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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음악은 짠맛, 부드러운 음악은 쓴맛 더 잘 느끼게 해"

중앙일보 2017.11.21 12:13 종합 27면 지면보기
'제7차 아시안 푸드 스터디 컨퍼런스'에 참석차 방한한 찰스 스펜스 옥스퍼드 행동심리학 교수. 그는 미식물리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연구중이다. 강정현 기자

'제7차 아시안 푸드 스터디 컨퍼런스'에 참석차 방한한 찰스 스펜스 옥스퍼드 행동심리학 교수. 그는 미식물리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연구중이다. 강정현 기자

씹을 때 듣기 좋은 소리가 나면 과자를 더 맛있게 느낀다, 요거트 스푼이 가벼울수록 단맛을 잘 느낀다, 빨간색 음료수를 달게 느낀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이 명제들은 과학적 실험을 통해 증명된 연구 이론들이다. 대체 이런 엉뚱한 과학실험을 하는 괴짜는 누굴까. 주인공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찰스 스펜스 교수다. 20년째 ‘미식물리학(Gastrophysics·미식과 물리학의 합성어)’을 연구 중인 그가 이달 한국을 찾았다.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에서 개최된 ‘2017 제7차 아시안 푸드 스터디 컨퍼런스(AFSC) 및 추계 국제학술대회’ 강연을 위해서다. 그를 초대한 한국식생활문화학회 조미숙 회장은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간의 교류의 장을 기대하며 스펜스 교수를 초청했다”며 “인간의 다양한 감각이 맛에 미치는 비밀에 대해 연구한 그의 논문들은 음식에 관한 다양한 접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옥스퍼드대 찰스 스펜스 교수
‘미식물리학’ 20년 몰두 괴짜 과학자
“먹기 전 시각·청각 등이 맛 설정
살 빼려면 TV 보며 먹지 마세요”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미식물리학의 개념을 요약하면.
“지중해 휴가지에서 먹었던 와인을 집에 와서 먹으면 그때의 환상적인 맛이 안 난다고 한다.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각·청각·후각·촉각 등의 감각이 얼마나 집중하고, 뇌가 그것을 또 얼마나 기대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맛은 달라진다. 그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찰스 스펜스 교수 실험 중 한 장면. 영국 음식을 먹을 때 영국을 떠올리게 하는 시각적인 장치와 비틀즈 음악을 틀었더니 훨씬 맛있게 느꼈다는 내용이다. [사진 찰스 스펜스]

찰스 스펜스 교수 실험 중 한 장면. 영국 음식을 먹을 때 영국을 떠올리게 하는 시각적인 장치와 비틀즈 음악을 틀었더니 훨씬 맛있게 느꼈다는 내용이다. [사진 찰스 스펜스]

 
오감과 미각의 상관관계가 핵심인가.
“예를 들어 영국 음식을 먹을 때 비틀즈의 음악을 듣고 영국 국기 모양이 프린트된 테이블보가 깔려 있다면 평소 먹던 음식도 더 맛있게 느낀다. 한 프랑스의 셰프는 갈매기·파도소리 등을 들으며 굴을 먹으면 짜지 않고 더 맛있게 느끼게 된다는 실험결과도 발표했다.”
 
최근 연구 중 흥미로웠던 것은.
“포크·나이프 같은 식사도구의 무게에 따라 음식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 접시 위에 대충 담긴 음식보다 칸딘스키의 그림처럼 예술적인 플레이팅을 한 음식에는 소비자들이 기꺼이 2배 이상 돈을 더 낼 의향이 있다는 것 등을 실험했다.”
 
맛을 느끼기 이전에 눈으로 먼저 음식을 기대하게 된다는 찰스 스펜스 교수는 최근 칸딘스키의 그림을 이용해 접시 위 플레이팅이 예술적이면 소비자들은 기꺼이 두 배의 돈을 낼 의향이 있다는 실험을 했다. [사진 찰스 스펜스]

맛을 느끼기 이전에 눈으로 먼저 음식을 기대하게 된다는 찰스 스펜스 교수는 최근 칸딘스키의 그림을 이용해 접시 위 플레이팅이 예술적이면 소비자들은 기꺼이 두 배의 돈을 낼 의향이 있다는 실험을 했다. [사진 찰스 스펜스]

맛을 느낄 때 실질적인 미각보다 시각이나 후각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건가.
“맛에 있어서 미각은 가장 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맞다. 우리 뇌의 거의 절반은 시각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데 사용된다. 미각과 관련된 부분은 단지 몇 퍼센트에 불과하다. 우리는 먹기 이전에 ‘보고’ 또 ‘냄새를 맡으면서’ 그 음식에 대한 기대치를 미리 설정한다. 그 기대치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  
 
