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진핑의 기숙사 절친 “최고의 실력은 ‘충성’입니다”

중앙일보 2017.11.17 11:39
그는 시진핑 주석과 동갑입니다. 명문 칭화대학 화공과 동기 동창이기도 하고요. 그냥 동기가 아닙니다. 대학 시절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2층 침대 위아래에서 같이 잠을 잔 사이지요. 형제 같은 ‘절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천시(陳希·64) 공산당 조직부장 겸 중앙당교 교장 얘기입니다.
천시 조직부장 [사진 신성망]

천시 조직부장 [사진 신성망]

시 주석이 자기 사람, 특히 실력 있는 자기 사람을 특별히 챙기는 건 유명하지요. 시진핑 시대 핵심 요직 대부분이 그런 인물들로 채워졌습니다. 천시 부장은 어떤 인물일까요. 2013년 3월 시 주석이 주석에 오르기 전 그는 과학기술 협회 당서기(장과 급)였습니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과 전략을 자문하는 중요한 조직이긴 하지만 권력과는 거리가 멀지요. 한데 시 주석은 취임하자마자 그를 당 중앙 조직부 상무 부부장으로 발탁합니다. 조직부는 공산당 인사를 관리하는 권력 핵심 중 핵심입니다. 더구나 상무 부부장(장관급)은 부장(장관)을 대신해 실질적인 인사 관리를 하는 직책입니다. 당시 베이징 정가에서는 시 주석 취임 이후 가장 파격적인 인사였다는 말이 돌았지요.  

시 주석 취임하자마자 당 중앙 조직부 상무 부부장에 발탁
칭화대 공대 졸업 후 교수로 재직, 2008년까지 33년간 ‘칭화맨’
당대회 후 인민출판사가 낸『19차 당대회 보고 해설 독본』도 그가 써

 
한데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천시는 19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으로 승진하더니 11월 초에는 중앙당교 교장까지 겸임합니다. 중앙당교는 중국의 파워엘리트를 길러내는 최고의 교육 및 훈련 기관입니다. 그 중요성이 너무나도 커 교장은 대부분 정치국 상무위원이 맡았지요. 1989년 차오스(喬石) 당시 정법위 서기가 중앙당교 교장을 맡은 이래 30여년간 이 자리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겸임해왔습니다. 시진핑 주석과 후진타오 전 주석도 주석 취임 전 교장을 거쳤을 정도입니다. 한데 30년여 년 만에 처음으로 당교 교장을 정치국원이 맡은 겁니다. 천시가 상무위원 급 정치국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푸톈의 다양한 경치 [사진 바이두 백과]

푸톈의 다양한 경치 [사진 바이두 백과]

천시는 푸젠(福建) 성 푸톈(莆田) 태생입니다. 어릴 적 신동으로 불릴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고 합니다. 수재 중 수재만 입학할 수 있다는 칭화대 공대(화공과)에 합격(1975년)했는데 거기서도 학업 성적이 뛰어났지요. 졸업이 가까워지자 학교 측은 그에게 대학원 진학을 권하며 학교에 남아 교수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도 싫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촉매동력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교수로 재직하면서 2008년까지 무려 33년간 칭화대학 공청단 서기 공회(工會·노조) 주석, 당 위원회 서기(차관급)를 거칩니다. ‘뼛속까지 칭화 맨’인 셈이지요.
 
반평생을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그의 벼슬길은 초라했습니다. 2008년 처음으로 교육부 부부장(차관)이 됐는데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2010년엔 랴오닝성 부서기로 출사했지만 역시 당 중앙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1년 후 그는 다시 중국 과학기술 협회 서기로 전보돼 권력과는 담을 쌓는 벼슬길만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을 때 시진핑 주석만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침대 위아래에서 잠을 자며 겪은 천시는 성실하고 무엇보다 충성도가 제일이었습니다. 배신을 가장 증오하는 천시의 천성을 눈여겨보면서 믿을만한 동기생이라고 본 겁니다. 그리고 주석에 취임하자마자 그를 조직부 상무 부부장으로 끌어올립니다.
칭화대학 기숙사 [사진 바이두 백과]

