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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입·의인화로 친숙해진 그들, 어느덧 ‘가족’이 되다

중앙선데이 2017.11.19 01:39 558호 26면 지면보기
[CRITICISM] TV 동물 프로그램의 진화
[동물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TV 프로그램들.] ‘삼시세끼’

[동물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TV 프로그램들.] ‘삼시세끼’

최근 최시원씨와 그 가족이 키우던 반려견이 이웃을 물어 사망케 한 사건으로 새삼 펫티켓 문제가 사회 이슈화되었다. 어느새 가족의 일원이 된 반려동물들.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떤 변화를 겪었고 또 앞으로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동물 소재 방송 프로그램의 진화를 통해 그 변화과정과 앞으로의 과제를 들여다봤다.

20년 장수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동물 입장서 말하기 새로운 시도

‘TV 동물농장’ 의인화 스토리텔링
깊은 감동 주며 공감 불러일으켜

‘삼시세끼’ 반려견 밍키·산체는
아예 함께하는 가족의 일원 느낌

동물 키우는 ‘펫팸족’과 아닌 사람
공존 위해 에티켓 필요해진 시점

 
 
동물만큼 오래된 방송의 소재는 없을 것이다. ‘동물의 왕국’이나 ‘동물의 세계’는 지금까지도 계속 방영되는 스테디셀러 프로그램이다. 동물 소재 프로그램이 이렇게 시대 불문 대중들의 관심을 이어오는 건 나와 다른 존재로서의 동물에 대한 호기심이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을 닮은 유인원 같은 동물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또 정반대로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을 가진 코끼리나 기린 같은 동물들 또한 신기하게 바라본다. 즉 인간은 동물이면서 우리가 동물이라고 표현하는 그 무리들과는 다른 진화를 해온 존재라는 점에서 유사점과 차이점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 점이 동물에 대한 본원적인 호기심을 만들어낸다.
 
 
초창기엔 동물의 신비함 주로 다뤄
‘TV 동물농장’ [방송 화면 캡처]

‘TV 동물농장’ [방송 화면 캡처]

물론 지금은 ‘동물의 왕국’도 동물과 인간 사이의 유사성에 기초한 스토리텔링을 하지만, 초창기에는 인간과는 다른 동물이 가진 신기함을 주로 다룬 면이 많았다. 그때 우리가 바라보던 동물은 인간과는 분리된 존재였다. 하지만 이렇게 동물의 신기함을 다루던 시선에서 일대 전환을 가져왔던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1984년 시작해 2004년까지 꽤 오래도록 장수했던 KBS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다. 우리에게는 “우- 아-”하고 시작하던 시그널 음악이나 “짝짓기를 합니다” 같은 내레이션으로 기억되는 이 프로그램은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냥 동물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동물의 입장으로 감정이입해서 성우가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간 다른 존재로 바라보던 동물에 감정이입이라는 장치를 집어넣자 동물은 점점 의인화되며 인간 같은 감정을 가진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2001년 시작해 현재까지 무려 15년 넘게 장수해온 ‘TV 동물농장’ 역시 초창기에는 동물 관찰에 집중했던 면이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역시 차츰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의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졌다. 2009년은 ‘동물심리분석가 하이디의 위대한 교감’이라는 코너를 방영하며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코너에서 하이디는 상처받은 동물들을 어루만지며 그 아픔에 진정으로 눈물을 흘려주는 감동적인 교감을 선사했다. 하이디는 동물이 우리와 다른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정서와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걸 드러내주었고, 또 그것이 서로 소통 가능하다는 걸 실제 동물들의 변화를 통해 보여줬다. 이후 이런 감정이입을 통해 동물의 입장에 공감하는 방식이 주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TV 동물농장’은 지난 10여 년간 우리의 동물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이 프로그램의 의인화 스토리텔링 방식은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떠나버린 주인을 그 자리에서 계속 지키며 기다리는 개의 이야기나, 죽은 어미를 대신해서 어미 역할을 해준 어느 고양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 좁은 하수구 속에 갇혀 있는 새끼 고양이를 구해내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구출해내는 그런 이야기들은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현실 문제를 에둘러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의인화 방식을 통해 동물은 마치 우리를 비추는 거울처럼 기능하게 되었다. 즉 동물에게 무언가 애착을 주고, 소통하려 애쓰는 모습은 그대로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살 만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동물에 대한 학대 같은 문제들이 불거졌을 때 대중들은 그것을 우리 사회가 가진 비인간성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이른바 ‘강아지 공장’ 이야기는 르포 형식으로 소개되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 방송으로 인해 자가 진료 제한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 각종 동물보호법 개정, 정부 반려동물생산업 전수조사 등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동물 학대의 문제를 마치 인권의 한 차원처럼 받아들이게 됐던 것이다.
 
