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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인생 역전 드라마는 끝나야 하나 … 역사가 된 사시

중앙일보 2017.11.20 01:00 종합 30면 지면보기
고대훈의 Fact&Fiction
올해 사법시험에서 합격한 20세의 최연소 이승우씨(왼쪽)와 45세의 최고령 박종현씨가 15일 중앙일보에서 만나 사시에 얽힌 사연과 경험담을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최정동 기자]

올해 사법시험에서 합격한 20세의 최연소 이승우씨(왼쪽)와 45세의 최고령 박종현씨가 15일 중앙일보에서 만나 사시에 얽힌 사연과 경험담을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최정동 기자]

틀을 깨는 이변은 감동을 준다. 사법시험(사시·司試)은 이변의 역사였다. 실력과 노력만으로도 성공의 꿈을 쟁취할 수 있음을 보여준 ‘공정사회’의 상징이었다. ‘등용문(登龍門)’ ‘신분 상승의 사다리’ ‘개천의 용’이라고 불렸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는 긍정의 에너지에 세상은 박수를 보냈다. 그런 인생 역전의 드라마를 더 이상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사시를 아쉬워하는 이유다. ‘마지막 사시 합격자 55명’이 지난 7일 발표됐다. 1947년 시작된 ‘조선변호사시험’ 이후 70년 만에, 사시로 전환한 63년 이후 54년 만에 시험을 통한 법조인 선발 방식이 마감된다. 그 최후의 순간을 지킨 사람들을 만났다. 

중·고교 홈스쿨링 20세의 최연소
15년 좌절 끝 막차 탄 45세 늦깎이

54년의 ‘신분 상승 사다리’ 마감
법조계 진입장벽 낮출 방안 필요

 
올해도 수석·최연소·최고령 등 합격자들의 사연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들의 성취 뒤에 숨겨진 땀과 열정·애환은 과거와 비슷한 패턴이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대졸·대학 재학이나 중퇴생 등 학력의 섞임과 평균 33세가 넘는 나이·지역·성별의 다름이 극적 관심을 더해준다.
 
최고령 합격자 박종현(45)씨와 최연소 합격자 이승우(20)씨가 15일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둘 다 서울 신림동의 ‘고시촌’ 학원 출신이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기는 처음이다. 이씨는 전형적인 수재형이다. 중·고교 과정을 부모의 지도 아래 홈스쿨링으로 독학한 뒤 대학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암행어사 박문수』의 꿈을 좇아 서울대 법대에 가려 했다. 그러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생기고 법대가 사라지는 바람에 2012년 15세 때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해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졸업 후에도 로스쿨에 갈 만큼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사시가 남아 있을 때 합격해 법조인이 되기로 했다. 17세에 도전해 4년 만에 해냈다. 96년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씨는 30세에 결혼하면서 늦깎이로 사시의 험난한 길에 발을 디뎠다(중앙일보 11월 9일자 2면). 15년의 긴 세월 동안 2차 시험에만 여섯 번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신 끝에 막차에 합류했다. 박씨는 “또 낙방하면 시골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고 법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박씨는 사법연수원을 마치면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활동하는 변호사가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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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을 지탱해준 건 역시 가족이었다. 이씨는 서울 쌍문동에서 작은 보습학원을 하는 부모와 살고 있다. 그는 “매일 쌍문동과 신림동 사이를 아버지가 차로 3~4시간씩 태워주셨다”며 “한 달에 50만~60만원 학원비도 집에는 약간 부담이었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해준 부인(44)과 “펑펑 울었다”는 사연도 전했다. 25세 차이의 두 합격자는 내년 3월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2년간 함께 공부한다. 사시의 마지막 증인이 된 그들에게 사시란 어떤 무엇일까.
 
