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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같아도 한라산·지리산 구상나무 유전자는 달라

중앙일보 2017.11.21 12:00
덕유산에서 서식하는 구상나무. 추운 겨울 눈꽃을 피우고 서 있다.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덕유산에서 서식하는 구상나무. 추운 겨울 눈꽃을 피우고 서 있다.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에만 분포하는 희귀식물인 구상나무.
같은 구상나무라도 제주도 한라산에서 자라는 것과 지리산에서 자라는 것이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생물자원관, 구상나무 유전자 다양성 분석
제주 '한라산형'과 육지 '한반도형'으로 구분돼
각 집단들 유전적 다양성 자체는 높은 수준
"다양성 위해 일부러 옮겨 심을 필요는 없어"

'뿌리'는 같지만 오랜 시간 바다를 사이에 두고 다른 환경에 적응하면서 차이가 생겨난 셈이다.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은 2014~2016년 3년간 한라산과 지리산 등에 서식하는 구상나무의 유전자 다양성을 분석한 결과, 유전자형이 크게 한라산 집단으로 대표되는 '한라산형'과 나머지 집단 유형인 '한반도형'으로 구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구상나무는 지구 상에서 한국에만 분포하는 고유 침엽수종으로 한라산·지리산·덕유산·가야산 등 한반도 남쪽 아(亞)고산지대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구상나무 유전자 시료를 채취한 곳. 이들 지역은 구상나무가 분포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자로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구상나무 유전자 시료를 채취한 곳. 이들 지역은 구상나무가 분포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자로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이 이번에 한라산 등지에 서식하는 구상나무 176그루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지리산 등 각 구상나무 집단의 유전자 다양성 자체는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자 다양성을 나타내는 지수인 이종접합도(Heterozygosity, He) 값이 지리산 집단 55그루는 0.778, 덕유산 집단 11그루는 0.760, 가야산 집단 22그루는 0.754, 한라산 집단 78그루는 0.705이었다.
이종접합도는 하나의 유전자(gene)를 구성하는 대립유전자(allele)가 야생 생물집단 내에 얼마나 다양하게 존재하느냐를 나타내는 값인데, 일반적으로 He값이 0.5 이상이면 유전자 다양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한다.
국내 구상나무 집단은 이 He값이 모두 0.7 이상으로 산출돼 다양성이 높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구상나무 [사진 문순화]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구상나무 [사진 문순화]

특히 국내 분비나무나 외국의 전나무 속(屬) 침엽수와 유전자 다양성을 비교했을 때도 낮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유전자 다양성 지수 He 산출은 구상나무 전체 유전체(genome) 가운데 19개 부위(Marker)에서 DNA 염기 서열을 분석,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분석에서 시료 수가 1~3개 불과한 백운산·속리산·신불산의 경우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어 최종적인 비교에서는 제외했다.
구상나무 [동북아생물다양성 연구소]

구상나무 [동북아생물다양성 연구소]

연구팀이 구상나무 각 개체를 유전형에 따라 모델링 기법으로 분류한 결과, 구상나무들은 한라산형과 한반도형 두 그룹으로 확연히 구분됐다.
한라산과 육지에서 자라는 구상나무가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구상나무 유전자 분석 결과 [자료 국립생물자원관]

구상나무 유전자 분석 결과 [자료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생물자원관 식물자원과 곽명해 연구관은 "한반도 육지와 제주도 구상나무가 지리적으로 격리됐고, 오랜 시간 동안 내륙의 아고산지역과 한라산 지역에 적응하면서 각각 고유한 유전적 특성을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륙에서는 구상나무 집단이 꽃가루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제주도와는 꽃가루를 주고받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헬기에서 내려다본 지리산 명선봉(1586m)의 구상나무 군락. [중앙포토]

헬기에서 내려다본 지리산 명선봉(1586m)의 구상나무 군락. [중앙포토]

곽 연구관은 "현재 각 구상나무 집단이 유전적 다양성이 풍부한 것으로 나타난 만큼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다른 곳의 구상나무를 옮겨 심을 필요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과거 한라산 구상나무를 지리산에 옮겨심는 사업이 진행된 적도 있었으나,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인 '보전유전학회지(Conservation Genetics)' 10월호에 발표됐다.

구상나무 유전자 다양성 논문이 실린 국제 학술지 '보전유전학회지' 10월호 표지 [자료 국립생물자원관]

구상나무 유전자 다양성 논문이 실린 국제 학술지 '보전유전학회지' 10월호 표지 [자료 국립생물자원관]

구상나무는 과거 신생대 제3기 빙하기 때 한반도 남쪽까지 분포 범위가 확대됐으나 빙하기가 물러가면서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만 살아남았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구상나무를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덕유산의 구상나무 [중앙포토]

덕유산의 구상나무 [중앙포토]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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