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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 비주얼에 연기력까지, 올해 주목할 신인 배우 이가섭

중앙일보 2017.11.20 11:17
'폭력의 씨앗'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이가섭. [사진=정경애(STUDIO706)]

'폭력의 씨앗'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이가섭. [사진=정경애(STUDIO706)]

[매거진M] ‘폭력의 씨앗’(11월 2일 개봉, 임태규 감독)은 충무로에 갓 수혈된 신선한 얼굴들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영화다. 특히 주연을 맡은 이가섭(26). 이 영화는 그의 감정과 호흡에 기대 83분을 달려간다. 군대 선임의 구타에 시달리다 외박을 나온 주용(이가섭)은 군대 밖에서도 누나를 때리는 매형을 보며 고통스러워한다. 폭력적인 분위기에 노출된 채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있는 주용. 폭력은 어디서 잉태하고 어떻게 세습되는가. 그 질문을 온몸으로 짊어진 명민한 배우를 만났다.  

'폭력의 씨앗' 첫 장편 주연
배우 이가섭 인터뷰

 
-첫 장편 주연작이다. 관객과의 대화도 했을 텐데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다.  
“너무 감사한 게 첫 번째다. 개봉 첫날 CGV 아트 하우스 압구정에서 GV를 했는데 많은 분이 와주셨더라. 영화 보러 자주 다니던 극장인데 내 주연작이 걸리고 GV도 하니까 ‘아, 내가 열심히 살고 있구나. 또 와야지.’ 생각하게 되더라(웃음). 모든 게 처음이라 하루하루 설렌다.”
 
-영화 전체를 짊어지는 역할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땠나.  
“대학(세종대 영화예술학과) 졸업하고 1년 만에 받은 장편 주연 시나리오였다. 살면서 처음이었고 무조건 하고 싶었다. 군대 얘기라 한국 남자라면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하고, 주용처럼 실제 친누나가 있어서 상황에 이입하기 쉬웠다. 고민이 많을 때, 고민이 필요한 작품을 만나서 함께 고민한 느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끌고 가야 하는 부담은 있었지만, 동료들이 도와줘 완주할 수 있었다.”
 
영화 '폭력의 씨앗'

영화 '폭력의 씨앗'

-카메라가 곁에서 계속 따라다니며 주용의 내면을 응시한다. 롱테이크도 많은 영화라 고충이 컸을 것 같은데.  
“되게 재밌었다. 리허설을 충분히 했고, 덕분에 집중력이 많이 늘었다. 길 때는 한 테이크가 6~7분까지 갔다. 감독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부담감을 덜어줬다. 아마 가장 힘든 건 핸드헬드로 찍어야 했던 촬영 감독님이 아니었을까.”


-군대 내 선임과 후임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 관계를 현실적으로 잘 표현했더라. 군필자들이 공감을 많이 했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눈에 보이는 폭력이 아니더라도, 군대 내에 흐르는 긴장감을 잘 그리려고 노력했다. 또래 배우들과 철원에서 일주일간 합숙하며 정말 친해졌다. 그러다 촬영이 시작되면 선임병들의 표정이 딱 ‘갈구는 눈빛’으로 변하더라(웃음). 후임인 필립 역의 정재윤 배우와 가장 의지했던 것 같다.”
 
영화 '폭력의 씨앗'

영화 '폭력의 씨앗'

-영화엔 주용의 전사가 없다. 그는 어떤 인물일 거라 생각했나.  
“누나 주아(소이)와 주용이의 과거에 분명 폭력적인 상황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가 폭력을 행해서 따로 살고 있다고 전사를 짰는데 굉장히 유용했다. 그게 연기하면서 자꾸 상기되다 보니, 주용의 답답함이 절로 표현된 것 같다.”  
 
-주용의 감정이 서서히 고조되는 게 인상적이었다.  
“불안함을 일부러 표출하진 않았다. 불안함을 노출하면 오히려 불안해 보이지 않을 것 같더라. 그저 상황에 따라갔다. 예를 들어 외박을 나와 누나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애들은 맞으면서 크는 거야’라고 말하지 않나. 그런 일상의 폭력적인 상황에 집중했다." 
 
-가장 괴로웠던 장면은 뭔가.  
“(손찌검하는 매형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누나를 내가 때렸을 때. 누나와 매형은 자기만의 울타리가 있을 텐데, 밖에 있던 내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누나를 빼낼 수 있을까. 그저 답답하고 막막했다.”
 
'폭력의 씨앗'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이가섭. [사진=정경애(STUDIO706)]

'폭력의 씨앗'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이가섭. [사진=정경애(STUDIO706)]

-결국 폭력에 길든 주용은 자신이 가해자가 된다. 이 영화의 문제의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요새 관객들이 올려준 리뷰를 자주 본다. 누군가 ‘주용의 마지막 모습을 뒤에서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올렸더라. 되게 공감 갔다. 가슴으로 보고 쓴 리뷰였다. 사회와 군대에 폭력이 만연하다는 인식도 중요하지만, 폭력에 노출된 사람에게 누군가 손이라도 한 번 내민다면 그 연쇄 고리가 끊어지지 않을까. 이 영화의 모든 인물은 저마다 아픔이 있다. 상병이나 병장도 분명 이등병, 일병 때 세습되어 내려오던 관행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올 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부문 대상을 받았다.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폭력의 씨앗’ 전과 후는 어떻게 다를까.  
“배우로서 내 안에 ‘좋은’ 씨앗이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치열하게 살려고 한다.”
 
'폭력의 씨앗'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이가섭. [사진=정경애(STUDIO706)]

'폭력의 씨앗'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이가섭. [사진=정경애(STUDIO706)]

-연기하기 전에 프로 바둑기사를 준비했더라. 특별한 이력이다. 어떻게 배우의 길에 들어섰나.  
“말 그대로 충동적이었다. 평소에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바둑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 스포츠라, 한번 깨보고 싶었던 것 같다. 연기는 무수히 많은 인물을 만날 수 있고, 다채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즐겁다.”


-‘인생영화’는 뭔가.
“‘폭력의 씨앗’!(웃음) 근래에 재밌게 본 건 ‘맨체스터 바이 더 씨’(2월 15일 개봉, 캐네스 로너건 감독) ‘분노’(3월 30일 개봉, 이상일 감독)”  
 
-감정을 발산하기보다, 안에서 들끓는 인물이 나오는 영화들이다.
“정말 그렇다. 내적 고민이 있는 역할. 나도 20대의 고민이 묻어나는 역할을 하고 싶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사진=정경애(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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