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짜는 힐링여행] 히말라야 횡단 트레일 <상>
![2014년 3월 26일 칸첸중가 베이스캠프에서 문승영씨(오른쪽)가 포터 딥과 환호하고 있다. [사진 문승영씨]](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711/19/62ebf9b3-98c1-4b6d-92b2-8f979d68931b.jpg)
2014년 3월 26일 칸첸중가 베이스캠프에서 문승영씨(오른쪽)가 포터 딥과 환호하고 있다. [사진 문승영씨]
가이드·포터 등 10명과 함께한
칸첸중가~에베레스트 40일 장정
눈보라 뚫고 급경사 빙벽 넘다
웨스트 콜 아래서 헤매다 비박
얼어죽을 수 있지만 결국 잠들어

8일 걸은 끝에 칸첸중가 주봉 아래 도착
![고산족의 민속주인 똥바. [사진 문승영씨]](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711/19/fdf50eef-8b33-4b9e-ac41-8af21487bbe5.jpg)
고산족의 민속주인 똥바. [사진 문승영씨]
산길을 걸어 도착한 군사(3595m)에서 고소 적응을 한 뒤 다시 칸첸중가 베이스캠프가 있는 팡페마(5143m)로 향했다. 꼬박 8일을 걸어 만난 세계 3위 봉우리 칸첸중가(8586m)는 히말라야의 여왕이라 불리기에 충분할 만큼 아름답고 웅장했다. 강렬한 태양 아래 은빛 자태를 뽐내며 날카롭게 솟아오른 칸첸중가 주봉과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서봉 얄룽 캉(8505m)은 몸서리 칠 만큼 황홀했다.
나는 이틀 만에 총 10명인 스태프들의 이름을 모두 외웠다. 그들은 내가 이름을 불러 줄 때마다 좋아했고, 길을 걷다 잠시 쉬어 갈 때면 자신들의 옆자리를 내게 내줬다. 숙소에 도착하면 포터들의 찢어진 장비와 옷가지들을 거의 뺏다시피 가져와 꿰매 주기도 했다. 눈 쌓인 낭고 라(4695m)를 넘을 때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 줬다. 처음에는 다들 손사래를 치며 쑥스러워하더니 곧 가만히 얼굴을 내밀곤 했다. “네팔 아내는 맨날 잔소리만 하는데 한국 여자들은 이렇게 상냥하니 한국 남자들은 행운아야”라는 가이드 쭈레의 농담에 모두들 박장대소한다.
![40일간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스태프들. [사진 문승영씨]](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711/19/b1fff325-e076-4f97-8790-44f1e86feca7.jpg)
40일간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스태프들. [사진 문승영씨]
마을도 없는 길 닷새 걸어 마칼루로
![캉 라 고개로 오르는 길. [사진 문승영씨]](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711/19/40f3588f-6446-4c87-82eb-c39903357707.jpg)
캉 라 고개로 오르는 길. [사진 문승영씨]
마칼루 베이스캠프에서 거칠고 황량한 모레인(빙퇴석) 지대를 지나 셰르파니 콜 베이스캠프(5688m)에 도착했다. 이제 이스트 콜(6100m)과 웨스트 콜(6135m)을 넘어 에베레스트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셰르파니 콜 베이스캠프를 나섰다. 겹겹이 껴입은 옷 사이로 파고 드는 살을 에는 바람에 잠시만 걸음을 멈춰도 몸서리가 쳐진다. 얼어붙은 눈 평원을 가로질러 얼마나 걸었을까 환하게 밝아 오는 새벽을 깨고 웅대한 모습을 드러낸 마칼루와 저릿한 추위 속에 오색 빛으로 물든 하늘은 순식간에 세상이 완전히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대한 성벽과도 같은 이스트 콜의 정상에는 몸이 휘청거릴 만큼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하지만 우리는 추위도 잊은 채 앞에 보이는 순백의 설원과 그 너머에 넘실거리며 솟아 있는 히말라야의 영봉에 마음을 빼앗겼다.
![웨스트 콜 기슭에서 밤을 새운 좁은 테라스. [사진 문승영씨]](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711/19/ef0658c5-43ae-446e-a534-f194a64b3878.jpg)
웨스트 콜 기슭에서 밤을 새운 좁은 테라스. [사진 문승영씨]
그렇게 웨스트 콜 아래로 되돌아간 것이 오후 11시였다. 밤은 길었다. 열두 명이 겨우 쪼그려 앉을 수 있는 테라스 텐트 하나를 위쪽 바위에 걸쳐 커튼처럼 늘어뜨렸다. 해가 뜰 때까지 배고픔과 추위, 암흑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견뎌 내야 했다. 어느새 눈보라가 그친 하늘에는 밝은 달빛 아래 하나 둘 떠오른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은빛 설산으로 쏟아져 내리는 별빛을 바라보자 끝없는 슬픔이 밀려오며 울음이 터졌다. 무심한 히말라야의 밤하늘은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유성우를 뿌리며 빛의 축제를 연다. 이토록 아름다운 밤하늘을 본 적이 있을까?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졸음이 몰려왔다. 잠든 사이 얼어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도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잠이 들어 버렸다.

아이디 ‘설악아씨’로 잘 알려진 38세의 오지 여행가. 2014년부터 칸첸중가에서 마칼루·로체·에베레스트·마나슬루·안나푸르나 등을 거쳐 힐사에 이르는 1700㎞ 길이의 네팔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GHT) 하이 루트를 횡단하고 있다. 올 연말 마지막 구간에 도전한다. 이번 여행기에는 GHT의 동부 루트인 칸첸중가~에베레스트 구간 도전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