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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병원과 정보 공유, 마음건강 고위험군 치료에 집중

중앙선데이 2017.11.19 00:24 558호 7면 지면보기
자살자 수 큰 폭 줄인 노원구 비결은
노원구 이웃사랑봉사단원인 조윤진씨가 외로운 노인의 말벗이 되어주고 있다. 주민 중심의 자발적 봉사조직인 이웃사랑봉사단원 수는 1133명을 헤아린다. [사진 노원구청]

노원구 이웃사랑봉사단원인 조윤진씨가 외로운 노인의 말벗이 되어주고 있다. 주민 중심의 자발적 봉사조직인 이웃사랑봉사단원 수는 1133명을 헤아린다. [사진 노원구청]

#1. 15일 오전 10시, 서울 노원구 상계2동의 주택가. 조윤진(51·여)씨가 한 다세대 주택 1층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집 안에 있던 김옥순(가명) 할머니가 조씨를 살갑게 반겼다. 방 한쪽에 놓인 침대에 앉은 김 할머니에게 조씨는 “식사는 하셨는지” “건강은 어떤지” 등을 소상히 물었다. 대화 중간중간 조씨는 할머니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 김 할머니가 수년 전 위암 수술을 받았고, 최근에는 얼굴이 뻣뻣하게 굳는 증상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어서다. 한 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뒤 조씨는 김 할머니에게 “꼭 약을 챙겨드시라”고 말한 뒤에야 현관문을 나섰다. 김 할머니는 노원구 이웃사랑봉사단원인 조씨가 매월 2회씩 찾아뵙는 독거 노인 중 한 분이다. 조씨는 김 할머니를 비롯해 12명의 노인에게 몇 안 되는 말동무다. 커튼을 다는 일처럼 노인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이나 약을 챙겨드리는 일 등도 그의 몫이다.

구청·주민 힘 합쳐 생명존중 사업
자살 시도자, 자살자 유가족 돌봐
7위였던 자살률 순위 20위로 낮춰

통장이 어려운 이웃 말벗 돼주고
해마다 주민들 마음건강 평가도

자원봉사 1133명, 취약 계층 도와
45개 지자체·기관서 벤치마킹

 
#2. 9일 노원구 중계동의 한 주민센터. 회의실에선 이선경 노원구 생명존중팀장을 비롯해 관할 동장과 주민 대표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진행 중이다. 이날 안건은 최근 이 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자살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고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회의의 결론은 구청은 물론 통장과 자치회장 등 주민들도 더 적극적으로 주변 이웃을 살피자는 쪽으로 내려졌다. 일과 중 주민을 자주 접하는 아파트 경비원에게는 자살예방교육을 하기로 했다. 이선경 팀장은 “자살이란 일종의 사회적 유행과 닮아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자살했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 이웃 중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분이 늘어난다”며 “최근 발생한 사건들의 원인을 공유하고,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민과 구청이 더 꼼꼼히 신경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통계청과 서울시에 따르면 2009년 180명에 달했던 노원구의 자살자 수는 지난해 121명으로 줄어들었다. 10만 명당 자살률로 따지면 2009년 29.3명에서, 지난해에는 21.4명이 됐다. 덕분에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일곱 번째로 높았던 자살률 순위는 지난해 20위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서울시 전체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6.1명에서 23명으로 소폭 내려갔다. 한국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국가다. 이런 가운데 서울 노원구가 그동안 골치를 앓았던 자살자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 결실을 거두고 있다. 그동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던 자살을 줄이기 위해 민과 관이 손을 잡고 나선 결과다.
 
사실 노원구는 다른 자치구보다 불리한 점이 많다. 기초생활수급자 수는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은 2만4889명이다. 장애인 및 65세 이상 인구도 1위(2만7430명)다. 반면에 재정자립도는 17.8%에 그쳐 25개 자치구 중 꼴찌다. 한마디로 돌봐야 할 사람은 많은데 돈은 부족하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행정청의 적극적인 사회적 개입이 자살자 전체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경제·사회적 요인으로 인한 자살을 줄이는 데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노원구의 경우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서도 꾸준히 자살자 수를 줄이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구청 최초로 자살예방 전담팀
노원구가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생명 존중 사업’을 시작한 건 2010년 10월이다. 당시 서울시 평균(10만 명당 26.1명)을 한참이나 웃도는 자살률(10만 명당 29.3명)을 어떻게든 낮춰보자는 데 구청과 주민 모두 뜻을 같이했다. 같은 해 자살예방 조례를 만들고 구청 내에는 자살예방 전담팀인 ‘생명존중팀’을 만들어 운영했다. 팀장급(6급) 직원 한 명을 포함해 총 4명의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막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 자살예방 전담팀을 설치한 것도 노원구가 최초다.
 