'삼시세끼' [방송 화면 캡처]

'삼시세끼' [방송 화면 캡처]

이제 우리네 일상을 담는 관찰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 속에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반려동물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나영석 사단이 만든 ‘삼시세끼’ 시리즈는 대표적이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거기 출연한 연예인만큼 밍키·산체 같은 반려견이나 잭슨 같은 산양, 쿵이·몽이 같은 반려묘의 이름이 친숙하다. 물론 더 이전으로 가면 나영석 PD가 초창기에 만들었던 ‘1박2일’의 상근이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관찰카메라 속으로 들어온 반려동물들은 상근이처럼 이벤트적인 존재가 아니라 아예 우리와 함께하는 가족의 일원이 된 느낌이다.
 
 
1~2인 가구 늘며 반려동물 가족 급증
‘1박2일’ [방송 화면 캡처]

‘1박2일’ [방송 화면 캡처]

동물 소재 방송 프로그램의 진화과정이 보여주는 것처럼 반려동물이 우리네 가족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게 된 건 이미 수치적으로도 확인된 바다. 2016년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가구 수의 21.8%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한 가구에 여럿이 산다고 봤을 때 약 1000만 명의 인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개를 키우는 가구가 16.6%로 가장 많았고 고양이는 2.7%의 가구가 키우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고양이를 키우는 가구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부르는 새로운 신조어도 등장했다. 반려동물을 뜻하는 펫(pet)과 가족을 의미하는 패밀리(family)가 합쳐져 만들어진 ‘펫팸족’이라는 지칭이 그것이다.
 
이처럼 펫팸족이 늘고 있는 건 우리 사회의 혼자 사는 가구가 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1~2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고, 고령화 시대가 도래해 펫팸족은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반려동물 가족이 늘면서 관련 사업들도 그 규모가 급성장하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는 2012년 9000억 원에 달했던 우리나라 반려동물 산업 규모가 2020년에는 6조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아파트 상가에 당연하게 동물병원이 들어서고 대형 쇼핑몰에서는 급증한 펫팸족들을 염두에 두고 반려동물의 동반 출입을 허가하고 있다.
 
이렇게 반려동물 가족 인구가 급증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적지 않다. 특히 반려동물 문제로 이웃과 생겨나는 갈등이 많고, 한때 길고양이 숫자가 급증하면서 사회문제화되기도 했으며,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는 이들도 많아지면서 공공장소에서의 펫티켓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이러한 반려동물 혹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생겨나는 갈등들은 안타까운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2015년 발생한 ‘캣맘 사건’이 그렇고 최근 벌어진 최시원씨와 그 가족이 키우던 반려견이 이웃을 물어 사망하게 된 사건이 그렇다.
 
이런 사건들이 촉발하는 갈등 상황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과 그렇지 않은 가족 사이의 입장차에서 발생한다. 실제로 최시원씨네 반려견 사건이 터진 후 이를 일반화해 반려견과 동반산책을 하는 이들이 길거리에서 때아닌 봉변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문제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한쪽은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동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가족이었던 존재가 순간 동물의 측면을 드러냈을 때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반려동물 가족도 또 그렇지 않은 가족도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 지킬 것은 지키는 에티켓이 필요해진 시점이다.
 
‘동물의 세계’ [방송 화면 캡처]

‘동물의 세계’ [방송 화면 캡처]

반려동물 인구가 급증하면서 이와 관련된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기존의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진화를 역행시키는 건 잘못된 일이다. 동물 소재 프로그램들이 동물을 일종의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처럼 바라보듯이, 반려동물 문화란 어찌 보면 반려동물에 투영된 우리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가의 문제는 지금껏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간이 타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와 다르지 않은 일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탄생한 동물원의 개념 속에는 원숭이나 코끼리 같은 동물만이 아니라 원주민들 같은 인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다 점점 동물도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라는 인식이 만들어졌다. 동물원에 가두고 침팬지를 바라보던 시각에서 이제 침팬지가 사는 곳으로 들어가 10여 년간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공존의 길을 찾아낸 제인 구달 같은 동물학자가 시사하는 바는 그래서 클 수밖에 없다. 반려동물 문화는 이러한 동물만이 아닌 타자와의 공존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문화로 바라봐야 제대로 만들어내고 정착될 수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각종 방송 활동, 강연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남자들의 숨은 마흔 찾기』『웃기는 레볼루션』(공저)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가 있다. 더키앙(thekian.net)이라는 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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