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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독자를 위한, 독자에 의한?

중앙선데이 2017.11.19 02:00 558호 29면 지면보기
최근 출판계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외국에 새로 생긴 출판사가 있는데, 책을 내는 족족 놀라운 타율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거다. 더구나 이 출판사 대표는 “우리가 출간한 책의 99.99%를 베스트셀러로 만들겠다”는, 일견 터무니없어 보이는 공약을 내놓았다 한다. 아니 과연 어떻게?  
 

인공지능이 만드는 출판의 미래는

출판사의 이름은 인키트(Inkitt). 지난해 6월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설립된 출판 스타트업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10월 1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출판사가 지금까지 발행한 책의 종수는 총 37종, 그 중 24종이 인터넷 서점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 중 20종은 종합 순위 100위 안에 들었다. 성공의 비결은 놀랍게도 인공지능(AI)이다. 책이 팔릴지 안 팔릴지의 여부를 고도로 프로그래밍 된 AI가 판단한다는 것. 책과 AI, 의외의 조합이다.  
 
하지만 출판사는 AI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세계 최초의 독자 주도형 출판사(the world’s first reader-powered book publisher)’가 이 회사의 모토다. 시스템은 이렇다. 출판사 홈페이지의 글쓰기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글을 연재할 수 있다. 독자들은 홈페이지에 구독자로 등록해 자신이 읽고 싶은 글을 찾아 읽는다. AI는 여기서 출동한다. 글을 읽는 독자의 연령대와 성별, 직업 등 신상 정보는 물론이고, 독자가 매긴 별점, 수정 요구 사항 등의 피드백을 축적해 출간 여부를 판단한다. 설립자 알리 알바자즈는 “우리의 알고리즘은 아주 세밀하다. 예를 들어 독자들이 밤새 글을 읽었는지,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읽었는지 등을 모두 수치화해 기록한다”고 했다.  
 
‘독자의 발견’ ‘독자와의 연결’은 이미 한국 출판계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다. 지난 14일 서울 서교동 창비학당에서 열린 서울북인스티튜트(SBI) 주최 콘퍼런스는 이런 변화 속에서 출판의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키워드는 역시 ‘독자’였다. 지난해부터 포털 사이트에 먼저 원고를 연재하고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한 후 이를 책과 강의, 오디오물 등으로 재구성하는 ‘파워라이터 온’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는 “읽고 쓰는 주체의 전환, 관점과 방향의 전환, 패턴과 스타일의 전환 등 한마디로 출판 생태계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진단했다. 발제자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새로운 형태의 출판은 독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룩함으로서 독자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득 의문도 든다. 독자, 그리고 독자들이 생성한 거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은 책의 희망일까. 아니면 더더욱 팔릴 책만 출간 자격을 얻는 ‘승자독식’의 정점일까. 이런 의문 자체가 고루한 것일까. 고민은 이미 시작됐다.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인키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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