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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끊긴 용수석 지승은 지켜야

중앙선데이 2017.11.19 01:08 558호 28면 지면보기
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세월 따라 없어지는 것 중에 ‘솜씨’가 있다. 특정 손재주가 사라지는 까닭은 찾는 사람이 없어서다. 수요가 없으면 솜씨는 퇴화하다 소멸한다. 이를 막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국가무형문화재다. 보존가치가 큰 순서대로 나라가 나서서 지원하며 독려하지만 소리 없이 자진(自盡)하는 솜씨를 다 지킬 수는 없다.
 
그 한 예가 용수석이다. 화문석, 왕골, 죽석 등 여러 종류 돗자리가 있지만 용수석(龍鬚席) 또는 등메라 부르는 자리를 으뜸으로 쳤다. 조선 왕가에서 외국 군주들에게 선린외교를 할 때 선물 품목에 꼭 들어있는 게 이 용수석이었을 만큼 국제적으로 이름난 공예품이었다. 진상품의 대명사였던 용수석의 맥은 알아주는 이가 없자 50여 년 전 끊어졌다. 용수석 짜는 솜씨가 사라지자 그 재료였던 용수초(龍鬚草)도 야생화 되어 이제는 재료조차 구할 수 없다.
 
‘로에베 공예상’ 예선을 통과한 지승공예품 ‘쉼’과 성남시 공예 명장 제1호 홍연화씨. 정재숙 기자

‘로에베 공예상’ 예선을 통과한 지승공예품 ‘쉼’과 성남시 공예 명장 제1호 홍연화씨. 정재숙 기자

지승(紙繩) 공예가 홍연화(56)씨가 30여 년 전 전통 지승제조(紙繩製造)에 뛰어든 계기도 단절이 염려스런 지승의 명맥을 이어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전통 한지나 고서(古書)를 좁게 잘라 날줄을 엮고 씨줄로 꼬아 엮어가며 각종 기물을 만드는 지승은 방석, 반짇고리 같은 소품부터 화살통과 종이갑옷 같은 군용품까지 종류와 쓰임새가 컸던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지난 11월 초 성남시청 공감갤러리에서 열린 ‘지승공예, 그 전통의 맥을 잇는 사람들’은 홍연화씨와 그의 제자들이 벌인 지승 잔치였다. 성남시 공예 명장 제1호로 지명된 홍씨는 손가락이 휘고 어깨가 돌처럼 굳을 정도로 인내를 요구하는 지승의 어려움을 딛고 창조한 현대적인 감각의 기물을 선보였다. 목공과 지승을 연결한 찻상, 쪽을 활용한 염색 지승 가방과 드레스 등 실용적이면서 미감이 독특한 지승 제품이 관람객의 찬탄을 자아냈다.
 
그중에서 특히 눈길을 끈 ‘쉼’은 나무 등걸을 연상시키는 둥근 테이블과 원형 의자 일습으로 스페인 ‘로에베(Loewe) 재단’이 주최하는 ‘로에베 공예상’에 출품돼 1차 예선을 통과하는 쾌거를 올렸다.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 산하의 패션 브랜드 로에베가 지난해 제정한 이 국제 공예전은 사람의 손과 그 솜씨의 복권을 선도하는 최근 미술계와 시장 흐름을 보여준다.  내년 봄 예정인 최종 발표에서 홍연화씨가 로에베 공예상을 수상한다면 한국 전통 공예 하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현재 한지 종목은 국가무형문화재이지만 지승제조는 종목만 지정돼 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솜씨가 또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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