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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지성 중시한 전통이 유대인 창의성의 비결”

중앙선데이 2017.11.19 00:53 558호 8면 지면보기
[김환영의 지식 톡톡톡] 『유대인을 만든 책들』 저자 애덤 커시 교수
영국 화가 에드윈 롱이 그린 ‘에스더 왕비’(1879).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인 페르시아 왕비 에스더는 『유대인을 만든 책들』에 소개된 『에스더』의 주인공이다.

영국 화가 에드윈 롱이 그린 ‘에스더 왕비’(1879).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인 페르시아 왕비 에스더는 『유대인을 만든 책들』에 소개된 『에스더』의 주인공이다.

애덤 커시 교수 [사진 컬럼비아대]

애덤 커시 교수 [사진 컬럼비아대]

세계화와 현대화한 생활양식이 세계 도처에서 국가·민족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유대인은 수천 년에 걸친 나라 잃은 설움을 뒤로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이스라엘은 사어가 된 히브리어를 복원해 국어로 삼은 경탄할 만한 나라다. 하지만 세계화 앞에 장사 없다. 미국에는 『탈무드』가 뭔지 모르는 유대인도 있다. 『유대인을 만든 책들』은 유대인도 책 제목과 저자 이름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명저들을 한데 모아 소개했다. 『신명기』 『에스더』,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등이 포함됐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한국인을 만든 책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쓴다면 어떤 책들이 들어가야 할까.
 

神에 대한 유대교의 관점 다양
타인 배제 않는 ‘신의 선택’ 고민

전도 안 하는 게 전통이지만
한국인도 개종할 수 있어

은유·상징으로 성경 해석해
진화론과 충돌하지 않아

『유대인을 만든 책들: 유대인 고전 18선』을 쓴 애덤 커시(41·유대 역사학)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국에서 정평 있는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다. 하버드대 영문학과 졸업 이후 편집자·작가로 활동해왔다. 커시 교수의 『유대인을 만든 책들』은 유대인의 영혼을 형성한 유대교와 신(神)을 18권의 책을 통해 풀어낸다. 2500여 년에 걸쳐 유대교뿐만 아니라 신(神)에 대한 기독교·이슬람의 관점에 영향을 준 책들이다. 그는 고대 유대인도 현대 유대인과 동일한 고민과 씨름했다고 주장한다. 유대인의 정체성과 유대교의 관계가 궁금해 지난 13일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상당수 한국 독자는 유대인의 창의성이 궁금해 『유대인을 만든 책들』을 집어들 것 같다. 비결이 무엇일까.
“유대인에게는 문해력(literacy)·연구·지성을 중시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내 책의 테마 중 하나다. 유대인은 읽고 쓰기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글을 통해 유대 문화를 표현해왔다.”
 
유사한 전통이 이슬람권·기독교권에도 있다. 무슬림은 『쿠란』, 기독교인은 『성경』을 읽었다. 유대인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정치나 예술 등 관심이 다양한 영역으로 분산된 다른 민족과 달리 유대인은 읽기와 쓰기에 집중했다. 유대인은 그들의 나라가 없었고 지어야 할 건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에게는 책이 그들을 표현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유대인을 만든 책들』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뭔가.
“내게 주요 관심사는 유대 문학이다. 많은 사람이 유대인의 명저와 작가 이름만 알고 실제로 읽지는 않는다. 그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유대교의 미래에 대한 많은 사람의 관심을 충족시켜주었기 때문이다. 한 이스라엘 신문의 기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이 신의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흥미롭다고 했다. 사실 오늘의 유대인은 신이나 신학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 책이 소개하는 18권 중에서 가장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은.
“모세 마이모니데스(1135~1204)의 『당혹자에 대한 지침』이다. 마이모니데스는 철학·이성과 종교가 충돌하지 않고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성경을 올바로 읽으면 전혀 과학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바로 읽는다는 것은, 성경이 어떤 때에 은유법과 이미지를 사용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유대교는 성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다. 성경보다는 탈무드 연구를 더 많이 한다. 역사적으로 가끔 탈무드를 버리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도 있었지만 결국엔 사라졌다.”  
 
