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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km냐 30km냐, 포항 지진 후 '원전 방사선 구역' 확대 논란

중앙일보 2017.11.19 00:01
탈핵 경남시민행동이 16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탈핵 경남시민행동이 16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지난해 9월 경북 경주 지진(규모 5.8)에 이어 지난 15일 포항에서 역대 두 번째 센 지진(규모 5.4)이 발생하면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우려하는 환경단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설정하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확대를 놓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부산시, 고리원전 단지에서 20~21㎞를 비상 계획구역 설정
환경단체,후쿠시마 사고 때 대피령 내려진 30㎞로 확대 주장
부산시,“확대하면 주민 대피·소개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반박
“최악의 경우라도 13㎞까지 방사능 퍼진다” 연구결과 제시도

방사선 비상이란 원자력 시설에서 사고가 발생해 방사능이 외부로 누출되거나 누출될 우려가 있는 상황을 말한다. 그 심각성과 피해 예상 정도에 따라 백색·청색·적색 비상 등 3가지로 구분된다. 
백색 비상은 방사성 물질의 누출로 인한 영향이 원자력 시설 건물에 국한될 경우, 청색 비상은 원자력 시설 부지에 국한될 경우, 적색 비상은 원자력 시설 용지 밖까지 영향이 미칠 경우 발령된다. 
 
탈핵 양산시민행동이 16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사진 탈핵 양산시민행동]

탈핵 양산시민행동이 16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사진 탈핵 양산시민행동]

이 같은 방사선 비상에 대비해 대피·소개 등 주민 보호 대책을 사전에 집중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설정한 구역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이다. 많은 양의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 생명이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것을 방지하고, 지속적인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 백혈병·갑상샘암 등 건강상 영향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이 비상계획 구역은 원자력 발전소와의 거리에 따라 예방적 보호 조치구역(3~5㎞), 긴급 보호조치 계획구역(20~30㎞)으로 나뉜다.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지방 자치단체가 비상계획구역을 설정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확정한다.
 
예방적 보호 조치구역은 방사선 비상이 발생할 경우 사전에 주민을 소개하는 등 예방적으로 주민 보호조치를 실시하는 구역이다. 또 긴급 보호조치 계획구역은 방사선 비상이 발생할 경우 방사능 영향평가 또는 환경감시 결과를 기반으로 주민에 대한 긴급 보호조치를 위해 정하는 구역이다. 
 
자료; 원자력 안전위원회

자료; 원자력 안전위원회

 
고리원자력발전소 단지가 있는 부산시는 2015년 5월 21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승인을 받아 고리원전에서 5㎞까지를 예방적 보호 조치구역으로, 20~21㎞까지를 긴급 보호조치 계획구역으로 확정했다. 부산시의 긴급 보호조치 계획구역에는 기장군 전체와 해운대구 일부가 들어간다. 인구로 치면 전체 부산 인구 350만명 가운데 50만명이 사는 거주지가 포함된다. 
 
하지만 원전을 반대하는 부산의 일부 시민·환경단체들은 일본의 사례처럼 긴급 보호조치 계획구역을 30km까지 확대 설정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당시 쓰나미에 의한 원전 사고 때 주민 대피령이 내려진 일본은 30km까지 긴급 보호조치 계획구역으로 설정했었다.
경북·전남·울산은 방사선 비상 계획구역을 30㎞로 설정해놓고 있다.
주말에 날씨가 추워진다고 하자 17일 한 종교단체가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을 찾아 이재민들에게 두꺼운 매트를 나눠주었다.이재민들이 매트를 깔고 있다.송봉근 기자

주말에 날씨가 추워진다고 하자 17일 한 종교단체가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을 찾아 이재민들에게 두꺼운 매트를 나눠주었다.이재민들이 매트를 깔고 있다.송봉근 기자

 
부산도 30km까지 확대하자는 주장이 지난 15일 규모 5.4의 포항 지진 이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만약 이들의 주장처럼 긴급 보호조치 계획구역을 현재의 20~21㎞에서 30km까지 확대되면 부산 일대의 주민 대피령 대상은 50만명에서 380만명으로 많이 늘어난다. 
380만명은 부산 시민 350만명 중 247만8000명, 여기에다 울산·경남 주민을 합한 숫자다. 부산 시민의 경우 마린시티와 센텀시티 등 해운대 전역과 부산시청 일대까지 포함된다.  
 
