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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메시지 담았다는 일본 애니메이션, 반성의 태도 있나?

중앙일보 2017.11.21 13:54
 
 

일본 애니메이션 '이 세상의 한구석에' 들여다보기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 사진=라희찬(STUIDO 706)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 사진=라희찬(STUIDO 706)

[매거진M] 제41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 특별상,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 등. ‘이 세상의 한구석에’(원제 この世界の片隅に, 11월 16일 개봉,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는 일찌감치 해외 평단의 뜨거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등 일본이 겪은 전쟁의 참상을 평범한 여성 스즈(노넨 레나)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여겨 볼 지점은 제국주의를 향한 비판 의식이 얼마나 담겨있는지다. 이는 한국과 중국처럼 직접적인 전쟁 피해국에서 이 작품이 어떻게 소구될 지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지난 10월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만난 카타부치 스나오(57) 감독과의 인터뷰와 함께 논쟁점을 짚어 본다. 
 

관점을 바꾼 전쟁의 일상적 묘사 

‘이 세상의 한구석에’

‘이 세상의 한구석에’

히로시마 바닷가 마을의 소녀 스즈는 부모님과 오빠, 여동생과 산다. 가족들과 김을 만들고 몽당연필을 귀하게 여기며 학교를 다니는 하루하루. 멍하게 있길 잘 하는 스즈는 갑작스레 들어온 혼담을 받아들일 만큼 순박하다. 히로시마에서 멀지 않은, 낯선 군항 도시 쿠레로 시집 간 스즈는 묵묵히 살림을 배우지만 원형 탈모가 생길 만큼 삶이 녹록지 않다.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건 그림 그리기. 조용히 종이를 꺼내 쓱쓱 그림을 그리는 게 유일한 낙이다. 말수가 적고 어수룩한 스즈가 가진 단 하나의 언어가 바로 그림인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스즈가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만든다.
 
이 작품의 원작은 코노 후미요가 2007~2009년에 그린 동명 만화다. 카타부치 감독은 만화를 읽으며 “알지 못하고 지냈던 먼 친척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미시적인 관점으로 일상을 세심하게 묘사하는 표현 방식이 나와 비슷해 놀랐다.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

‘이 세상의 한구석에’

세 권으로 이뤄진 원작 만화는 1934년부터 1946년까지 스즈의 삶을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시집을 간 후 나라에서 배급하는 넉넉하지 않은 식재료를 아껴 먹으며 자족하는 일상, 짐짓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매일 들려오는 공습경보에 따라 계속 되는 대피 훈련. 이렇게 코노 작가와 카타부치 감독은 전쟁이 일본인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를 위해 당대 생활상을 치밀하게 조사하는 게 관건이었다. 카타부치 감독은 “지금 80~90대의 일본 노년 관객층이 이 작품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정도로 사실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원작보다 모호해진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 

‘이 세상의 한구석에’

‘이 세상의 한구석에’

그렇다면 왜 이 작품은 스즈처럼 주도적이지 않은, 순종적인 여인을 주인공으로 세웠을까. “그 시대에 자아가 강한 사람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즈는 전쟁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으며 성장한다. 오른팔을 잃는 사건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그는 자신의 뜻을 그림이 아닌 입으로 표현하게 된다. 이런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스즈라는 인물이 필요했다.” 카타부치 감독의 말이다. 문제는 애니메이션이 스즈에 초점을 맞추느라, 일본 제국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묘사를 덜어냈다는 점이다. 
 

“(내 몸도) 바다 건너 온 쌀과 콩으로 이뤄졌던 것” 

 
원작과 애니메이션 모두 스즈가 패전 선언을 듣고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후 원작에선 스즈가 마을에 걸린 태극기를 보고 “이 나라에서 정의가 날아가 버린다. 폭력으로 복종시켜 온 건가. 그러니까 폭력에 굴복하는 건가. 그게 이 나라의 정체인가. 차라리 나도 모른 채 죽었으면 좋았을 걸”이라며 오열한다. 조선을 폭력으로 침략했고, 더 강력한 힘을 가진 미국에 굴복하게 됐음을, 즉 일본이 폭력으로 점철된 가해국가임을 깨닫는 대목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선 태극기가 게양된 모습을 비춘 후, “(내 몸도) 바다 건너 온 쌀과 콩으로 이뤄졌던 것”이라는 스즈의 독백이 흐를 뿐이다. 원작에서 가장 강력하게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 장면을 에두른 것이다. 
 
