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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화폐는 싸구려 잔돈에서 탄생… 비트코인, 돈이 되기엔 너무 비싸”

중앙선데이 2017.11.19 00:02 558호 4면 지면보기
해외 금융 전문가 3인의 암호화폐 해부
“19만6165달러(약 2억2400만원).”

이웃의 ‘비트코인 부자’ 스토리가
대중의 일확천금 기대심리 부추겨
기존 돈 불신이 암호화폐 자양분
아직 교환매개로 자리 잡진 못해

 
대표적인 암호화폐(Cryptocurrency·일명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가격 예상치다. 미국 학자금대출 서비스회사인 렌드에듀(LendEDU)가 15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비트코인을 매매하는 564명이 포함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예측이다. 비트코인 최근 가격은 개당 7000달러를 웃돌고 있다. 렌드에듀 설문조사대로라면 앞으로 28배 정도 더 오르는 셈이다. 오늘내일 당장 19만 달러대까지 값이 뛴다는 얘기는 아니다. 렌드에듀는 “비트코인 매수자가 주로 20~30대”라며 “이 세대가 성장해 기성세대가 되면 그럴 수 있다”고 전했다.
 
먼 미래 이야기다. 하지만 미국 경제전문 매체인 포브스는 “암호화폐는 국가 개입이 없는 인민의 돈(People’s Money) 또는 대안화폐로 불린다”며 “다음 세대의 상징이 되고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 마치 암호화폐가 말 많고 탈 많은 기존 돈을 밀어낼 새로운 화폐라는 말과 같다. 신조어의 등장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미국 호프스트라대 장폴 로드리그 교수가 말한 ‘새 패러다임 또는 개념의 등장’이다. 1840년대 철도버블 순간 나돈 ‘하나의 시장’이나 닷컴거품 때 제기된 ‘신경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선 ‘새 패러다임 등장’은 버블 정점과 같은 말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가격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의미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중앙SUNDAY는 영국 러프버러대 앨리스테어 밀네(금융경제학) 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개당 7000달러인 비트코인 가격을 어떻게 보는가.
“자산 가격이 적정한지를 따질 때 순이익 등을 바탕으로 한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엔 비즈니스가 없다. 가격 등락 외에 순이익이 발생할 구석(sources)이 없지 않는가. 적정 가격을 논하기 힘든 대상이다. 그래서 내 눈엔 버블로 보인다.”
 
버블에도 여러 단계가 있지 않는가. 지금 비트코인은 어느 단계인가.
“비트코인 가격이 정점에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로드리그 모델(그래픽 참조)에 따르면 가격이 대중이 마구 사고파는 단계에 이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단계의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영웅 스토리다.”
 
영웅 스토리라니 무슨 말인가.
“주변에 순식간에 부자가 된 인물이 있지 않는가. ‘쫄딱 망했다가 암호화폐에 투자해 성공했다’는 게 영웅 스토리의 기본 구조다.”
 
실제 기자의 지인인 유모(44)씨는 주식에 투자했다가 망했다. 네 가족이 9평형 셋방에 살았다. 그런데 몇 년 전 2000여만원을 비트코인에 베팅해 최근 40평대 아파트를 매입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다시 비트코인을 사들였다. 아주 소소한 성공 스토리다. 수백억원을 벌었다는 스토리마저 나돌고 있다. 밀레 교수는 “성공 스토리가 대중을 끌어들여 거품을 더욱 부풀리는 게 흔한 버블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최근 가격이 20% 넘게 추락했다.
“어떤 자산의 값이 10% 이상 출렁거린다는 사실 자체가 가격을 뒷받침해줄 근거가 부족하다는 말일 수 있다. 올 들어서만 비트코인 가격이 20% 정도 추락한 적이 서너 차례다.”
 
비트코인 가격이 추락했다가 금방 회복해 새로운 고점을 기록했다.
“놀라운 탄력이다. 지금이 정점인지 여부를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예측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폭락할 것이다’에서 ‘수만, 수십만 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예측까지 다양하지 않은가.”
 
한국의 중개회사 매매 시스템이 다운 됐다.
“(웃으며)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때 미국 증권거래 시스템이 다운됐다. 당시 금융규제 완화로 현물과 파생상품 거래가 급증했는데 정보기술(IT) 시스템이 따르지 못해서였다. 실제 새로운 자산이 폭발적으로 거래될 때, 또 정부의 감시와 규제 등 제도화가 제대로 되지 못했을 때 매매 시스템이 작동불능에 빠지곤 한다.”
 
매매체결 불안이 가격 급등락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매매 시스템 불안은 극적인 순간에 가장 공포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 비트코인 참여자들이 너도나도 매도에 나섰는데, 시스템이 다운됐다. 시장의 패닉은 증폭된다. 가격 산정(pricing)이 안 되는 순간 시장 참여자의 투매는 극에 달하곤 했다.”
 