“개천에서 용 났다”고들 한다.
“예전처럼 사시가 신분 상승의 다리가 되던 시대는 지났다. 오로지 나의 힘으로 뭔가를 이뤄 보겠다는 의지를 실현해주는 꿈의 사다리일 뿐이다. 인생 역전은 아니지만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해줬다.”(박종현씨·이하 박)
 
사시가 로스쿨과 다른 점은.
“로스쿨생은 SM·JYP·YG 같은 대형 기획사 연습생 출신의 아이돌이고 사시생은 ‘슈스케’처럼 공개 오디션 출신의 아이돌에 비유할 수 있겠다. 로스쿨생은 체계적이지만 평균적이라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사시 출신은 야생적으로 길러져 훨씬 뛰어난 사람도 있다.”(이승우씨·이하 이)
 
‘고시 낭인’이라는 비판이 있다.
“타인의 삶을 멋대로 평가하면 안 된다. 고시라는 ‘자영업’을 한다는 긍정적 마음으로 공부했다. 스스로 낭인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박)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재도전하는 것이 사시의 매력 아닌가.”(이)
 
사시가 폐지된다는데.
“‘일반적 행동자유권’, 즉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침해된다는 의견이 있다. 기회의 공정성과 법조인 구성의 다양성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제도다. 사시를 존치시켜 로스쿨과 함께 경쟁하며 발전시켰으면 좋겠다.”(박)

“사시 도전을 포기하는 사람은 주로 공부의 양이 무서워서 포기하는 반면 로스쿨은 돈 때문에 포기한다고 한다. 로스쿨에 못 들어간다고 법조인이 될 기회조차 차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이)
 
영광의 기쁨이 있으면 탈락의 아픔도 있게 마련이다. 13일 신림동 고시촌을 찾았다. 사시 학원가는 변리사·법무사 등 전문직이나 공무원 시험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서점의 책꽂이에는 고시 서적 대신 ‘공시생’ 수험서가 자리를 차지했다. 20년째 서점을 운영해온 조모(67)씨는 “사시 합격생들에게 조그마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한창때보다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는데 얼마를 더 버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시촌에서 만난 이종배(40)씨는 도전 기회가 없어진 것을 아쉬워했다. 영남대 공대를 졸업한 그는 5년간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2011년 34세 때 서울 고시촌으로 상경했다.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돕는 국선 변호사”가 그의 포부다. 독서실 총무 등을 하며 생활비·학원비를 대는 게 버거웠던지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사시는 서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직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이라는 단체의 대표를 맡은 이씨는 “계속 투쟁하겠다”고 했다.
 
사시가 없었다면 상고 출신의 ‘대통령 노무현’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일화도 유명하다. 물론 부작용도 많다. 고시 낭인을 쏟아낸다는 비판은 줄곧 도마에 올랐다. 폐쇄적 ‘기수 문화’와 이에 따른 ‘전관예우’도 사시가 낳은 폐단이다. 최근엔 이른바 ‘SKY’ 중심의 학벌주의가 공고해지면서 ‘그들만의 리그’만 판친다는 부정적 여론이 커졌다.
 
앞으로 법조인이 되려면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로스쿨은 비싼 학비 등으로 부와 계급이 세습되는 ‘현대판 음서(蔭敍)제도’라는 비판을 산다. 실제로 실력자 자제들이 판검사에 임용되고 대형 로펌에 취직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사시를 대신해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할 새 제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백원기 인천대 법대 교수는 “사시 폐지는 국민 대다수의 뜻을 거스른 것”이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에도 로스쿨 외에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우회로를 두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해 사시 폐지의 부당성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준영 국민의당 의원은 16일 ‘방송통신대 로스쿨 설립’ 법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온라인을 통한 접근성과 저렴한 학비 등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법조인을 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천의 용’은 이제 전설이다. 변호사 자격증 시험 하나로 명예와 특권·부를 보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래도 누구나 응시할 수 있고 누구나 판검사와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준 사시의 의미는 영원히 퇴색될 수 없다.
 
고대훈 논설위원  
 
*이 기사의 취재와 제작에는 이유진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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