카타부치 감독은 “주부인 스즈가 느낀 실제적 깨달음에 방점을 찍었다. 밥을 지어 먹이는 게 존재의 이유였던 그가 식량이 외국에서 들어왔음을 알게 되는 게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일제가 외국에서 쌀을 수탈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원작을 모르는 관객이라면 이러한 아리송한 표현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이 작품이 제국주의를 신봉한 ‘자국의 역사를 비판’하는지, ‘일본도 전쟁의 피해자’임을 말하는지 가늠하기에 말이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

‘이 세상의 한구석에’

카타부치 감독은 “제작 기간과 비용의 문제 때문에 애니메이션으로 옮기지 못한 부분을 더 채워 넣고 싶다”고 밝혔다. “일본인이 생각하기엔 일본도 피해자라 생각한다. 스즈와 같이 평범하게 살았던 이들이 겪은 상황을 이해하는 게 시작일 것이다. 이 단계를 밟아야만 한국과 중국 등 전쟁 피해국을 들여다보고, 전쟁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일본의 여러 감독이 전쟁이란 소재에 주목하는 건 그 때문이다.”
 

지워지지 않는 찝찝함,
일본의 현실 

M240_영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원제 この世界の片隅に) / 사진=에이원엔터테인먼트

M240_영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원제 この世界の片隅に) / 사진=에이원엔터테인먼트

스즈와 식구들은 전쟁으로 소중한 것을 잃었지만 타인을 보듬으며 다시 살아간다. 평화와 희망을 염원하는 이 작품의 태도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주제 의식이 다소 허망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지금의 현실 때문이다. 전범국으로서 일본 정부가 보인 반성적 태도는 미흡하다는 평을 받는다. 위안부 문제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상흔도 심각하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이런 예민한 시기에 도착한 작품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맑고 청량한 그림을 순수하게 즐기는 것이 편치 않은 이유다. 만약 이 작품이 전 세계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주려 했다면, 일본 정부가 그간 보인 태도를 넘어설 만큼 강도 높은 반성이 깃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작품의 정치적 태도를 해석하는 건 보는 이의 몫일 테다. 하지만 원작에서 분명히 드러난 자국에 대한 비판을 지워낸 설정부터 작금의 현실, 이 작품이 현재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애니메이션이 된 사실까지 두루 고려한다면 이 작품이 남긴 의문점은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다.
 
원작 만화『이 세상의 한 구석에』(미우)
 『이 세상의 한 구석에』 / ⓒ대원씨아이

『이 세상의 한 구석에』 / ⓒ대원씨아이

히로시마 출신 1968년생 여성 작가 코노 후미요가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다. 외할머니는 극중 스즈처럼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열아홉에 쿠레로 시집갔다. 코노 작가는 “외할머니 생전에 들은 이야기가 없어, 당시 히로시마와 쿠레의 상황을 철저하게 조사했다”고. 스즈의 삶과 히로시마의 역사적 상황을 한 달 단위로 정리하고, 이에 맞게 이야기를 구성했다. 표현 면에선 붓·볼펜·립스틱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차분하면서도 독특한 그림체를 선보였다. 2011년엔 방송사 일본 TV가 ‘종전 기념 드라마’로 제작한 바 있다. 코노 작가의 전작 『저녁뜸의 거리』(문학세계사) 역시 히로시마 원폭을 다룬다. 원폭 공습 이후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와 죄책감 등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는 평을 받으며, 코노 작가의 출세작이 됐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에이원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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