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노키오 어디까지 알고 있니?...21세기 피노키오의 귀환

중앙일보 2017.11.21 00:30
카를로 클로디 원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1940년 만들어진 이래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을 받아왔다.

카를로 클로디 원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1940년 만들어진 이래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을 받아왔다.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인형.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캐릭터 '피노키오'다. 1831년에 쓰인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으니 그 나이가 무려 200살에 가깝다. 월트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 '피노키오'(1940)도 77세다. 그런데 지금 할리우드에선 다시 '피노키오' 영화 제작 붐이 일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메이저 제작자, 감독들 제작 경쟁 치열
현재 제작 준비중인 영화만 4편
영국 국립극단(NT)은 12월 1일부터 연극 상연
매력 넘치는 캐릭터력에 사회 풍자 메시지까지 재조명

 
현재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피노키오' 영화만 4편. 영국에선 연극으로 도전장을 냈다. 영국 국립극단(National Theatre)이 오는 12월 1일부터 연극 '피노키오'를 무대에 올리는 것.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영국과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제작자들과 영화·연극 연출자들이 '피노키오' 리메이크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21세기 피노키오의 귀환'이다.   
 
영국 국립극단이 12월 1일 개막해 상연할 '피노키오'. 디즈니와 협약을 맺고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에 담긴 주옥같은 곡들을 편곡해 다시 들려준다. [영국 National Theatre]

영국 국립극단이 12월 1일 개막해 상연할 '피노키오'. 디즈니와 협약을 맺고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에 담긴 주옥같은 곡들을 편곡해 다시 들려준다. [영국 National Theatre]

 
네 편의 영화, 한 편의 연극  
 우선 디즈니는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의 실사영화 제작 프로젝트의 하나로 2015년부터 '피노키오'의 제작을 추진해왔다. 각본가를 고용해 시나리오를 개발했고 연출은 두 편의 007영화 '스카이폴'과 '스펙터' 를 연출한 샘 맨데스 감독에게 맡겼다. 그러나 맨데스 감독이 최근 하차키로 해 현재 새 감독을 물색 중이다. 
'아이언맨'의 주연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는 아내와 함께 '피노키오' 제작에 직접 참여하며 극에서는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할아머지 역할을 맡아 출연할 예정이다.

'아이언맨'의 주연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는 아내와 함께 '피노키오' 제작에 직접 참여하며 극에서는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할아머지 역할을 맡아 출연할 예정이다.

 
 '아이언맨'에서 주역을 맡았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역시 '어메리칸 뷰티'의 제작자인 댄 징크스와 함께 손잡고 영화를 준비 중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내와 함께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동시에 피노키오를 창조한 할아버지 목수 제페토 역을 맡기로 했다. 
 
'헬보이' '판의 미로' 를 연출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피노키오'를 재해석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영상미로 유명한 델 토로 감독은 이미 10년 전에 피노키오 영화화를 선언한 인물. 그만큼 피노키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러나 투자사를 제대로 찾지 못해 구체적인 제작 일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제작자로 유명한 영국 출신의 제작자인 제러미 토마스도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그는 이탈리아 감독 마테오 가로네와 함께 손을 잡았다. 가로네 감독은 고딕풍의 미장센에 호러와 판타지를 섞은 영화 '테일 오브테일즈'를 연출한 인물. 이들의 '피노키오'는 제페토와 피노키오 역을 맡을 소녀(소년이 아니라 소녀다!) 까지 캐스팅이 이뤄진 상태다. 
  
한편 영국 국립극단은 디즈니 측과 협업해 존 티파니 감독의 연출로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한 피노키오를 무대에 올린다. 티파니 감독은 지난해 개막한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들' 을 원작자인 조앤 롤링과 함께 집필하고 연출한 인물. '해리포터…'로 지난 4월 영국 공연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올리비에 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연출상·남녀주연상 등 9개 부문 상을 휩쓴 그가 어떤 '피노키오'를 보여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친근한 '동화' 재조명 경쟁...왜?    
 그런데 왜 문화 콘텐트 제작자들은 갑자기 '피노키오'에 눈을 돌리게 됐을까.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공식 포스터. 전세계에서 10억 달러를 벌어들여 영화사에서 가장 큰 수입을 올린 영화 5위로 기록됐다.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공식 포스터. 전세계에서 10억 달러를 벌어들여 영화사에서 가장 큰 수입을 올린 영화 5위로 기록됐다.

 가디언에 따르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제작자 댄 징크스는 "7년 전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개봉했을 때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한화 약 1조 3000억원)를 벌어들인 것. 이후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퍼블릭 도메인'(저작권이 소멸한 작품)의 대작을 찾는 경쟁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열림원 출판사의 정중모 대표는 국내에서 '피노키오'가 가진 문화 콘텐트의 잠재력을 비교적 빠르게 알아보고 준비해온 인물. 피노키오 완역본을 비롯해 마사 판슈미트·로버트 잉펜의 그림책 등 관련 서적을 다수 출간하고 2013년부터 피노키오 뮤지엄(관장 이상영)을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를 경영하며 동화 시장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는 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더불어 '피노키오' '빨간 모자' 등 3개 작품의 인기는 남다르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재해석할 여지가 풍부한 동화로 평가받는다는 것. 또 동화에 곁들여진 판타지는 세계적인 일스트레이터나 아티스트의 창작욕을 자극하는 '열린 텍스트'로서 매력이 크다고 덧붙였다.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시각적으로도 표현할 요소가 무궁무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다.   
 
