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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의 寫眞萬事]마오쩌둥의 적폐,박정희의 적폐

중앙일보 2017.11.13 16:06
 만년의 마오쩌둥이 평생의 동지이자 2인자 였던 저우언라이에게 지나는 말투로 “저우 동지, 중국 혁명을 위해 내 평생을 바쳤지만 공(功)이 50%, 과(過)가 50% 되는 같다” 라고 슬쩍 떠보자 잠시 뜸을 들이던 저우언라이가 “너무 박한 평가십니다. 제 생각에는  공이 70%, 과가 30%라 해도 박한 평가입니다” 라고 받아 넘겼다는 말이 있다.
 
13일 서울 상암동 박정희 기념도서관에서 박정희 대통령 동상 전달식이 열렸다.오른쪽 현수막에 있는 사진이 박 전 대통령의 동상 모습이다. 동상 실물은 이날 전달되지 않았다. 김춘식 기자

13일 서울 상암동 박정희 기념도서관에서 박정희 대통령 동상 전달식이 열렸다.오른쪽 현수막에 있는 사진이 박 전 대통령의 동상 모습이다. 동상 실물은 이날 전달되지 않았다. 김춘식 기자

 
 절대권력을 가진 1인자 옆에서 평생을 보낸 능수능란한 2인자의 화려한 처세가 돋보이는 대답이지만 그것 말고도, 한 인간을 평가할 때 공과 과를 중첩적으로 반영하는데 동의한다는 점에서  중국 리더들의 대국적 인간관이 살짝 부러워지는 대답이기도 하다. 절대권력자의 면전에서 당신의 공이 100%라고 아부하지 않은 2인자의 진중함과, 자신의 공을 100%라고 착각하지 않는 1인자의 리더십은 그것만으로도 평가를 받을 만 한 인간적 대목이다.
 
같은 시간 전달식이 진행되는 장소 앞에서 진보단체 회원들이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같은 시간 전달식이 진행되는 장소 앞에서 진보단체 회원들이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장개석의 국민당군을 물리치고 중국 전역을 공산화하는데 성공한 마오의 공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공이었지만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약 3년간 펼쳐진 대약진운동 과정에서 고문과 과로, 기아, 질병 등으로 최소한 3천만 명 이상을 사지에 몰아넣고, 이어 1966년부터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를 선동해 중국사회의 문명사적 흐름을 퇴보로 돌려세운 마오의 과오는 공산화 과정의 공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냥 없던 일로 하기엔 너무나 큰 과오가 분명했다.  
 
 공산주의 1당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 사회에서 마오의 과오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 여전히 쉽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마오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이 마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은 저우언라이의 생각처럼 유연한 구석이 있다. 몇 년 전 중국 출장 당시에 마오의 사진을 백미러에 걸어두고 운행을 하는 택시 기사에게 “왜 마오의 사진을 걸어두는가?” 물었더니 “행운을 가져오는 부적이다”라는 답을 듣기도 했다. 이 사람들이라고 수천만 명이 굶어죽은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의 몸서리치는 악몽을 모르겠는가.    
 
진보단체 회원들의 시위.박정희대통령이 원조 적폐라는 피켓이 등장했다. 김춘식 기자

진보단체 회원들의 시위.박정희대통령이 원조 적폐라는 피켓이 등장했다. 김춘식 기자

 
전달식이 진행되는 장소 앞에서 진보단체 회원들이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자 보수단체 회원들이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전달식이 진행되는 장소 앞에서 진보단체 회원들이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자 보수단체 회원들이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13일 서울 상암동 박정희대통령 기념도서관에서 박정희 대통령 동상 기증식이 열렸다. 14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승만 · 트루먼 · 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이 제작한 동상은 이날 기증식에서 도서관 측에 전달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동상 건립을 두고 팽팽하게 맞선 찬성 · 반대 양론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데다가 서울시 공공미술심의위원회의 심의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차적 문제 이전에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우리 사회 양 극단의 엇갈리는 평가가 동상 건립을 둘러싼 잡음의 본질적 문제다.    
 
 동상건립추진모임측은 “박정희 대통령은 애국애족 정신으로 일평생을 조국 근대화와 굳건한 안보를 위해 헌신하신 분”이라면서 “새마을운동과 경제발전을 통해 국가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신 분의 동상을 세우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동상 전달식 끝난 뒤 참석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동상 현수막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춘식 기자

동상 전달식 끝난 뒤 참석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동상 현수막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춘식 기자

 
 같은 시간 동상 기증식이 열린 도서관 앞 인도에서 동상건립 반대시위를 벌인 민족문제연구소 등 반대단체들은 “박정희는 민족을 배반한 친일군인이자 동시에 임시정부의 반대편에서 교전을 수행한 명백한 적국의 장교”라고 주장하면서 “적폐 중의 적폐이자 원조 적폐인 박정희의 동상을 서울시민의 땅에 세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한다.
 
'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이 제작해 경기도 고양에 보관 중인 높이 4.2m 크기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연합뉴스]

'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이 제작해 경기도 고양에 보관 중인 높이 4.2m 크기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연합뉴스]

 
 한 국가의 발전과 쇠락에는 국민성, 자원, 시대적 요구, 정치체제 등 이른바 내재적 이유가 있다. 1953년 9월 정전 이후 같은 민족 간에 벌어진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남한이 압도적으로 우세를 보인 것은 이런 내재적 조건 외에 지도자의 리더십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동상건립추진모임측은 5.16 군사정변 이후 70년대 초반까지 경제발전을 주도해 한강의 기적을 일군 리더십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그 주인공이 박정희라고 보지만 박정희대통령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반대진영은 식민지 출신 청년 장교의 젊은 시절 부역사실과 산업화과정에서 벌어진 민주주의 탄압 같은 흑역사에만 집착하면서 박정희를 원조 적폐이자 청산 대상으로 평가절하한다.  
 
 내가 보는 것만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나만 옳다는 주장은 사실 들을 가치조차 없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극단의 주장이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게 돼있다. 박정희 동상을 둘러싸고 양 진영이 외치는 극단적 주장의 중간 지대엔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 과를 중첩적으로 바라보는 다수의 현명한 국민들이 있다.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바뀔 때마다 지난 시대 지난 인물을 부정하다보면 우리에게 남아 날 역사는 없다. 꽃은 10일을 못 가고 권력은 10년을 못 간다. 오늘 함부로 적폐 청산을 외치다가는 내일 자기 자신이 청산될 적폐가 되는 신세를 면할 수가 없다.    
 
 글·사진=김춘식 중앙일보 포토데스크 부국장 kim.choon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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