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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8년에 암, 31세로 숨진 내아들 공무상재해 아니라니”

중앙일보 2017.11.10 00:01
김범석 소방관

김범석 소방관

“국가가 소방관의 죽음을 평가할 때 희소암이라고 따지기 전에 소방관이 뛰어드는 재난현장의 환경을 먼저 평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소방관 경력 8년 현장 출동 1000회 넘긴 아들 김범석 소방관 혈액암으로 사망
아버지 김정남 씨 “소방관일 때 암 걸렸으니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 줘야”

3년 전 혈관육종암으로 소방관이던 아들을 잃은 김정남(68) 씨. 그는 오늘따라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고 했다.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지난 9일이 ‘소방관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들 고(故) 김범석 소방관(당시 나이 31·소방교)의 죽음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3년째 정부와 싸우고 있다. 
김 소방관은 숨지기 전에 아버지에게 유언을 남겼다. 
“자식에게 병 걸린 아빠가 아닌 자랑스러운 아빠로 기억될 수 있게 해주세요. 병이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소송이라도 해주세요.”
 

24세이던 2006년 소방관으로 임용된 아들은 2013년 8월 쓰러지기 전까지 화재 출동 270회, 구조 활동 751회 등 1000회 넘게 재난 현장에 출동했다. 
특전사 출신인 아들은 마라톤·자전거·수영 등으로 꾸준히 체력 단련을 해왔다고 한다. 담배는 물론 술도 거의 하지 않을 만큼 건강에 신경 썼고, 건장한 청년이었다. 
김범석 소방관의 모습.

김범석 소방관의 모습.

 
6년간 부산 남부소방서에서 근무하다 2011년부터 중앙구조대로 옮겼다. 중앙구조대는 대형 재난이나 특수 구조 활동 등에 출동한다. 위험한 재난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지만, 아들은 중앙구조대를 자원해서 갔다고 한다. 
그랬던 아들이 2013년 8월 훈련을 받던 중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쓰러졌고, 3개월 뒤 혈액육종암이라는 희소암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친가나 외가에 암으로 돌아가신 친척이 한 명도 없고, 어머니는 100세, 아버지는 75세까지 사셨다”며 “집안 대대로 건강 체질인데 아들이 희소암에 걸렸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아들의 암 투병이 시작됐다. 서울 을지대학병원에 입원했던 아들은 병세가 악화하자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 항암 치료를 받았다. 8개월 동안 암과 사투를 벌였지만 2014년 6월 아들은 끝내 사망했다. 당시 아들 나이는 31세. 2년 전 결혼한 아들은 며느리와 갓 돌이 지난 손자를 남겨두고 황망하게 떠났다.  
 
경황이 없는 며느리를 대신해 김씨가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사망에 따른 연금을 지급해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아들의 혈액암이 공무와 직접 연관이 없다며 공상 인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4년 당시 공단 측은 “혈관육종암은 매우 희귀한 질환으로 그 발생원인이 불분명하다.소방관 직종에서 특별히 혈관육종암의 발생 확률이 높다는 통계자료는 없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15년 행정소송에 나섰다고 한다. 그는 “혈액육종암은 지금까지 걸린 사람이 수십 명밖에 되지 않을 만큼 희소암이어서 발병 원인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발병 원인과 소방 업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아들의 마지막 유언을 위해 행정소송에 나섰다”고 말했다. 
생전 암 투병 시절 김범석 소방관이 아들과 함께 앉아 있는 모습.

생전 암 투병 시절 김범석 소방관이 아들과 함께 앉아 있는 모습.

생전 아들은 “동료 소방관들이 병에 걸려 사망하더라도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를 수없이 봐 왔다”며 “안타까운 동료 소방관을 위해서라도 아버지가 싸워달라”고 부탁했었다고 한다.  
실제 암에 걸린 소방공무원은 최근 5년간(2013년~2017년 7월) 151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3년에는 19명의 소방관이 암 판정을 받았으나 2014년 21명, 2015년 29명, 2016년 43명으로 지난 4년간 2.3배나 증가했다. 올해 7월까지 암 판정받은 소방관은 39명에 달한다.  
 
행정소송 1심 판결이 지난 3월 30일 나왔지만,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김씨는 항소했고 오는 12월 2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그는 “국가가 소방관의 죽음을 평가할 때 희소병이라고 따지기보다 소방관이 목숨 걸고 뛰어드는 재난현장의 환경을 먼저 평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현재 한국에서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으려면 신청자가 질병과 업무 사이의 상관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청자에게 불합리한 법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고 김범석 소방관법’을 지난 5월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위험물질 등에 자주 노출되는 재난·재해 현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구호나 수습 업무에 종사한 공무원에게 중증·희소병이 발생한 경우 이를 공무상 질병으로 추정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고 김범석 소방관 아버지인 김정남 씨가 아들 사진을 쓸쓸히 보고 있다. [사진 아버지 김정남 씨]

고 김범석 소방관 아버지인 김정남 씨가 아들 사진을 쓸쓸히 보고 있다. [사진 아버지 김정남 씨]

 
김씨는“아들의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김범석 법’은 꼭 국회를 통과하기 바란다”며 “다른 소방관들의 처우라도 개선된다면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 아들처럼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몸을 다치거나 병에 걸린 소방관들이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고 명예를 되찾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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