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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대신 의원 배지 달 궁리만 … ‘4년제 비정규직’ 득시글

중앙선데이 2017.11.19 00:58 558호 15면 지면보기
미로에 빠져 헤매는 보수 진영
“보수 진영 전체가 위기에 빠졌는데 의원들은 ‘어떻게 하면 다음 총선 때 또 배지를 달까’만 궁리하는 것 같다.” 요즘 여의도 정가에서 보수 정당을 두고 회자되는 얘기 중 하나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라는 참사를 겪고서도 책임의식을 공유하기보다 각자도생하려는 기류만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다. “4년제 비정규직인 직업 정치인만 넘쳐난다”는 말도 쉽게 들린다.

천막당사, 총선 불출마 선언 등
위기 때마다 자기 헌신 사라지고
지금은 각자도생 분위기만 팽배
“선거 질 각오로 혁신에 매진해야”

 
자유한국당의 친박 청산 작업도 혁신이란 이름을 내걸고는 있지만 결국 힘겨루기로 비치는 양상이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지난 17일 “친박은 지금 자동 사망 절차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 윤리위가 친박 핵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내렸지만 당사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원총회를 열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이들을 출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섣불리 의총을 열었다가 제명안이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홍 대표로선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친박계에선 “어차피 홍 대표 임기는 길어야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아니겠느냐”며 재기할 타이밍을 벼르고 있다. 하지만 친박이 반격을 시도할 때마다 홍 대표는 가만있지 않았다. 각종 언론 인터뷰나 페이스북을 통해 친박계를 바퀴벌레에 비유하거나 “깜냥도 안 되면서 덤비고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깔아뭉갰다.
 
홍 대표는 왜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까. 친박 핵심 두 명을 불명예스럽게 쫓아낸다고 해서 한국당 지지율이 올라갈 거라는 근거는 희박하다. 하지만 친박의 입지를 좁히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친박 핵심 관계자는 “홍 대표의 리더십 문제를 제기하면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로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놨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홍 대표로선 현역 국회의원이 아닌 당 대표라는 한계를 극복하면서 당을 장악해 나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집안 싸움 속 인재도 리더십도 부족
문제는 이들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당 혁신 작업 또한 표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친박계가 선제적으로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 등 자기 희생의 노력을 보였다면 이런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되지도 않았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반면 서·최 의원이 당원권 정지 3년이란 징계를 받은 상태였지만 대선 과정에서 대구·경북(TK) 표를 얻기 위해 사면까지 해주면서 분란의 불씨를 만든 책임은 홍 대표에게 있다.
 
정한울 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는 “가장 이상적인 건 촛불정국 때 당을 깨는 게 아니라 친박이 스스로 권력을 내놓고 개혁파 중심으로 당 지도부를 꾸리는 것이었다”며 “현실은 친박은 버티고 비박은 그들을 공격하기 바빴고, 그러다 보니 보수 진영이 대통령 탄핵 이후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게 아무것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역사 속에서 보수는 위기 때마다 자기 헌신과 뼈저린 반성을 통해 반등의 계기를 찾았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었을 땐 박근혜 대표를 내세우며 천막당사를 차렸다. 한동안 대여 공세도 취하지 않고 “우리가 반성하고 있다”는 메시지만 일관적으로 내놨다. 당 연수원을 매각하고 그 대금을 국고로 환수 조치하는 등 철저한 자기반성과 혁신 노력으로 신뢰를 회복하려 했다. 그 결과 3개월 만에 지지율은 회복됐고 2006년 지방선거 승리에 이어 2007년 대선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형님 예산’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남경필·정병국·김세연·황영철 의원 등 한나라당 소장파 22명이 의원직을 걸고 제동을 걸었다. 국회 예산안 표결 때 거수기를 하지 않겠다며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쳤다. 2011년 정권 재창출 위기 때는 3선의 원희룡 의원을 시작으로 불출마 선언이 이어졌다. 김형오·홍정욱·장제원·현기환·박진 의원도 불출마 대열에 합류했다. 자발적으로 인적 쇄신이 이뤄진 뒤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하에 똘똘 뭉치면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현재 보수 진영에선 ‘우리가 바뀌어야만 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은 전혀 없고 여전히 나만 살겠다고 몸부림치고 있다”며 “공천 과정에서 보수의 미래를 맡길 만한 인재를 발굴하지도 못했고, 그러다 보니 천막당사 때처럼 위기를 기회로 만들 만한 리더십도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감동 없는 보수 통합, 지지율은 제자리걸음
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 과정에서도 보수의 한계는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대선 직전과 지방선거 7개월 전 발생한 두 차례 지각변동은 외연 확대가 아닌 ‘제로섬 게임’에 불과했다. 보수층 열성 지지자들이 결집하거나 혹은 우왕좌왕하게 하는 결과만 초래했을 뿐 일반 유권자들에겐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홍 대표는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한국당) 집 주인은 나”라고 말했다. 바른정당 일부 의원의 추가 탈당 가능성에 대해 “(이미) 문을 닫았다. 문을 닫고 안 닫고는 집주인이 결정하는 것”이라면서다. 보수 통합에 대한 홍 대표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른정당도 한국당의 구심력을 벗어나기 위해 대립각을 세우는 데 몰두하다 보니 보수층 전반의 위기를 해소할 만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대선 이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한국당은 10%대 초중반, 바른정당은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러 있다. 오랫동안 보수 정당 지지자였던 TK와 60대 이상에서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20%가 넘는다.
 
정한울 디자이너는 “지지율 하락은 국민이 보수를 대안 세력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며 “지난 10년간 집권여당으로서 이런 사태를 촉발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개혁에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하면서 선거를 치러도 부족할 판에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보수 통합만 추진해 놓고 표를 달라고 하면 누가 그걸 혁신이라고 생각하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이대로 가면 보수 진영은 앞으로 10년 이상 집권하긴 힘들 것”이라며 “선거에서 이겨 보려고 아등바등만 할 게 아니라 져도 좋다는 각오로 내부 혁신에 매진하는 게 선결 과제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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