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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에 굶주린 트럼프, 한·일서 대접 받으며 힐링했을 것”

중앙선데이 2017.11.12 00:02 557호 12면 지면보기
『아부의 기술』 저자 스텐걸 전 美 국무차관
리처드 스텐걸 1955년 뉴욕 출생. 미국 프린스턴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문학과 역사 전공. 타임지 19대 편집부국장(Managing Editor), 국무부 차관(2014~2016년) 역임. [사진 스텐걸 홈페이지]

리처드 스텐걸 1955년 뉴욕 출생. 미국 프린스턴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문학과 역사 전공. 타임지 19대 편집부국장(Managing Editor), 국무부 차관(2014~2016년) 역임. [사진 스텐걸 홈페이지]

“아부 측면에서 트럼프는 ‘아메리칸 아담’이 아니다.”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는 트럼프
극진한 의전으로 권력의 맛 즐겨

한국은 대중이 군주가 되는 시대
기존 엘리트 대신 보통 사람 선호
기업도 금방 들통날 과장 피해야

 
리처드 스텐걸(62·사진) 전 미국 국무부 차관의 귀띔이다. 그는 아부의 역사를 파헤친 저서 『아부의 기술』에 개인적인 차원에서 권력과 종교 차원까지 ‘사회적 말 잔치(아부)’의 역사를 담고 있다.
 
중앙SUNDAY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지난 7일 전화로 스텐걸 전 차관을 인터뷰했다. 애초 주제는 ‘21세기 비즈니스 환경과 아부’였다. 그런데 트럼프 방한 때문에 그와의 대화는 삼천포로 빠졌다.

 
올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양옆에 선 한·일 정상. [함부르크=AP연합]

올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양옆에 선 한·일 정상. [함부르크=AP연합]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특유의 환대를 즐기는 듯했다.
“하하! 맞다. 그는 내가 책에서 말한 아메리칸 아담이 아니다. 미국 대통령을 지칭하는 아메리칸 아담은 유럽 왕실의 궁궐 속 권력자들과는 좀 다르다. ‘의전에 찌든(protocol-laden)’ 아부보다는 실용적이고 직설적인 아부를 좋아하는 게 역대 미 대통령들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멋진 코트로 멋 부리는 그런 정도의 아부를 즐겼다.”
 
이전 미국 대통령들도 동아시아나 영국 의전을 경험하면 좋아하지 않았을까.
“이전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 등의 의전에 치중한 아부를 부담스러워했다.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동아시아 국가의 의전 형식주의를 놀리기도 했다.”
 
스텐걸 전 차관이 보는 동아시아 의전은 아부의 결정판이다. 중국인과 한국인·일본인은 생사여탈권을 쥔 절대권력 아래에서 오래 살았다. 높은 사람을 위한 다양한 존칭이 다른 문화권과 견줘 많은 이유다. 또 말의 성찬이 의전으로 자리 잡았다는 게 스텐걸의 설명이다.
 
왜 트럼프는 이전 미 대통령들과 다를까.
“트럼프는 미국 내에서 궁지에 몰려 있다. 지지율이 바닥이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이 37% 정도다. 반대 여론은 50%를 웃돌고 있다. 이쯤 되면 정치 리더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열등의식을 느끼고 있을 게 분명하다.”
 
지지율이 낮다고 의전 속 아부를 즐긴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트럼프는 미국의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 주류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적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한테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빈곤감에 시달리는데 일본과 한국이 오랜 세월 동안 자리 잡은 의전으로 그를 반긴다. ‘아부에 굶주린(flattery-hungered)’ 트럼프는 자신의 나라에서 받지 못한 권력에 대한 숭배를 즐기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는 듯하다.”
 
스텐걸은 시사주간지 타임의 편집부국장을 지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차관이 됐다. 스스로 리버럴(미국식 진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저널리스트 시절 아부의 역사를 지었다. 기자 출신 외교관료답게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 등 한국의 정치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요즘 한국이 어떻게 보이는가.
“대중이 힘을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 평화적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쫓아냈다. 대중이 주인임을 자각하고 실제 느끼고 있으며 힘을 행사하려고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기성 엘리트에 대한 거부도 엿보인다.”
 
보수파 정치 엘리트들이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럴 것이다. 대중과 엘리트 사이 방정식이 바뀌었다. 이런 때 국민은 군주처럼 스스로 생각한다. 기존 엘리트의 위기다.”
 
위기의 의미가 무엇일까.
“한국의 기존 엘리트는 좋은 학교·집안을 배경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대중과 다른 점’을 무기로 리더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권력 전면에 나선 요즘 그들은 기존 엘리트 대신 자신과 처지가 같거나 비슷한 인물을 리더로 뽑는 경향을 보인다. 보수든 진보든 리더가 되려는 사람은 이 점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어떻게 행동하면 될까.
“보수든 진보든 정치 메시지는 아부다. 기존 엘리트는 대중을 대상화했다.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에 맞춰 대중을 설득의 상대로 봤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구성원이 동의하면 기분 좋게 벼랑 끝까지 배를 몰고 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기존 엘리트는 이를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라고 비난하겠지만 역사적으로 대중보다 훌륭한 영웅이 얼마나 드문지 검증됐지 않았는가.”
 
비즈니스 리더에게도 의미심장한 말 같다.
“마케팅은 아부의 상업화다. 대중이 전면에 나선 시대에 기업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다. 이제까지 마케팅에서 과장은 어느 정도 용인됐다. 이제는 아니다. 구체적이고 사실과 가까운 마케팅 용어로 소비자(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 대중이 똑똑해져 말 장난이란 게 금방 드러날 아부를 싫어한다.”
 
스텐걸이 국무부 차관으로 담당한 일은 일종의 선전(propaganda)이었다. 그는 스스로 “전 세계인을 상대로 아부했다”(웃음)고 말했다.
 
아부를 꼬집는 책을 쓴 뒤 불특정 다수에게 아부하니 어땠나.
“미국의 ‘최고 마케팅 책임자(CMO)’라고나 할까. 하하하! ‘미국의 정책을 좋아하면 미국을 좋아한다’고 믿고 일했다. 아주 재미있었다. 외교 관료들 사회에 저널리즘의 스피드를 불어넣으려 했다. 요즘과는 달리 다른 나라 국민과 소통하려고 했다는 점은 분명히 말하고 싶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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