'피노키오'의 매력에 대해 '마지막 황제'의 제작자인 제러미 토마스는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라는 점을, 가로네 감독은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꼽는다. "검은 토끼들, 죽은 소녀의 목소리, 저절로 커지는 코, 당나귀로 변한 소년 등 더 끌어내고 발전시켜 볼 만한 주제가 그득하다"는 얘기다.
 
1883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카를로 클로디 원작『피노키오의 모험』초판 표지. [위키피디아]

1883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카를로 클로디 원작『피노키오의 모험』초판 표지. [위키피디아]

 
 피노키오는 어떤 작품?
 이탈리아 작가 카 로렌치니(필명 카 콜로디, 이하 콜로디)가 1881년에 어린이 잡지에 연재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이 이야기에서 피노키오는 강도에게 붙잡혀 돈을 빼앗기고 떡갈나무에 매달려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피노키오의 죽음을 암시한 것이다. 그러나 연재를 계속하라는 독자들의 항의로 피노키오는 다시 살아나 모험을 시작하고, 1882년부터 83년까지 연재가 이어져 83년 『피노키오의 모험』이란 제목으로 단행본이 출간됐으며 지금까지 240여 개의 언어로 번역돼 식지 않는 사랑을 받아 왔다. 
 
 시대를 초월한 다층적 매력  
 그렇다면 현대인에게도 통할 것이라고 믿어지는 피노키오의 매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피노키오는 단순히 말을 잘 안 듣는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작가 클로디는 정신적·신체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피노키오가 집을 떠나 만나게 되는 여러 인물과 섬뜩한 사건을 통해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피노키오 뮤지엄의 김미금 학예사는 피오키오는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결합한 장르에, 흥미진진한 '모험'의 서사, 호기심 많고 자유분방하며 실수투성이 캐릭터 등 다층적인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피노키오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다. 호기심 많고, 얼토당토 않은 꾐에 쉽게 넘어가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적당히 이기적이면서도 내면에 악의가 없는 캐릭터의 매력이 작품의 생명력에 큰 역할을 한다.

피노키오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다. 호기심 많고, 얼토당토 않은 꾐에 쉽게 넘어가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적당히 이기적이면서도 내면에 악의가 없는 캐릭터의 매력이 작품의 생명력에 큰 역할을 한다.

자유분방한 캐릭터 
 인하대 영문과 유영종 교수는 "원작인 '피노키오의 모험'엔 사회정치, 철학, 신학 등 여러 관점에서 재해석할 여지가 있다"며 특히 피노키오를 "독자들이 외면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평가한다.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을 즐기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피노키오야말로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생명력을 보여주는 캐릭터라는 것. 약간 이기적이고 고집도 심하지만, 내면에 악의가 없는 캐릭터로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다고 본다. 
 대구가톨릭대 국문과 김효신 교수 역시 "거침없이 행동하는" 피노키오의 성격에 주목한다. "책을 팔아 인형극을 보러 가고, 공부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하고, 고양이와 여우의 얼토당토않은 꾐에 쉽게 넘어가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자리 합리화에 당당"한 피노키오는 평범한 아이들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디즈니의 작품은 피노키오를 대중화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선악의 구도를 단순화하는 등 지나치게 교훈을 강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디즈니의 작품은 피노키오를 대중화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선악의 구도를 단순화하는 등 지나치게 교훈을 강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인간과 사회 풍자, 과학기술에 대한 경고까지 
 유영종 교수는 "원작엔 이탈리아의 빈곤한 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며 "피노키오의 자유분방함 속에 궁극적으로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도 숨어 있다"고 덧붙였다. 김효신 교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부딪치는 사회의 여러 제도를 유머와 재치, 그리고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그려내고 있다"고 말한다.    
피노키오가 영감을 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 하비 박사가 만든 인공지능 (AI) 데이비드는 피노키오 동화를 떠올리며 마법의 힘으로 진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피노키오가 영감을 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 하비 박사가 만든 인공지능 (AI) 데이비드는 피노키오 동화를 떠올리며 마법의 힘으로 진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피노키오는 사이보그의 원형?
 
 유 교수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21세기에 다시 읽을 때 작품에 담긴 과학기술 발달에 대한 우려까지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 인형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설정에서 '포스트 휴먼 사이보그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유 교수는 "피노키오의 모험은 첫 부분부터 인간과 인간이 만든 피조물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만들었지만, 피노키오는 만들어진 순간부터 제페토의 의사와 상관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말썽을 부린다는 점에서 포스트 휴먼 시대의 문제까지 경고하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