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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른거리는 관치 'CEO 리스크'

중앙선데이 2017.11.19 00:20 558호 30면 지면보기
Outlook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였던 2009년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에 공적자금 총 495억 달러(약 55조원)를 긴급 투입했다. 구제금융의 대가로 미 재무부는 GM 지분 60.8%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GM이 법적으론 잠시 국영 기업이 됐지만, 회사를 이끌 최고경영자(CEO)에는 민간 출신 구조조정 전문가가 선임됐다는 것이다.  

GM에 공적자금 넣은 오바마 정부
민간 출신 전문가에 경영 전권

KT·포스코·금융권 CEO 선임
親정부 인사들로만 채우는 건
사적이익 추구 '터널링'에 해당

 
자금을 넣은 정부는 더는 경영 간섭을 하지 않았다. 결국 4년 뒤인 2013년 오바마 행정부는 보유한 GM 지분을 순차적 방식으로 모두 매각했고, GM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무난하게 회수됐다. 물론 회수된 금액이 투입액수보다 적었으나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고용 유지를 위한 비용으로 간주하고 더는문제삼지 않았다. 여기에는 다른 복안도 깔려 있다. GM이 건실하게 영업활동을 지속할 경우, 향후 법인세를 비롯한 세금 징수로 장기적으로 공적자금 투입액 이상의 돈을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새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한국 경제 내에서 또 한 번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과거 공기업이었다가 국민주 형태로 민영화된 KT·포스코, 그리고 정부 입김이 강한 우리은행 등 금융권에서 CEO 리스크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은행은 채용 비리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광구 행장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뒷맛이 왠지 개운하지 못하다. 이들 기업 모두 각각 처한 상황이 다르기는 하나 공통점이 있다. 지분 구조가 분산돼 있다는 점, 그리고 CEO 선임 과정에서 정부의 ‘보이지 않는’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관행이 돼 버린 정부의 경영권 개입 문제가 이번에도 되풀이될 조짐을 보인다.
 
한국 경제에서 재벌 개혁 운동에 주로 활용되는 논리는 소액주주 권리 보호와 주주 자본주의다. 대기업 사주가 자기 소유 회사를 따로 설립한 다음. 이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서 회사 이익을 사유화하는 방식의 ‘터널링 행위’는 소액주주 입장에선 자신의 이익이 침해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사주 몇몇이 회사 가치 극대화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상황에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논리를 과거 공기업이었던 민간기업, 정부의 입김이 여전한 금융권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정권 창출이 공이 큰 인사, 친정부적 성향을 보이는 인사 가운데 CEO가 선임된다면 이는 회사의 가치 제고에 상당한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최적의 인사가 CEO로 선임되지 않는다면, 이는 정부에 의한 터널링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고 자부하는 정치인들이 기업을 매개로 일종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가치가 훨씬 더 많이 제고될 기회가 상실된다면, 소액주주들은 보이지 않는 잠재적 피해자가 된다.
 
바야흐로 컴퓨터·데이터산업 등 기술이 모든 경제 활동을 지배하는 ‘4차 혁명 시대’에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 빅데이터·로봇·공유경제·자율주행 차·유통혁명·긱이코노미 등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이 눈만 뜨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을 둘러싼 글로벌 경제 환경이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변혁의 시대에서 기업을 이끌고 혁신을 주도해야 할 CEO의 책무는 더욱 막중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중요한 시기일수록 기업의 생존과 가치 제고를 위해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최적격의 인물을 CEO로 선임하는 일은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주주의 이익을 잘 반영하는 이사회가 구성되고 이사회가 중심이 돼 최적격자를 전문경영인으로 선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사회가 회사 경영에 대한 견제·감시를 제대로 실천했을 때 기업과 주주 입장에서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기업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최적격 인사가 CEO로 임명될 수 있다는 건 전문경영인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이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한국 경제 내 많은 회사에 대해 10%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회사의 기업가치가 극대화될 경우, 국민의 노후도 편안해진다.
 
문재인 정부는 조금 달라졌으면 좋겠다. 그동안 CEO 임명에 개입해 왔던 관행을 깨고 이사회가 중심이 돼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면서 최고의 전문경영인이 CEO로 선임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 이러한 전문경영인 체제가 잘 작동하도록 뒤에서 지원해 준다면 금상첨화다. 최적격자를 CEO에서 배제하는 일 자체가 광의의 범위에서 본다면 인사 비리일 수도 있다. 진정한 적폐청산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전면적 개혁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를 통해 전문경영인 체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조치들이 시행되길 기대해 본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전 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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