‘음파양념’이라는 이론이 있던데.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들리는 음악에 따라 음식 맛이 어떻게 달라지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쾌한 음악은 단맛을 더 잘 느끼게 하고, 고음의 음악은 신맛을 더 잘 느끼게 한다. 신나는 음악은 짠맛을, 또 재즈 같은 부드러운 음악은 쓴 맛을 더 잘 느끼게 한다. 반면 시끄러운 소리는 단맛을 덜 느끼게 만든다.”  
위 사진의 아이스크림 중 단맛을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빨강을 고른다. 똑같은 아이스크림도 스푼의 색깔에 따라 단맛의 정도를 다르게 느낀다. [사진 찰스 스펜스]

위 사진의 아이스크림 중 단맛을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빨강을 고른다. 똑같은 아이스크림도 스푼의 색깔에 따라 단맛의 정도를 다르게 느낀다. [사진 찰스 스펜스]

 
요리는 ‘먹기 위해’ 하는 게 전부였던 스펜스 교수가 인간의 감각에 관심을 갖게 된 건 ‘TV세트와 사운드 시스템’의 적절한 위치를 찾는 연구에 참여하면서다. 이후 휴대폰 인터페이스 디자인 등 시각·촉각에 관한 일을 하다 ‘맛’ 연구를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미식 분야에서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2008년 이그노벨상의 영양학상 부문을 수상하면서다. 이그노벨상은 노벨상에 빗대어 기상천외한 또는 신기한 이론을 발표한 괴짜 과학자들에게 주는 상이다. 당시 ‘써니 칩’ 소리와 맛의 차이를 같이 연구한 동료는 자신이 괴짜로 낙인찍힐까 두렵다며 수상을 거부했지만 스펜스 교수의 설득으로 공동수상했다.    
 
2008년 이그노벨상에 거부감은 없었나. 
“10년 전까지만 해도 내 실험연구는 상황이 어려웠다. ‘접시 색깔이 다르면 음식 맛이 달라진다고? 말도 안 돼!’ 이런 식. 이 상을 받으면 내가 해온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상을 수상한 덕분에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언론이 관심 가져주고, 연구를 발표할 여러 플랫폼을 만들 수 있었다. 그때 상을 안 받겠다고 했던 친구도 지금에 와선 ‘상 받기 잘했다’고 말한다.”        
접시 한쪽에 비균형적으로 놓인 음식보다는 정 중앙에 놓여서 시각적으로 균형감을 느끼게 하는 플레이팅에 소비자들은 돈을 더 지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찰스 스펜스]

접시 한쪽에 비균형적으로 놓인 음식보다는 정 중앙에 놓여서 시각적으로 균형감을 느끼게 하는 플레이팅에 소비자들은 돈을 더 지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찰스 스펜스]

 
한국 방문은 네 번째다. 한식 경험은.
“한식은 정말 흥미롭다. 한·중·일은 각기 다른 소재·모양의 젓가락을 쓰는데 진짜 다른 맛을 느낄까 궁금하다. 또 인삼 등의 음식을 ‘약으로 먹는다’는 게 흥미롭다. 아직 직접 먹어보진 못했지만 오래전부터 궁금한 건 ‘산낙지’. 많은 사람들이 신선한 음식을 바라면서도 그것을 죽여서 요리하지 않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산낙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하다.”  
 
한국 음식에 대해 아는 게 많다.
“아직 구체적으론 잘 모른다. 하지만 어제는 또 반찬문화가 궁금해졌다. 메인 요리 외에 여러 개의 작은 접시에 반찬들이 나왔는데,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맛을 내가 알아서 조합하도록 하는 문화는 다른 나라에선 본 적이 없다. 내가 마치 식탁에 앉아 또 다른 조리과정에 참여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이 상황을 연구하고 싶어졌다.”  
 
영국의 대표음식 ‘피시 앤 칩스’를 맛있게 먹으려면. 
“삼촌, 이모 등등 우리 집 가족들이 모두 피시 앤 칩스 가게를 운영했기 때문에 정말 많이 먹었고 또 좋아하는 음식이다. 일단 종이로 싸서 손으로 먹어야 맛있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먹어야 확실히 더 맛있다.
 
각기 맛이 쓰고 달고 짜고 신 소스들을 이용해 색깔(시각)이 맛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찰스 스펜스 교수의 실험. [사진 찰스 스펜스]

각기 맛이 쓰고 달고 짜고 신 소스들을 이용해 색깔(시각)이 맛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찰스 스펜스 교수의 실험. [사진 찰스 스펜스]

가스트로직스의 궁극적인 목적은 뭔가. 
“음식을 먹을 때 주변 환경에 조금 더 신경 써보라 제안하고 싶다. 내가 유난히 맛있게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고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사회적으로 활용한다면 병원 등에서 환자식을 낼 때 식욕을 돋우는 방법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감각을 이용한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법은.
“TV를 보면서 먹지 말고, 작은 접시에 담아 조각으로 잘라 먹어라. 식사 중에 얼음물을 마시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미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음식은 천천히 느긋하게 즐겨야 한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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