최수영 탈핵 부산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러시아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30㎞ 이내는 주민 거주를 막고 있고, 일본 후쿠시마 사고 때는 30㎞까지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며 “과거 사고사례 등을 봐도 30㎞로 확대해야 시민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는 30㎞로 확대하면 너무 많은 인구와 지역이 포함되면서 오히려 비상계획의 실효성이 떨어져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반박했다. 
 
자료;원자력 안전위원회

자료;원자력 안전위원회

배광효 부산시 시민안전실장은 15일 부산시의회의 행정 사무감사 때 안재권 의원이 30㎞로 확대할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피 인원이 250만명 정도로 늘고 대피소 증설 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변했다. 
부산의 16개 구·군 가운데 12개 구·군의 247만8000명이 포함되면서 한꺼번에 대피·소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고, 오히려 대피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부산시는 교통 체증 등 현실적 이유를 들고 있다.
 
부산시는 또 “2015년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확정하기 전에 전문가 연구용역(NEP 컨설턴트)을 받은 결과 기상 등 최악의 조건을 가정하더라도 방사능은 최대 13㎞까지 퍼지는 것으로 조사됐고, 당시 시민과 구·군 의견을 받아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시는 이 같은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설정에 따라 고리원전단지에 20~21㎞ 떨어진 곳에 현재 구호·대피소 520개소를 확보해 놓고 있다. 구호·대피소는 교통편, 비상 발전기, 화장실, 급식 가능 여부, 방송시설 여부 등을 따져 결정했다. 
 
자료;원자력 안전위원회

자료;원자력 안전위원회

이장희 부산시 원자력안전 팀장은 “방사선 비상 계획구역은 구호소 확보 여부, 주민 대피·소개, 응급구조, 병원 활용, 도로망 확보, 인구 분포 등을 종합해 결정한다. 30㎞로 확대하면 오히려 구호나 대피를 못 하게 할 수 있다. 이런데도 확대하는 것은 부산시가 시민에게 거짓말하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또 “비상계획구역 확대는 비상대책이 제대로 마련되는지 안되는지 검증해야 하고, 부동산값 하락, 주민 이주, 외자 유치 애로 등 많은 사회 경제적 문제를 일으킨다”며 “환경단체가 비상계획 구역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마치 비상계획구역이 위험지역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 아니겠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부산 환경운동연합과 민간 연구기관인 원자력안전연구소는 지난 3월 연구(시뮬레이션)에서 “고리원전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하면 반경 20㎞ 내 주민이 차량으로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20㎞ 밖으로 대피하는 데 22시간이 걸리고, 풍속 등에 따라 사고 2시간 만에 25만 명이 피폭되는 것으로 나왔다”며 “지역별 대피 경로와 최적 대피 경로 선정, 주기적인 대피훈련, 최적의 구난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연구는 고리원전 3, 4호기에서 동시에 방사선(세슘 134·137)이 24시간 동안 서서히 누출되는 중대 사고가 발생하고 30분 뒤 경보를 울린 뒤 원전 반경 20㎞ 안에 있는 부산·울산시와 경남 양산시 등 3개 지역(94개 읍·면·동) 인구 170만 명이 가족 3명씩 차량에 동승하고 대피하는 것을 가정해 이뤄졌다.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조사하지 않았다. 고리원전에서 27㎞가량 떨어진 부산 도심인 서면에서는 24시간이 지나도 10% 정도의 시민은 대피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7일 오후 경북 포항을 방문해 지진 재해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국토교통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7일 오후 경북 포항을 방문해 지진 재해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국토교통부]

김성욱 원자력안전연구소 운영위원은 “국내에는 대피·소개 순서, 정보전달 방법, 조기대피 방법 등이 명시된 구체적인 대피 시나리오가 없다”며 “일시에 대피·소개 명령이 떨어지면 차량정체 등으로 꽉 막히면서 집단 피폭 우려가 커진다”고 말했다.
 
한편 세계 각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권고기준(5~30㎞)을 참고해 미국의 경우 16㎞, 프랑스는 10㎞, 중국은 7~10㎞, 일본은 30㎞까지를 비상계획구역으로 설정·운영하고 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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