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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앙선데이 2017.11.19 01:00 558호 31면 지면보기
성석제 소설
C가 자신의 집 앞에서 ‘환경보호 시민수사대’의 요원임을 자처하는 노인을 본 것은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노인은 초록빛 잎사귀가 새겨진 흰 모자를 쓰고 몸에 베이지색 점퍼를 걸쳤는데 그 점퍼를 두르고 있는 흰색 종이 띠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 집 쓰레기는 내 집 앞에 배출하자. 시민수사대 쓰레기 불법 무단투기 감시 중.’ C의 집은 막 신축공사가 끝난 참이었다. 노인은 낡은 휴대폰으로 채 그의 집 마당 한켠에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를 찍으려 하고 있었다. C는 노인의 앞을 튀어나온 배로 막으며 소리쳤다. “어르신! 여기는 쓰레기 버리는 사람 없어요. 그러니 얼른 저쪽으로 가서 감시를 하든지 수사를 하든지 하세요, 예?” 노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의 몸을 피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려 들었다. “아니 이 양반이 귀가 꽉 막혔나? 여기는 쓰레기가 해당 없다는데 지금 뭐하는 겁니까?”
 

마당에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
감시 사진 찍던 노인과 말다툼
누군가 버리고 간 쓰레기 봉지
술 취해 차다 발가락 골절 뒤
집 앞 투기 감시 노인 보고도…

C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한 동네 사는 후배 J와 J의 친구 서넛이 다가왔다. “형님, 뭐하십니까? 이 아재는 누군데요?” C는 후배들 앞에서 몸을 바로 세우고 목소리를 깔았다. “이 분이 영 세월 보내기가 심심하신가 보다. 쓰레기 불법투기 감시를 한다면서 여기서 공사하고 남은 자재 사진을 찍고 있길래, 이건 밖에 버린 쓰레기가 아니고 곧 수거해서 건축폐기물 처리장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정중하게 설명을 해드리고 있었다.” 후배들이 노인을 둘러쌌다. “아저씨, 지금 어디서 나왔어요?” 노인은 덩치 큰 사내들에게 둘러싸이자 바다 한가운데의 작은 바위섬처럼 위축되었다. “거시기 뭐냐, 우리 시민들이 동네가 살기 좋도록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해가지고 우리가 동사무소 어르신 쉼터에 모여서는 쓰레기 투기를 감시하자는 방안을 내설랑은 자발적으로다가…”
 
J가 담배연기를 뿜으며 턱을 추어올렸다. “그러니까 노인네들이 모여서 동사무소에서 용돈벌이나 하실라고 한 모양인데, 여기 이 집이나 우리 형님한테는 전혀 해당이 안 되는 거니까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예? 알아들으셨어요?” 노인은 건장한 사내들의 기세에 눌려 알겠노라고 하고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누런 자루와 집게를 집어 든 노인은 J가 꽁초를 버리려 하자 다시 휴대폰을 꺼냈다. “아니, 시방 뭐하시냐고! 짜증 나네 정말.” J가 으르릉거렸음에도 노인은 할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담배꽁초를 길에 그냥 버리면 벌금이 5만원인데…” C가 J를 막아섰다. “이 친구가 지금 꽁초를 버릴 것처럼 보입니까? 어르신, 저하고 내기할까요? 이 친구가 꽁초를 안 버리면 어른이 저한테 5만원 주시고 버리면 제가 어른 통장에 당장 5만원 쏴드리지.”
 
그러자 노인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어쩌든지 내가 지겠구만은.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 놀리네” 했다. C는 노인에게 눈을 부라리며 으르댔다. “어르신, 우리도 안 젊어요. 내일모레면 오십을 바라보는데 우리가 쓰레기를 투기해서 어르신 좋은 일 하겠습니까? 그만 가보시라고요!” 노인이 느린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가고 난 뒤에 후배 중 하나가 인터넷으로 구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가 결과를 알려주었다. “담배꽁초 1회 투기에 5만원 맞습니다. 비닐봉지나 천으로 쓰레기를 싸서 버렸다가 적발되면 20만원입니다. 폐기물을 버리다 걸리면 첫 회 10, 둘째 20, 셋째는 30입니다.”
 
“아니, 업자가 공사 마무리를 대충한 게 영 맘에 안 들어서 대금을 살짝 깎았더니 이 인간이 쓰레기를 그냥 놔두고 가버렸네. 이걸 내가 생돈 처들여서 버려야겠냐고? 불을 확 싸지르든지 밤중에 차에 실어다 파묻어야겠구먼.”
 
J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형님, 쓰레기를 파묻으면 50만원이고 소각하면 70만원입니다.” “야, 그럼 여기 있는 쓰레기하고 폐기물이 얼마치나 되겠냐?” “대충 봐도 불법투기하다 걸리면 한 천만원은 내야겠네요.” C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희 신경 쓸 거 없다! 업자를 족치든지 목을 조르든지 내가 어찌해 볼 테니.”
 
사흘 뒤 C의 집 안팎의 쓰레기가 깨끗이 사라지던 날, C는 후배들과 초저녁부터 술을 퍼마시고 밤 열두 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가고 있었다. 대문 옆 가로등 아래에 시멘트 벽돌만 한 크기의 검은 비닐봉지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비닐봉지는 그에게 스스로 존재를 알리듯 바람에 팔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떤 쌍영총 같은 샛기가 남의 집 앞에다 이 따우 쓰레기를 버린기가!” 그는 삼십년 전에 떠난 고향 사투리가 튀어나올 정도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막 출발하려던 후배의 차가 멈추었다. 그는 보란 듯이 쓰레기가 든 비닐봉지를 힘껏 걷어찼다. 쓰레기가 후배의 차 앞을 통과해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 버리리라 상상하면서. 하지만 비닐봉지는 몇 걸음 정도 굴러가서 멈추었고 그의 입에서 평생 내본 적이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아가, 가, 갸, 끄끄, 으으흑....”
 
후배들이 달려왔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형님!” 그는 비닐봉지를 걷어찬 발을 감싸 쥐고 한 발로 폴짝폴짝 뛰며 “아이고 아파라, 나 죽겠네, 나 죽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오른발 발가락뼈가 부러져 버렸던 것이었다.
 
J가 비닐봉지를 들춰 보고 나서 여전히 한 발로 뛰고 있는 C에게 말했다. “어떤 놈이 여기다 도란쓰를 넣어놨습니다, 형님. 고장 난 겁니다, 형님. 연식이 50년은 됐습니다, 형님.” C는 복수를 다짐했지만 누가 거기다 쇳덩어리처럼 단단한 변압기를 가져다 놨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다음날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채 대문 밖으로 나오던 C는 노인이 자신의 집 앞에 의자까지 가져다 놓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석제 소설’은 성석제씨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험적 칼럼으로 4주마다 연재됩니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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