칭화대학 기숙사 [사진 바이두 백과]

시 주석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천시의 정치관은 ‘천하 최고의 덕은 충성(天下至德, 莫過于忠)’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다른 말로 풀면 “최고의 실력은 충성”이라는 뜻이 되겠네요. 물론 당에 대한, 즉 시진핑 총서기에 대한 충성이지요. 시 주석이 가장 싫어하는 것도 ‘배신’이니 동갑내기 동기 동창의 코드는 40년 동안 교감을 계속하고 있었던 겁니다.
 
시 주석이 2012년 말 당 총서기에 오른 후 가장 강조했던 건 당에 대한 충성입니다. 당원들의 충성심이 없으면 공산당 독재는커녕 당의 존재조차 위협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시진핑 사상의 핵심인 ‘종엄치당(從嚴治黨·당의 엄격한 관리)’의 근간 역시 충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이지요.
 
천시가 얼마나 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지 실례가 있습니다. 그는 19차 당대회 시진핑 총서기 보고서를 작성에 관여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시진핑 사상과 1인 체제 구축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미지요. 당대회 이후 인민출판사가 펴낸 『19차 당대회 보고 해설 독본』에는 그가 쓴 ‘간부 선발의 정치적 기준’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당 조직부 부부장 자격으로 쓴 글입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중앙당교 졸업식에 참석한 천시(중앙) 교장 [사진 신화망]

중앙당교 졸업식에 참석한 천시(중앙) 교장 [사진 신화망]

“당 중앙은 저우융캉(전 정법위 서기), 보시라이(전 충칭시 서기), 궈보슝(전 중앙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전 중앙 군사 위 부주석), 쑨정차이(전 충칭시 서기), 링지화(전 통전부장) 등 정치 야심가, 음모가들을 엄정하게 처리했다. 그들이 당에 끼친 해악은 부패 문제와 다르지 않으며 그들의 직책이 높아지면서 당에 끼친 손실 또한 엄청나다. 그래서 당의 간부 선발 기준을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정치적 충성도, 둘째 정치력, 셋째 정치적 책임감, 넷째 정치 능력, 다섯째 정치적 자율성 등이다. 이는 시진핑 총서기가 19차 당대회 중 분명하게 강조했다.” 간부 선발과 발탁의 첫 번째 기준을 ‘충성’에서 찾는 그의 정치관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난 문장입니다. 
그가 당 조직부 상무 부부장에 올랐을 때 공산당 신문망은 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당의 노선과 정책을 확실하게 관철하고, 중대한 원칙 문제에 대한 입장이 확고하고, 모든 방침과 입장이 당과 일치하고, 사고가 민첩하고, 업무 경험이 풍부하고, 업무 실적이 탁월하고, 사고가 분명하고, 정책 이론 수준이 높고, 거시적 안목이 탁월하고, 복잡한 문제에 대한 처리 능력이 뛰어나고, 혁신 정신이 강하고, 매사에 실용적이고, 근면하고, 과감하고, 민주적이고, 협력과 단결을 추구하고 친화력이 뛰어나고, 자기 스스로에 엄격하고, 사람됨이 겸손하다"라고 평가합니다.  
 
단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공자 맹자도 못 따라갈 수준입니다. 물론 이런 평가를 액면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근면하고 친화력이 뛰어나며 겸손한 것은 맞는 모양입니다.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를 평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온 말이니까요. 어쨌든 그는 향후 5년 시진핑에 대한 ‘충성맨’ 만을 골라 시진핑 권력의 철골 구조를 만들 모양입니다. 역설적으로 그가 사람을 잘못 고르면 시진핑 권력이 위험해질 수도 있겠네요. 만사는 인사로 통하니까요. 그만큼 그는 시진핑에게, 중국 공산당에게 중요한 파워엘리트입니다.
 
차이나랩 최형규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