주민들의 대표 격인 통장에게는 보건복지도우미 역할을 맡겼다. 동네 사정에 밝은 통장들이 나서서 기초생활수급자를 발굴하고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의 말벗이 되어주는 상담 업무까지 수행토록 했다. 상계9동에서 2014년부터 이웃사랑봉사단원으로 활동 중인 윤선화씨는 “외로운 노인분들이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못하는 푸념이나 자살에 대한 속마음을 이야기하실 때에는 정말 머리털이 쭈뼛거릴 만큼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며 “봉사활동을 통해 어르신을 돕는다는 보람 못지않게 그분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 가정과 나 자신의 현재를 돌아볼 수 있어 스스로도 배우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도 주효했다. 자살 위험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 한정된 역량을 집중했다. 자살 위험이 큰 자살 시도자와 자살자의 유가족을 고(高)위험군으로 보고 이들에 대한 집중적인 상담과 심리치료를 진행했다. ‘누가 위험군인지’를 알기 위해 관내 경찰서와 종합병원 등의 힘을 빌렸다.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에 대한 정보는 종합병원이, 어느 가정이 자살자의 가족인지는 경찰서에서 알려주는 식이다. 이런 노력에 동참하기로 약속한 기관은 경찰서와 종합병원, 대한노인회 노원지회 등을 합쳐 23곳에 이른다. 노원구청은 현재도 160건의 자살 시도자 관련 정보를 갖고 이들을 집중적으로 돌보고 있다. 모두 관내 병원의 협조를 통해 얻은 정보다. 경찰의 도움 덕에 자살자 유가족(10건)에 대해서도 꾸준히 상담을 진행 중이다. 누가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인지 가려내기 위해 어려운 형편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음건강 평가도 매년 실시 중이다. 지난해에만 총 1만1243명의 주민이 마음건강 평가를 받았다.
 
“예산 낭비 아니냐”는 비난도
자살 고위험군을 전문 상담사와 구청이 살핀다면 2차 자살취약계층인 경제적 취약자와 독거노인 등을 돌보는 주체는 일반 주민으로 구성된 이웃사랑봉사단이다. 봉사단원들은 수시로 어려운 형편의 이웃을 찾아가 말벗이 되어주고 이들의 근황을 살핀다. 몹시 고독해하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등 의심스러운 징후가 보일 때 이 사실을 동 주민센터에 알리는 것도 이들의 임무다. 현재 봉사활동에 참여 중인 주민 수는 1133명에 이른다. 김영희 노원구 생명존중팀 주무관은 “현실적으로 구청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며 “주민들의 자발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이웃들을 꼼꼼히 보살피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봉사단 활동이 시작된 2011년 4월부터 현재까지 전화와 방문상담 등 어려운 형편의 이웃을 돌본 ‘휴먼서비스’ 제공 건수는 6만1217건에 이른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최근에는 구 의회로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도 어려운 일에 구청 예산을 쓰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탓에 ‘왜 구청이 자살 예방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이도 여전하다.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주민 중 일부는 자신과 관련한 상담이나 치료 모두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나마 자살자 수가 꾸준히 줄고 있고, 이런 성과를 인정해 주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노원구 공릉동에 사는 직장인 김윤재(38)씨는 “하루 종일 말동무 없이 혼자 벽만 보고 있어야 하는 독거노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뉴스에 마음이 아팠는데,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만으로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면 구청이든 주민이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자살예방정책에 드는 예산은 아깝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든다”고 말했다. 김정일 노원구 생활건강과장은 “자살 줄이기처럼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일에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다”며 “주민의 참여와 배려가 없었다면 이 사업을 지금까지 끌고오기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면서 노원구의 노하우를 배워가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서울 종로구와 은평구, 충청북도, 강원도 강릉시 등 45개 지자체와 기관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노원구를 방문했다.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자살률을 많이 낮췄다고는 하지만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할 땐 여전히 노원구의 자살자가 많아서다. 이에 노원구는 몇 가지 노력을 더 하기로 했다. 2018년부터 운영 예정인 ‘마음건강 실천학교’가 대표적이다. 자살 위험성이 높은 주민을 대상으로 명상치유와 둘레길 걷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토록 해 ‘마음보’를 더 단단하게 다져주기 위한 것이다. 노원구를 월계동과 공릉동, 중계동 등 5개 권역으로 나눠 시행된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한정된 예산과 행정력이지만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타 기관과의 협조라는 거버넌스를 통해 자살률을 낮추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며 “내년에는 현재 10만 명당 21.4명인 자살률을 10만 명당 19명대로 낮추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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