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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정권의 것 아니다, 국정원장 코드인사부터 없애라"

중앙일보 2017.11.14 17:45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40억원 가량의 특수활동비를 상납했다는 의혹으로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두했다. 임현동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40억원 가량의 특수활동비를 상납했다는 의혹으로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두했다. 임현동 기자

 국가정보원이 위기다. ‘댓글 국정원’이란 비판에 이어 적폐의 온상으로까지 지목되면서 전직 수장 4명이 동시에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까지 몰렸다. 원세훈 전 원장은 구속, 남재준·이병호 원장에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병기 전 원장도 긴급 체포됐다. 
 '국정원,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론이 각계에서 분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 1차장을 지냈던 전옥현 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선 캠프 인사를 국정원장으로 가져다 쓰지 않는 것”이라며 “국정원은 코드 인사를 하면 안된다. 코드 인사를 하면 아무리 국정원을 정권에서 자유롭게 한다 해도 허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삼(YS) 정부 시절, 권영해 국정원장은 직전 국방부 장관 시절 하나회 척결 작업을 전면에서 진행한 YS 측근이다. 김대중(DJ) 정부의 임동원 원장은 1995년부터 아태평화재단 활동에 참여하며 DJ 대북정책의 핵심 인사다. 뒤를 이은 신건 원장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던 총재법률담당특보 출신이다. 
 원세훈 전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가까이 두었던 인사고 이병기 전 원장 역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선대위 부위원장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도왔다. 이 밖에도 대부분의 원장들이 비슷한 이력을 지녔다. 이같은 측근 기용은 ‘불법 행위 의혹’→‘사정 당국 수사’라는 악순환을 낳았다. 국정원이 대한민국의 안전이 아닌 정권의 안전을 위한 기관이었다는 비판을 사는 이유다. 
 
 국정원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선 ‘원장에 측근 기용’이란 관행부터 깨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충고다.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채성준 건국대 행정대학원 국가정보학과 겸임교수는 “국정원은 비밀 정보기관이라 노출되지 않으니 원장 한 명, 대통령 한 명의 의지에 따라 국정원이 좌우될 여지가 항상 있다”며 “다른 부처와는 달리 시민단체와 언론의 감시를 받지 않아 언제든 전횡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막강한 권한과 은밀성이라는 국정원의 두 가지 특성은 진보ㆍ보수라는 정권의 성격과도 관계가 없다. 이 때문에 국정원 개혁은 '권력의 시종'이 되는 구조부터 바꾸는 근본적 개혁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유동열 국가정보학회 수석부회장은 “국정원이 거듭나려면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정치적 중립과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며 “국가정보기관이라는 본연의 길을 가려면 대통령도 국정원에 관여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부회장은 이를 위해 ▶국정원장 임기제 도입 ▶정보의 정치적 활용 금지 조항 신설 ▶국정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 강화 등을 제안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정원 고위 인사도 “국정원장은 정보를 다루는 조직의 특성상 정권의 임기와 무관하게 가야 한다”고 밝혔다.    
2013년 국회 국정원 개혁특별위원회 활동에 참여했고 국가정보법 연구학자인 한희원 동국대 법대 학장은 정권마다 검찰 수사가 반복되는 현실에 대해 “정권이 바뀌면 또 죽을 텐데 어느 정보 요원이 의욕적으로 일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YS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이원종 전 수석은 “국정원이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는데 매번 반복되는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 권력을 이끌어 가는 엘리트들에 있다”고 지적했다. 
채병건ㆍ최민우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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