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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서, 김원홍 처리 왜 최용해에 맡겼나…'심화조 사건' 재현

중앙일보 2017.11.21 14:32
지난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참석한 국가정보원 고위 당국자는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처벌받았다는 첩보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처벌은 최용해가 주도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이 북한의 인사나 각종 사건을 보고하며 사건 처리를 주도한 인물을 콕 찍어 밝히는 건 이례적이다. 자칫 정보 수집 ‘라인’이 드러날 수 있고, 그동안은 사건의 본질 즉 어떤 행위 때문에 처벌을 받았고 처벌의 종류가 무엇인지에 무게를 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보고에서 ‘최용해’를 지목한 건 국정원 역시 그를 주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용해는 장성택 사망후 김정은이 믿을 수 있는 빨치산 줄기
조직지도부장이란 관측 속 공안담당 책임지로 부활했을 수도
권력기관간 암투 통한 견제 정치는 김정은 와서도 지속

 
 
김정은 집권후 야심작으로 불리는 평양의 여명거리 준공식이 열린 지난 4월 최용해 당 부위원장이 김정은에 이어 준공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은 집권후 야심작으로 불리는 평양의 여명거리 준공식이 열린 지난 4월 최용해 당 부위원장이 김정은에 이어 준공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①믿을 건 최용해?=북한에서 최용해는 대표적인 빨치산 핏줄로 꼽힌다. 그의 아버지 최현(본명 최득권)은 김일성과 빨치산 활동을 함께 했고, 김일성 주석 때 북한군 인민무력부장을 맡는 등 핵심 역할을 했다. 그 역시 북한의 청년조직을 관할하는 청년동맹 제1비서와 노동당 총무부 부부장, 근로단체 담당 비서, 중앙군사위원, 국방위 부위원장 등을 당과 군을 골고루 거치며 권력을 다졌다. 김정은에게 있어 최용해는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처형 이후 기댈 언덕인 셈이다. 특히 그가 황병서 직전의 총정치국장을 맡았던 터라 누구보다 총정치국장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북한 내 정서나 실무 차원에서 군심(軍心)을 좌우하는 총정치국의 수장인 황병서라는 거물을 치는데 있어 최용해가 ‘딱’이었던 셈이다.

 
 
여러차례 부침을 겪다 다시 김정은의 오른팔로 들장한 최용해 노동당 부위원장 [중앙포토]

여러차례 부침을 겪다 다시 김정은의 오른팔로 들장한 최용해 노동당 부위원장 [중앙포토]

 
②공안담당 부활= 북한은 지난달 7일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어 인적 개편을 했다. 당시 김정은의 여동생이자 당 부부장인 김여정을 당 정치국 후보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을 비롯해 박태성, 최휘 등을 중앙무대에 등용하며 상대적으로 젊은 피 수혈을 했다. 정치국의 26%, 정무국 부위원장의 44%, 전문부서 부장의 36%가 바뀌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물갈이 폭은 컸다. 정창현 현대사연구소장은 “최태복, 김기남 비서 등 할아버지(김일성)와 아버지(김정일) 때 인물들을 뒤로 물리고 자기 사람들을 전면에 배치한 인사”라고 평가했다. 당시 북한은 공식 직책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최용해를 당 부장으로 칭했다. 전문가들은 그를 북한 노동당에서 ‘단속의 당’으로 불리는 조직지도부장으로 추정했다. 국정원도 지난 2일 정보위 국감에서 같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번 처벌을 그가 진두지휘한 것으로 미뤄 그가 공안을 담당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조직지도부장이 직접 조사를 챙겼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당국자는 “조직지도부장은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겸직하거나 후계자가 맡아 왔다는 점에서 최용해가 다른 직책을 맡았을 수 있다”며 “공안담당 부위원장을 새로 만들어 최용해에게 맡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2006년 계응태 비서가 사망할 때까지 당에 공안 담당 비서 직(청와대 민정수석 격)제를 유지했고 이후엔 장성택이 부장으로 있던 행정부에서 해당 업무를 하다 그가 처형(2013년) 이후엔 공석으로 뒀다. 김정은이 믿고 있는 최용해에게 해당 업무를 맡겼고, 그의 첫 작품으로 황병서, 김원홍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가운데 앞)이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을 맞아 열린 열병식후 주석단을 한바퀴 돌며 참석자들과 참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흰색 상의)과 최용해 당 부위원장이 뒤를 따르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가운데 앞)이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을 맞아 열린 열병식후 주석단을 한바퀴 돌며 참석자들과 참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흰색 상의)과 최용해 당 부위원장이 뒤를 따르고 있다. [중앙포토]

 
③심화조 사건의 재현?= 북한은 당과 경찰, 당과 보위성 등 기존 권력기관 간의 힘겨루기, 또는 서로 조사와 처벌을 통해 상대적으로 비대해진 권력을 견제해 왔다. 권력기관간의 암투를 이용해 권력기반을 다져온 것이다. 처벌의 무풍지대였던 총정치국을 당에서 손봤다는 점에서 1990년대 후반 심화조 사건의 연장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심화조 사건은 수십만의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90년대 후반 경제난을 일컫는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주민들과 간부들 사이에 체제에 대한 불만이 싹트자 비밀경찰 조직(심화조)이 조사를 통해 2만 5000여명을 숙청하거나 처형한 사건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채문덕 사회안전성(경찰) 정치국장이 문성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고문해 사망케 하는 등 두 권력기관 간 알력도 있었다. 채문덕은 조직지도부의 반격으로 2000년 처형됐다.

이번 사건 처리를 맡은 것으로 알려진 최용해는 2015년 혁명화 과정을 거쳤다. 공교롭게도 당시 국가보위상이던 김원홍이 조사와 처벌을 주도했고, 그가 이번에 처벌 대상이 된 것이다. 결국 권력기관간의 힘겨루기를 통한 견제, 피해를 본 인물이 나중에 가해자를 조사하고 처벌하는 과정 등을 놓고 보면 심화조 사건과 판박이인 셈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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