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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수능을 앞둔 학부모로서 해보는 생각들

중앙일보 2017.11.21 02:19 종합 32면 지면보기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나는 수능을 이틀 앞둔 수험생의 학부모다. 서울 강남에 살고 특목고 다니며 대치동 학원을 열심히 다니는, 그런 학부모인 주제에 염치없지만 그래도 안쓰럽다. 어쩜 이리 챙겨야 할 것도 많고 복잡한지. 답답한 마음에 어차피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단순명쾌한 옛날 학력고사가 공정하지 않을까 하는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랬더니 전문가들이 그거야말로 나 같은 강남 학부모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고, 수능 성적 줄 세우기를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편중이 극심해질 거라고 일깨워주었다. 우리 사회의 교육 격차는 이미 그 정도라는 것이다.
 
일상有感 11/21

일상有感 11/21

미국의 경우에 관한 책을 읽었다. J. D.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다. 밴스는 약물중독, 폭력이 만연하고 교육에 적대적이기까지 한 빈곤층 문화 속에서 자랐다. 고교 시절 결석·지각을 수십번 했고, 쉬운 수업에서도 C학점을 받곤 했다. 주립대학에 진학하려 했지만 학비 대출을 감당할 수 없어 해병대에 입대한다. 제대 후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용기를 내 예일 로스쿨에 지원한다. 미국 명문사립대는 엄청나게 비싸지만 빈곤층에겐 오히려 싸다. 풍부한 장학금 때문이다. 위스콘신대에 가면 1만 달러를 내는데 하버드에 가면 1300달러만 부담하는 식이다. 그는 예일 졸업 후 실리콘밸리에서 투자회사를 운영하며 전 세계에 빈곤 노동계층의 실상을 절절히 알리는 좋은 책을 썼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 곳곳에 있을 밴스들에 비해 내 아이는 얼마나 좋은 여건에서 공부하는지 생각했다. 요즘 대학가에는 지역균형·기회균등·사회배려자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들을 비하하는 학생이 일부 있단다. 죽도록 노력했는데 역차별당했다는 억울한 감정도 알겠다. 하지만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매단 채 진창길 100m를 홀로 뛴 선수와 일류 코치의 도움을 받으며 매끈한 트랙 100m를 뛴 선수의 기록을 똑같이 비교하는 게 공정할까? 밴스의 경우처럼 잠재력은 좋은 기회가 주어지면 꽃을 피운다. 게다가 인간은 어차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 다양한 곳에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사회 전체에 힘을 준다. 재난을 당한 경쟁자들을 위해 모두가 참고 기다려준 이번 수험생들은 그래서 더 큰 것을 배우며 시작하는 것이다. 일주일 더 버티고 있는 아이를 보면 안쓰럽지만 말이다.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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