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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의 포린 어페어즈

“키신저의 북핵·미군철수 빅딜론, 바보 같은 얘기”

중앙일보 2017.11.21 01:29 종합 6면 지면보기
스트라우브 전 미 국무부 한국과장
2009년 8월 4일 억류된 미국 여기자들의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일행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념사진. 뒷줄 오른쪽 둘째가 스트라우브 연구위원이다. 북한은 클린턴 대통령을 불러놓고 오바마 행정부에 아무런 메시지도 전하지 않았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2009년 8월 4일 억류된 미국 여기자들의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일행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념사진. 뒷줄 오른쪽 둘째가 스트라우브 연구위원이다. 북한은 클린턴 대통령을 불러놓고 오바마 행정부에 아무런 메시지도 전하지 않았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북한의 핵 고도화 완성 이후엔 정말 전쟁의 순간이 올 수도 있다.” 1979년 미국의 외교관으로 서울에 첫발을 디딘 이후 미 국무부 한국과장을 거쳐 40년째 한반도 이슈에 천착하고 있는 데이비드 스트라우브(62·David Straub) 세종연구소 세종-LS 연구위원의 말이다. 그는 제네바 4자회담(1996~98년)과 1~3차 베이징 6자회담(2004~2006년)에 실무 참여했고, 은퇴 뒤에도 2009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수행해 억류된 미 여기자 석방을 위해 방북했다.

북한, 성공한 대한민국 무서워 해
핵 지렛대로 미국에 한국 포기 압박
평화 공세로 나와도 본질을 봐야

미군 4만 희생으로 지킨 땅 철수?
미국 자존심상 있을 수 없는 일

 
북한의 도발이 잠잠하다.
“좋은 일을 하려고 쉬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핵미사일 추가 실험 관련) 기술적인 문제가 있거나, 미국의 항모가 너무 많이 와 있어서 조심하고 있거나, 중국의 화를 의식한 조치일 수 있다.”
 
북한이 유화적으로 나올 수도 있는데.
“북한의 언행은 거짓말과 진실로 나뉘지 않는다. 목적에 맞출 뿐이다. 잠시 쉬어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면 지금이라도 평화공세를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대화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북한 체제의 본질을 직시하면서 의도에 끌려다니지 말고 협상해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은 지난 30년간 우리를 바보 취급했다.”
 
스트라우브 위원은 “북한은 성공한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를 무서워하고 있다”며 “핵보유 목적은 핵을 지렛대로 미국을 압박해 한국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목적을 이룰 때까지 북한은 더 고도화된 핵과 미사일로 고강도 협박을 할 것이다. 그 상황이 계속 갈 수는 없다. 미국이 떠나거나, 아니면 전쟁이 나거나. 한반도의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성공해야 한다.”
 
1950년 1월의 에치슨라인처럼 미국이 한국에서 물러날 수 있나.
“6·25 전쟁 때 미군 3만3686명이 죽고, 8176명이 행방불명됐다. 미국 내에선 대한민국을 잃어선 안 된다는 본능이 있다. 비록 미 대통령이 그것을 모를지라도 정치권과 언론 등이 갖는 정서가 있다. 세월이 흘렀고, 언젠가 바뀔 수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 더구나 북한이 핵 몇 개로 위협한다고 겁먹고 3만4000명의 목숨으로 지킨 땅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공화·민주당 할 것 없이 미국의 자존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북핵 해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맞바꾸는 이른바 ‘미·중 빅딜론’을 냈는데.
“바보 같은 얘기다. 미국 안에서 키신저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향력도 없다. 중국에 아부하며 중국의 돈을 받았다고들 한다. 늘 미·중 둘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핵을 가져서 미군이 떠난다? 상식적이지 않다.”
 
트럼프가 중국 방문 전 키신저를 만났다.
“둘 다 뉴욕 사람이다. 트럼프는 50년간 섹시하고, 똑똑한 부자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며 싸구려 언론 앞에서 엉뚱한 짓을 해왔다. 키신저와 의논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쇼일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추구해 온 외교안보 정책을 파괴하는 트럼프에 대한 공화당 주류의 위기감도 크다.”
 
한·미 정상회담 후 문재인 대통령의 모두발언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얘기가 담겼다.
“96~98년 4자(남·북·미·중)회담을 복기해 봐야 한다. 클린턴·김영삼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뒤 2년간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 집중했다. 중국까지 나서 북한을 테이블에 앉혔는데, 북한은 2년 내내 미·북 협정 사인과 미군 철수만 주장했다. (신뢰 구축 등) 협정 내용엔 관심이 없었다.”
 
스트라우브 세종연구소 위원은 ’북한의 핵보유 목표는 미군 철수와 한국 통제“라고 했다. [최정동 기자]

스트라우브 세종연구소 위원은 ’북한의 핵보유 목표는 미군 철수와 한국 통제“라고 했다. [최정동 기자]

스트라우브 위원은 “북한이 핵을 사실상 보유한 지금 협정을 얘기하면 ‘한반도의 외세 배격’을 더 강하게 주장할 것”이라며 “4자회담 20년이 지난 현재는 중국의 존재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0년간 국방비가 급증한 나라는 일본도, 미국도 아닌 중국(2016년 224조원)이다. 지금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목표는 주한미군 철수다. 중국과 북한의 전략적 목표는 같아졌다. 사드가 아니라도 중국이 원치 않는 것을 한국이나 한·미가 하려고 하면 더 센 제재 비슷한 것을 한국에 취할 것이다. 한국에서 한·미·일 공조를 두고 냉전 구도의 부활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누가 냉전 구도 복원을 추구하나. 중국과 러시아다.”
 
2009년 8월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방북해 억류 여기자 두 명을 데려왔는데.
“북한이 5개월간 인질로 잡고 있다가 전직 대통령을 불렀다. ‘미국과 대화하려는 신호’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 일행에게 어떤 메시지도 주지 않았다. 사진(김정일과 클린턴) 한 장 찍어 체제 선전을 하려 했는지, 의도를 아직도 모르겠다. 왜 미국인을 인질로 삼고 협박할까. 이런 것에 대한 미국의 대북 반감을 아는 고위층이 있을 텐데 왜 계속할까. 웜비어 사건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해로운 일을 하는 것이 그들에겐 선(善)이어서 그럴까. 결국은 체제의 본질 문제가 아닐까.”
 
2006년 조기 은퇴했다고 들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더는 함께할 수 없었다. 부시 행정부가 테러용의자들에게 가한 물고문(Waterboarding), 이라크 침공 이런 것 말이다. 1982년 당시 국무부의 연례 인권 보고서 자료를 만들 때 한국 내 물고문 사례를 보고하면서 충격을 받았는데, 그걸 미국이 한 것이다. 외교관으로서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심리적으로 참기 힘들었다.”
 
스트라우브 위원은 인터뷰를 한국말로 했다. 막힘이 없었다. “젊었을 때 더 열심히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나이 들어 교정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한국인 부인과의 사이에 2남1녀를 뒀다. 올해 초 세종연구소로 오기 전 미 스탠퍼드대 한국학센터 부소장을 지냈다. 반미주의가 분출한 1999~2002년 경험을 토대로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를 냈다.
 
김수정 외교안보 선임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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