흥미롭게도 ‘『신약성경』의 예수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유대교 전통에서는 어떤가.
“유대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의 존재는 당연시됐다. 다만 17세기에 범신론을 내세운 스피노자(1632~77) 같은 유대인이 기존과는 다른 신에 대한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의 신은 인격신(人格神)이다. 유교의 천(天)은 비인격적이다. 유대교에서도 신을 비인격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데.
“유대인은 신에 대해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마이모니데스의 경우는 신이 비인격적이라고 생각했다. 신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인격신이건 비인격신이건 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유대교가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유대교나 신은 유대인의 정체성에서 핵심적인 부분인가.
“과거에는 그렇지 않지만 오늘날에는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인 측면에서 종교적이지 않거나 신을 믿지 않고도 유대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 생겨났다.”  
 
점점 더 많은 유대인이 유대교를 믿지 않고 세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유대인 정체성에 위협이 되고 있는가.
“이 문제를 연구한 대부분의 학자들에 따르면 신앙심이 깊고 전통을 수호하는 정통파 유대교(Orthodox Judaism)의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출산율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종파의 유대교 신자 수는 축소되고 있다. 현대의 삶이 어떤 면에서는 유대인의 정체성에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율법을 따르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됐다.”
 
유대인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살았는데 지역에 따라 갈등은 없는가.
“그들이 유대교를 실천하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미국 유대인은 주로 동부 유럽에서 왔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출신지가 복합적이다. 동부 유럽, 이슬람권,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왔다. 그들의 유대교 전통은 크게 다르지만 그들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모르겠다.”  
 
당신의 경우에는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유대교 축일들을 기념하고 가끔씩 시나고그(유대교 회당)에 간다. 대부분의 미국 유대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유대교의 핵심적인 생각은 무엇인가.
“신이 유대인에게 토라(율법)를 주었으며 유대인은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신이 이스라엘을 유대인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신이 이스라엘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유대인이 신이 선택한 선민(選民)이라는 관념은 주위 민족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비극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현대 세계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신에 대해 더 잘 안다는 생각을 유지하기 힘들다. 많은 현대 유대교 사상가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지 않는 ‘신의 선택’ 개념을 고안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사회의 밑바닥에 위치한 유대인에게 신과 특별한 관계라는 관념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비록 우리가 기독교인·무슬림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는 신과 가깝다’는 생각이 힘이 됐다.”  
 
한국인도 유대교 신자가 될 수 있는가.
“모든 유대교 그룹이 개종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포교는 하지 않는다. 로마시대에는 약간의 포교 활동이 있었지만 유대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유대교 신자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어떤 사람이 유대교 신자가 되겠다고 하면 랍비는 그의 진정성에 대해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다.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일부 기독교 그룹은 세상의 종말 전에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럴 가능성이 있는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세 스페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강제로 개종당한 많은 유대인이 몰래 유대교를 믿었고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자 결국 유대교로 돌아왔다.”
 
유대인도 메시아를 기다린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어떤 존재인가.
“두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우선 메시아를 ‘정치적’인 메시아로 보는 견해가 있다. 유대인을 해방하고 그들을 위해 새로운 왕국을 건설할 메시아다. 다른 견해에 따르면 메시아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들의 참을성(patience)이다. 메시아가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르며, 그가 더 빨리 오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게 유대교 주류의 관점이다. ‘아무개가 메시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단으로 간주됐다.”
 
예수에 대한 유대교의 관점은 무엇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유대인은 예수가 율법을 가르친 랍비라고 본다. 그는 지혜를 가르친 스승이며 위대한 인간이지만 메시아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유대교 입장에서 예수가 신의 아들이 될 수 없다. 중세시대 유대인은 삼위일체 신을 믿는 기독교인은 유일신을 믿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학만 따지면 유대인은 기독교보다는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이 더 가깝게 느껴져야 하지 않는가.
“미국 유대인은 『신약성경』과 더 친숙하다. 우리는 미국에 살고 있고 『신약성경』은 미국 문화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유대인 대부분이 이슬람권에 거주했다. 그들은 아마 기독교보다는 이슬람에 대해 더 많이 알았을 것이다.”  
 
유대교와 진화론은 충돌하지 않는가.
“가톨릭 교회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유대교 교단은 진화론과 충돌하지 않는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읽지 않기 때문이다. 신이 모든 동물을 같은 날에 창조했다는 대목은 은유로 받아들인다. 극소수 유대인은 진화론을 거부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은 진화론이 성경과 부합한다고 말한다.”  
 
 
김환영 논설위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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