그 순간은 어떤 때일까.
“내가 보기엔 암호화폐의 기대(expec tation)가 흔들릴 때다.”
 
암호화폐 가격은 미래 어느 순간 돈(화폐)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오르고 있다. 비트코인을 옹호하는 쪽은 국가가 양적완화(QE) 등으로 화폐를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기존 돈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디지털 뱅킹과 매매 시스템은 해킹 등에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암호화폐는 컴퓨터를 이용해 암호화 문제를 풀어야 얻을 수 있다. 발행 주체가 정부가 아니다. 비트코인의 총량도 일단 정해져 있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이나 위기 진정 명목으로 돈을 찍어내며 유발하는 인플레이션과 거리가 있다. 해킹이나 자금 추적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이런 매력을 지닌 암호화폐가 끝내 법정 화폐를 밀어낼 수 있을까. 런던정경대학(LSE) 찰스 굿하트(통화이론)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그는 돈의 정체를 다룬 『화폐, 정보 그리고 불확실성(Money, Information, and Uncertainty)』을 썼다.
 
암호화폐를 지지하는 쪽은 기존 화폐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럴 만하다. 국가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인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내 뿌렸다. 난 QE가 옳고 불가피한 대응인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단기간에 종이돈이 급증하는 현상이 역사 책이 아닌 눈앞에서 펼쳐졌다. ‘달러의 몰락’ ‘화폐의 붕괴’ 등을 주장하는 책이 마구 나오지 않았는가. 암호화폐도 위기 직후 본격화했다.”
 
암호화폐가 시대의 산물이란 얘기인가. 
“암호화폐는 정보시대의 산물이지만 유행은 기존 돈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탓이다.”
 
암호화폐가 돈으로 바뀔까. 지지자들은 나중에 국가가 암호화폐를 받아들여 인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하하! 국가가 인증하면 돈이 된다고 보는 시각이 국정 화폐론(the State Theory of Money)이다. 무언가가 화폐가 되는 과정은 오랜 진화 과정의 산물이다. 국가가 ‘이것이 돈’이라고 선언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돈이 되는 조건은 무엇일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교수가 말했듯이 현대 화폐는 금화나 은화 등 값비싼 또는 안정적인 가치를 지닌 화폐가 아니라 싸구려 잔돈에서 비롯됐다.”
 
사전트 교수는 중세 말이나 근대 초기 금화나 은화는 양이 충분하지 않아 부호나 큰 상인, 국가 간 결제 등에 주로 쓰인 반면 일상에선 구리 등 싸구려 금속으로 만든 돈이 실물경제의 매개(교환의 매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싸구려 잔돈이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게 현재 화폐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7000달러를 넘나든다. 이 높은 가격 자체가 비트코인이 교환의 매개가 되는 데 걸림돌이란 말인가.
“무엇(Something)이 돈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교환의 수단으로 구실해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여기서 단위(파운드·달러·원 등)가 독립돼 가치척도나 회계 단위로 구실한다. 가격이 너무 비싸면 집에 두려고 하지 내놓으며 다른 물건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금화에서 현대 돈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현대 금융 시스템이 해킹이나 공권력의 추적에 취약하다고 비판한다.
“해킹에서 자유로운 것은 암호화폐의 매력이다. 현대 화폐의 어머니인 싸구려 잔돈은 위조나 변조가 쉬웠다. 그런데도 돈이 됐다. 해킹이 어렵고 국가가 멋대로 양을 늘리고 줄이고 할 수 없다고 해서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암호화폐는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낮아 훌륭한 가치저장 수단이지 않을까.
“비트코인이 훌륭한 가치저장 수단일 수는 있다. 하지만 돈의 기능 가운데 가치저장은 일부다. 오히려 거래의 편리성이 중요하다. 현금을 받으면 상대가 누구인지 따지지 않아도 된다. 이런 믿음 이면에 제3의 존재(국가)가 범죄자금 추적 등으로 높인 신뢰성이 자리하고 있다. 민주화한 나라의 통화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은가.”
 
굿하트 교수는 “9·11테러 이후 주요국들은 서로 힘을 모아 금융거래 투명성을 높이는 시스템을 만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정 규모 이상의 금융회사 간 달러 자금 이동은 뉴욕연방준비은행의 모니터에 뜬다. 이런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인질범들이 몸값을 비트코인으로 받고 있다”고 굿하트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이런 음습한 이미지가 비트코인이 일반 시민의 신뢰를 얻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떤 때 암호화폐가 정식 돈이 될까.
“기존 화폐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했을 때다.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때처럼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게다가 정부에 의한 가치 복원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다. 그런 상황이 산업화한 나라에서 펼쳐질지 의문이다.”
 
