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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내가 다 안다”는 당신에게

중앙선데이 2017.11.19 02:00 558호 30면 지면보기
마음마저 스산해지는 계절, 여성들을 위한 이런 판타지 영화 한 편 어떨까 싶다. 남편과 헤어지고 두 딸을 키우는 마흔 살의 주인공 앨리스(리즈 위더스푼) 앞에 열살 넘게 어린 훈남 세 명이 갑자기 나타난다. 심지어 그 중 한 명은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며 다가오고, 헤어진 남편마저 “당신과 아이들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었다”며 뒤늦게 사랑을 고백하는 상황. 16일 개봉한 ‘러브, 어게인’은 연말이면 선물처럼 한 편씩 찾아오는 할리우드발 로맨틱 코미디의 중년 여성 버전이라 하겠다.
 

영화 ‘러브, 어게인’
감독: 핼리 메이어스-샤이어
출연: 리즈 위더스푼 피코 알렉산더 냇 울프
등급: 12세 관람가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사랑을 강조한 한국어 제목과는 달리 원제는 ‘홈 어게인(Home again)’이다. 음반 제작자인 남편과 함께 살던 뉴욕을 떠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LA의 옛 집으로 돌아온 앨리스. 이곳에는 유명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짙게 남아 있다. 하지만 맞닥뜨린 현실은 만만치 않다. 한참 손이 가는 나이의 아이 둘을 혼자 돌봐야 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 일을 다시 시작하지만 의뢰인의 ‘갑질’을 참기 힘들다. 마흔 살의 생일, 친구들과 함께 한 생일 파티에서 영화에 꿈을 품고 LA로 온 20대의 감독 지망생 해리(피코 알렉산더), 신인 배우 테디(냇 울프), 시나리오 작가 조지(존 루드니츠키)를 만난다. 그런데 이 대책 없는 남자들, 갈 곳이 없다며 앨리스의 집에 눌러 앉아 버린다.
 
감독의 이름을 알면 영화를 예측하기 쉬워진다. 올해로 서른 살인 헬리 마이어스-샤이어 감독은 ‘나를 책임져, 알피’(2004) 등을 만든 영화감독 찰스 샤이어와 ‘왓 위민 원트(2000)’, ‘인턴(2015)’ 등을 연출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 부부의 딸이다. 밝고 씩씩한 여성 주인공의 유쾌한 성장기라는 점에서 어머니 마이어스 감독의 흔적이 느껴진다. 실제 이번 영화에 제작자로 참여한 마이어스 감독은 “나의 역할은 감독이 조언을 필요로 할 때 살짝 힌트를 주는 것 뿐이었다”며 “촬영 현장에서 딸의 성장을 시켜보는 건 떨리면서도 감격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낯선 젊은이들은 앨리스에게 처음엔 부담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의외의 힘이 되어준다. 일자리를 찾느라 바쁜 그녀를 대신해 요리도 하고, 아이들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열 세 살 연하남과의 ‘썸’은 외롭고 고단한 삶의 활력소가 된다. 낯선 사람들이 만나 만든 새로운 공동체는 삐걱거리면서도 제법 그럴싸하게 굴러간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가족의 새로운 형태를 탐구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생각보다 다양한 형태의 삶이 우리에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매끈하게 흘러가 조금 식상하기도 한 이야기를 꽉 잡아 주는 것은 배우 리더 위더스푼이다. 실제로도 40대에 접어든 세 아이의 엄마인 그는 주름도 늘고 살도 붙었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생동감을 잃지 않는다. 영화는 앨리스의 특별한 선택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몇 살이든, 어떤 삶을 살아왔든 아직 늦지 않았다고.
 
영화 중간, 어린 연인에게 헤어짐을 고하며 앨리스가 하는 말이 있다. “넌 너 자신이 어른인 것 같겠지. 하지만 스물 일곱이 뭘 알겠어?”, “내 말대로 하는 게 좋아. 왜냐면 내가 잘 아니까(Because I Know This).” 하지만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길에서도 예상 못한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는 것, 어쩌면 위험하다고 여겼던 길에 뜻밖의 행운과 기쁨이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니 나만의 공식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영화는 곧 한 살을 더 먹게 될 우리의 등을 슬쩍 떠민다. ●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이수 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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