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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장비보다 노력 먼저

중앙선데이 2017.11.19 01:00 558호 31면 지면보기
외국인의 눈
요새 한국에서도 팟캐스트와 유튜브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2010년부터 이 분야에서 활동해 온 ‘선배 격’인 나에게 많은 분이 도움을 청한다. 그런데 질문의 대부분이 방송의 성격이나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냥 장비를 추천해 달라는 것이어서 놀라웠다.
 
그때마다 내가 “무엇에 대해 방송을 할 거냐”고 되물어 보는데 돌아오는 답은 대체로 매우 막연하다. ‘뭐 이것저것’ 아니면 ‘아직 잘 모르겠네요’ 정도다.
 
사실 남들이 자기 돈을 어떻게 쓰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뭔가 순서가 뒤바뀐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유튜브나 팟캐스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등산이나 테니스 같은 운동을 시작하자마자 번지르르한 최신 장비를 구매하는 것을 종종 본다.
 
‘노력해서 인정받고 난 다음에 장비를 산다’는 게 내가 보기로는 맞는 순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장비-인정-노력의 순서로 거꾸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서 왜 내가 이렇게까지 거부감이 드는 걸까 하고 반성해 봤는데 어릴 때 우리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클라리넷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웠고 예중, 예고, 예술대학까지 진학했는데도 배운 지 한 10년이 되었을 때야 아버지는 나한테 좋은 악기를 사주셨다. 예고에 다닐 때는 수석 클라리넷 연주자였는데도 내가 연주했던 클라리넷은 중고 악기였다. 그때는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뜻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미국 로키산맥 도시인 덴버에서 자란 나는 산소가 희박할 정도로 높은 산에 올라간 적이 많았는데 한 번도 특별한 옷이나 장비를 갖추고 등산하지 않았다. 그냥 평소 학교에 갈 때 쓰던 배낭과 신발로만 산에 올랐다.
 
어쩌면 내 거부감에는 내가 갖지 못했던 것에 대한 일말의 부러움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인기 팟캐스트 중에서 좋은 장비 때문에 성공한 경우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무슨 도전이든 일단 몇 년 동안 열심히 해 보고 나서도 처음처럼 관심과 열정이 여전하다면 그때 가서 장비를 사도 늦지 않을 것이다.
 
 
마이클 엘리엇
무료 유튜브 영어 학습 채널·팟캐스트 ‘English in Korean’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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