 200개 이상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미디어 기업들의 인수합병 성사여부가 독점금지법 저촉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론 길들이기’에 달려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21세기폭스의 빅딜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점쳐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미디어 재벌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친구로 알려진 루퍼트 머독 회장이 뒤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월트디즈니가 21세기폭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고, 미 최대 케이블TV인 컴캐스트와 최대 이통사 버라이즌이 각각 가세하면서 3파전 양상을 띄고 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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