앞서 밀네 교수는 현재 비트코인 가격의 거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대 금융시장은 자산의 연쇄사슬이다. 한 자산의 가격이 추락하면 다른 자산도 덩달아 흔들릴 수 있다. 비트코인이 금융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머물고 있는 영국 버밍엄대 피터 싱클레어(경제학)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싱클레어 교수는 옥스퍼드대 재임 중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경제고문 겸 조사국장을 가르쳤다.
 
요즘 비트코인 가격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다. 가격이 급락하면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을까.
“비트코인 투자자는 폭넓지 않다. 일부 뮤추얼과 헤지펀드, 몇몇 투자은행 산하 벤처펀드, 개인 투자자 등이 대부분이다. 또 개인 투자자 가운데 젊은이들이 많이 베팅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투자한다는 데 무슨 의미인가.
“암호화폐가 기존 돈과는 달리 용어가 어렵다. 50대 이상이 이해하기 어려워 베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세대는 금융자산의 주요 보유자다.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져도 이들 재산이 타격받지 않을 듯하다.”
 
추락의 충격이 제한적이란 얘기인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이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가격이 추락하는 바람에 금융 시스템 위기로 번졌다. 서브프라임이 각종 파생상품 제조 과정을 거쳐 각종 펀드에 넓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비트코인은 그렇지 않다. 일부 투자자가 열풍에 들뜬 상태다.”
 
자본주의는 17세기 이후 버블과 거품 붕괴 과정을 거치며 진화했다. 금융버블의 역사가인 영국 에드워드 챈슬러는 “금융버블이 없었다면 신대륙 발견, 철도 부설, 인터넷 등장 등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버블 붕괴 이후에 남을 수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렇다면 암호화폐 열풍 이후엔 무엇이 남을까. 싱클레어 교수는 “기술”이라고 간단하게 말했다.
 
무슨 기술을 말하는가.
“닷컴거품 붕괴 이후 수많은 1세대 닷컴기업이 사라졌다. 하지만 인터넷 시스템 자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기술은 남았다. 암호화폐 이후엔 블록체인(Blockchain)과 분산장부(Distributed Ledger) 같은 기술들이 남을 수 있다.”
 
왜 이 기술들이 중요한가.
“말이 어려워 나도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다. 나는 경제학자다(웃음). 다만 현대 금융시스템은 여러 가지 약점이 있다. 거래 정보를 기록·검증·보관 측면에서 믿을 만한 제3자에게 의존한다. 중앙은행이나 금융결제원·증권예탁원 등이 필수다. 이들을 이용하는 대가로 비용을 내야 한다.”
 
암호화폐 기술은 수수료가 없다는 말인가.
“많은 인력이나 거대 전산 시스템을 갖춘 결제원이나 예탁원의 필요가 없어진다. 거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개인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 물론 이 말엔 반론이 있기는 하다. 어쨌든 금융거래를 위한 거대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다면 그만큼 비용이 줄지 않겠는가.”
 
블록체인은 암호화폐와는 다른 것들인가.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결과물이다. 인터넷의 여러 기술을 바탕으로 1세대 닷컴기업이 반짝했다가 사라졌듯이 비트코인 등도 그럴 수 있다.”
 
무슨 말인가.
“닷컴거품 과정에서 본격화한 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웹2.0이 탄생하지 않았는가. 적지 않은 사람이 비트코인 등이 영원할 것으로 보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비트코인 등이 몰락하고 블록체인 메커니즘 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이 나타날 수 있다. 지금 오를 대로 오른 비트코인보다 그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게 좋을 듯하다.”
 
그 새로운 것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하는가.
“(웃으며) 경제학자인 내 눈에 보일 리가 있겠는가.”

 
블록체인 한 사람보다는 많은 사람을 속이기 힘들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 기술. 온라인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내용을 암호화된 블록에 담아 참가자 전원이 공유하고 수시로 이를 대조해 변조를 막는다. 이 블록이 자전거 체인처럼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에 블록체인이라고 한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2009년 도입된 암호화폐의 하나. 컴퓨터로 복잡한 암호를 풀어내면 지급한다. 일정량을 채굴할 때마다 암호 난이도가 높아진다. 현재 PC 한 대로 암호를 풀려면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여러 명이 채굴단을 구성해 수십 또는 수백 대의 PC를 동원해 암호를 해독한다. 앞으로 100년간 발행될 화폐량이 2100만 개로 정해져 있다. 현재 1500만 개 정도가 채굴됐으니 앞으로 600만 개 정도 더 채굴할 수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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