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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공모 보험사기 판치는데 … 단속 사각지대

중앙일보 2017.11.21 01:00 경제 7면 지면보기
A씨는 지방 18개 병원에 입원을 반복하며 입원비 명목으로 2008부터 8년간 10개 보험사에서 4억2000여만원을 받아냈다. 하지만 A씨가 보험사에서 타낸 돈이 실제로는 간 곳은 대부업자 B씨의 주머니다. B씨는 채무자 A씨의 명의로 실손보험 등에 가입한 뒤 보험료를 대납했다. A씨는 병원에 입원해 받은 보험금으로 B에게 진 빚을 갚았다. 보험사가 채무자의 빚을 갚아준 셈이다.
 

기업화·대형화하는 보험사기
한의사·가짜환자 짜고 220억 타 내
조사하면 다른 곳서 떴다방식 영업

발각돼도 과징금 적어 사기 기승
적발된 의사·병원 처벌 강화해야

사채를 갚기 위해 가짜 환자로 입원해 보험사에서 돈을 받은 사람은 A씨만이 아니다. 지난 10일 경찰은 대부업자에게 병원을 소개받아 입원하고 보험금을 타낸 가짜환자 53명을 검거해 이 중 6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10여년간 전국 96개 병원에 원정 입원하며 보험금을 부당하게 받아냈다. 환자 1인당 보험사에서 타낸 보험금은 최소 4000만원에서 최대 4억2000만원에 이른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대부업자와 가짜 환자가 결탁한 보험사기의 중심에는 한의사 C씨가 세운 한방병원이 있다. C씨는 지방에서 한의대 동문을 ‘바지 원장’으로 고용해 2010년부터 지난달까지 4개의 한방병원을 세웠다. 이들 병원의 행정실장은 속칭 ‘나이롱 환자’(멀쩡한 몸으로 장기간 입원해 보험금을 타내는 환자)에게 각종 보험 관련 컨설팅하며 가짜 환자를 모집했다. ‘병원-대부업자-가짜 환자’가 삼각편대를 이룬 기업형 보험사기로 2010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C씨 등 한의사 3명과 A씨 등 환자 53명이 민간보험사(약 190억원)와 국민건강보험공단(약 38억원)에서 타낸 보험금은 220억원에 이른다.
 
의료인이 공모하면서 보험 사기가 점차 기업화·대형화하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한방병원은 명목상 병원이지만 진료와는 거리가 멀었다. 모텔을 개조해 병원을 만들고, 입원 환자에게 환자식 대신 뷔페식 식사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 관리도 허술해 입원 기간 중 해외여행을 가거나 생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이종환 금융감독원 보험사기대응단 부국장은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보험사는 의료 정보에 접근할 수 없고, 금감원도 조사 권한이 없다. 실손보험이 지급하는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공단의 조사대상이 아니다. 이처럼 각 기관과 보험사가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다 보니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병원의 ‘떴다방’식 영업도 단속이 어려운 이유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업무 간소화를 내세워 병원 개설 허가 업무를 보건소 등에 위임하며 병원 개·폐업은 더 쉬워졌다.
 
김태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보험사기 등을 저지르는 의료인이나 병원 등이 적발되더라도 과징금이 많지 않거나 실제 행정 처분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등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이러한 사기가 줄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보험사기 피해액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보험사기 피해액은 3703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말 피해액(7185억원)은 2012년(4533억)에 비해 58.5%나 늘었다. 수사로 적발된 보험사기 금액은 올 상반기에만 1010억원이다. 결국 보험사기 피해는 선량한 다른 보험가입자가 지게 된다. 보험사기로 인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비싼 보험료를 내야 해서다. 보험사의 손실률이 높아지며 올해 들어 11개 손해보험사 실손보험료는 평균 19.5%, 14개 생명보험사의 실손보험료는 평균 7.2% 올랐다.
 
김희경 생명보험협회 보험범죄방지팀장은 “병원과 연계한 보험사기 적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 보험사와 건강보험공단, 수사기관이 주기적으로 현장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보험사기로 적발된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한 처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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