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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간장 한 방울로 시작하는 모던 한식

중앙선데이 2017.11.19 02:00 558호 28면 지면보기
▶두레유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 65(가회동 16-12)

강혜란의 그 동네 이 맛집 <11> 가회동 ‘두레유’

전화: 02-743-2468

매일 오전 11시~오후 10시 30분(설·추석 당일 휴무, 오후 3~5시 브레이크 타임) 
 
서울 인사동 낙원상가 근처에 ‘두레’라는 음식점이 있다. 전통 한옥구조 그대로의 한정식집이다. 경남 밀양에서 영업하다 1988년 이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는데, 음식 자체는 지역색을 고집하지 않는 정갈함이 있다.
 
여기서 헌법재판소 쪽 북촌로를 따라가 한옥마을에 이르면 모던한식 레스토랑 ‘두레유’를 만날 수 있다. 두레와 한 글자 차이인 ‘유’는 오너 셰프 유현수(토니 유·39)의 성에서 따왔다. 올 초 문을 열었으니 간판에 적힌 ‘Since 1955’는 두레유가 아니라 두레의 역사다. 얼핏 숫자 속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유 셰프의 배경 설명은 진지했다.
 
“한정식의 최전방인 인사동에서 30년 살아남은 게 존경스럽고, 또 제가 두레 음식을 좋아하는 터라 대표님 허락을 받아 상호를 지었어요. 55년 시작한 두레에다 두레유가 앞으로 30~40년을 보태서 백년 한식을 일구겠다는 마음이지요. 두레와는 장도 같이 담그고 식재료 수급도 서로 도움을 줘요.”
 
그러니까 두레를 이어받되 이를 뛰어넘겠다는 다짐이 담긴 이름이다. 실제로 한옥 구조는 두레를 닮았지만 모던한 인테리어에선 청담동 ‘이십사절기’ 시절 향취가 묻어난다. 유 셰프는 한국 식재료를 파인다이닝으로 풀어낸 이십사절기로 지난해 ‘미쉐린(미슐랭) 2017 서울 편’에서 스타를 받았다. 하지만 “이대로 정체되는 느낌이 싫어서” 외국인이 아니라 평균적인 한국인이 즐길 수 있는 한식 파인다이닝을 고민했다. 말하자면 두레유는 전통의 인사동과 트렌디한 청담동의 가교 격이다.  
 
“한정식이란 게 요즘 사람들 입맛에는 구태의연한 느낌이 없지 않잖아요. 상다리 휘어지게 내놓는 ‘공간식 배열’도 개별·코스화된 요즘 식문화와 안 맞고…. 그럼에도 고급·접대 식문화를 지켜온 중심축인데, 그걸 제대로 재해석하려면 강북, 특히 인사동 인근에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코스의 시작은 간장이다. 프렌치 파인다이닝이라면 ‘아뮤즈 부슈’에 해당하는데, 오목한 자기 잔에 7년 된 씨간장 한 방울이 담겨 있다. 옛날 어른들이 밥상에 간장 종지를 올리고 식전에 숟가락 끝으로 찍어먹으며 침샘을 자극한 전통에서 유래했단다.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음식이자 한식 소스의 기본을 이루는” 간장의 의미를 되새긴다는 의미다.  
 
와송죽과 물김치, 침채(계절 김치 샐러드) 등 채소 요리뿐 아니라 생선 및 고기요리에도 거의 빠짐없이 발효 채소가 곁들여진다. 유 셰프가 1년간 행자 생활을 하며 익힌 사찰음식 영향이다. 제철 재료와 식물성 발효가 만나는 사찰음식은 ‘건강’이라는 키워드와 맞물려 요즘은 서양 퀴진에서 관심이 더 높다. 무엇보다 수백년간 폐쇄되고 제한된 식재료 환경에서 살아남은 전통 레시피다. “고(古) 조리서 재현도 물론 의미 있지만 이렇게 실생활에서 전승돼온 한식 레시피를 근간으로 하고 싶었어요.”  
 
요즘 식문화가 원하는 즐거운 경험도 놓치지 않는다. 예컨대 어장 폼(foam)을 곁들인 해초요리와 문어묵은 소위 ‘분자요리’ 테크닉을 살렸다. 어간장 거품을 주재료 위에 보송한 솜사탕처럼 얹는데, 거품 모양을 굳히는 단백질 성분으론 서양 요리에서 주로 쓰는 우유·계란이 아니라 콩가루를 활용한다. “해초·랍스터·관자·문어묵 등에 풍미를 더하면서 입에 넣었을 때 스르르 사라지는 식감의 재미도 살리는 거죠.”  
 
음식은 거창유기에서 주문·제작한 유기 그릇에 담겨 나온다. 별로 튀지 않는 편안함이 두레유가 추구하는 모던한식의 방향이다.  
 
“우리 음식인데 서양 요리처럼 낯선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그렇다고 늘 먹던 음식 그대로라면 우리 시대의 창의성이 없는 거잖아요. 두레유 코스의 마지막은 파인다이닝에서 보기 힘든 진지상이예요. 한국인의 밥상 문화를 다이닝 테이블 위에 그대로 펼칩니다. 맛의 뿌리를 존중하면서 지금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스타일로 조금씩 바꿔가려고 합니다.”
 
가을볕이 드리운 두레유 옥상엔 인사동 두레의 마당에서 본 듯한 장독들이 옹기종기 놓여있었다. 지난 2월 유 셰프가 두레의 할머니 찬모들과 함께 담근 장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할머니 손에 자란 유 셰프는 할머니가 해주신 감자요리, 할머니와 함께 고춧가루 빻아 말린 기억을 자신의 요리 자산으로 꼽는다. “수년 간 해외 유명 레스토랑 주방에서 시스템과 테크닉을 익혔지만, 결코 배워서 익힐 수 없는 맛의 근원과 같은 기억”이다.  
 
북촌로를 천천히 걸어내려와 인사동 인근 익선동 쪽으로 접어들었다. 골목골목 아담한 한옥이 밀집한 이곳에선 요즘 한옥을 개조한 유럽·동남아 음식점이 성업 중이다. 공간이 섞이고 식재료가 융합한다. 누군가에겐 이 맛이 2017 한국의 맛으로 기억될 것이다. 두레와 두레유가 이어갈 백년 한식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
 
 
글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nag.co.kr,  사진 강혜란·두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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