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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요리가 즐겁고 행복한 요리사의 성찬…이영라 셰프의 부암동 ‘프렙’

중앙일보 2017.11.10 00:01
부암동 ‘프렙’의 이영라 오너 셰프가 지난달 29일 팝업 행사 때 메인으로 낸 스테이크. 수비드 한 다음 팬에 겉만 살짝 구운 울산 한우 채끝이다. 이런 스타일의 스테이크는 이 셰프의 장기이기도 하고 인기 있는 메뉴다. 고기가 차지고 부드럽게 잘 익었다. 소스에 버무려 웃기로 올린 씨겨자가 고깃결에 섞여 하나씩 씹히는 돌발성도 재미있다.

부암동 ‘프렙’의 이영라 오너 셰프가 지난달 29일 팝업 행사 때 메인으로 낸 스테이크. 수비드 한 다음 팬에 겉만 살짝 구운 울산 한우 채끝이다. 이런 스타일의 스테이크는 이 셰프의 장기이기도 하고 인기 있는 메뉴다. 고기가 차지고 부드럽게 잘 익었다. 소스에 버무려 웃기로 올린 씨겨자가 고깃결에 섞여 하나씩 씹히는 돌발성도 재미있다.

어느 시인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 했지만 이 사람을 요리사로 키운 건 ‘비옥한 토양’인 듯하다. 광주광역시 출신 아버지는 제철에 집에서 가까운 도매시장에 나가 좋은 재료를 사 오고, 해남이 고향인 어머니는 세 딸과 요리하는 걸 좋아했다. 그 음식을 다섯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나눠 먹는 걸 부모님은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겼다. 본인도 일찍이 몰랐지만, 양친의 ‘미식 DNA’를 세 딸 중 혼자만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장 봐서 요리 즐긴 부모 미식DNA 대물림   
학창시절에는 공부 아닌 일에 관심을 쏟기 어려워 학업에 충실히 지냈다. 2008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남가주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로스쿨에서 법학석사(LL.M.) 과정을 마쳤다. 학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무렵 그의 마음을 흔든 건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들판에서 눈 부신 햇살을 받고 자란 싱싱하고 풍성한 농산물과 태평양에서 건져 올린 무궁무진한 해산물이었다. 묻어두었던 요리 본능이 폭발했다. 부모의 유전자는 폭약으로, 넘쳐나는 캘리포니아의 물산은 뇌관이 되어 그를 요리의 세계로 쏘아 올렸다.
  
치즈 명장 김소영(미국명 Soyoung Scanlan·50)씨가 “뭐가 하고 싶은 거야?”라고 물었다. 그는 “요리요”라고 대답했다.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더는 묻지 않았다. 김씨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북쪽 소도시 페탈루마에 있는 세계적 명성의 치즈 공방 '안단테 데어리(Andante Dairy)' 창업주다. 오늘 소개할 주인공의 대학 선배(전공은 다르지만)이기도 하다. 이후로도 ‘나는 왜 요리를 하는가, 이걸로 뭘 이루려 하는가’ 자신에게 여러 번 물었다. 그때마다 답이 될 만한 목표나 목적이 떠오르지 않았다. 요리하는 게 즐거워서, 그걸 하고 있으면 행복하니까, 그 일을 오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프렙’은 이 건물 3층 전체를 사용한다. 뒤로는 백석동천이 병풍을 두르고 앞으로는 인왕산 기차바위 산줄기가 펼쳐진다.

‘프렙’은 이 건물 3층 전체를 사용한다. 뒤로는 백석동천이 병풍을 두르고 앞으로는 인왕산 기차바위 산줄기가 펼쳐진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프렙(Prep·서울 종로구 창의문로12길 2/전화 02-332-2334)’의 오너 셰프 이영라(37)씨 얘기다. (※서울 시내 쪽에서 승용차로 이곳을 가려면 자하문터널로 가지 말고 창의문 고개를 넘어서 가야 주차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

볼로네제 라구.

볼로네제 라구.

3가지 버섯 크림파스타.

3가지 버섯 크림파스타.

생 토마토로 만든 뽀모도로. [사진=이영라 셰프]

생 토마토로 만든 뽀모도로. [사진=이영라 셰프]

‘Prep’은 준비한다는 뜻의 영어 preparation의 줄임 말이다. 주방 용어로 식사시간 ‘준비’를 뜻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음식에 기초한 양식을 내는 비스트로다. 주요 메뉴는 ▷셰프 코스(5만~7만원) ▷스테이크 3가지(3만~4만5000원) ▷부야베스(4만원) ▷부암 치킨(2만8000원) ▷파스타 5가지(1만7000~2만5000원) ▷리소토 2가지(2만2000~2만5000원) ▷샐러드 2가지(1만2000~2만5000원) ▷카르파치오 2가지(1만8000~2만5000원) ▷부암동 피자(2만5000원) 등이다.  

부암동 피자.

부암동 피자.

채끝 스테이크, 우거지 파스타 인기 메뉴

셰프 코스는 예약해야 가능하다. 좌석은 별실 10석 포함해 실내 36석. 문 여는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오후 11시(브레이크 타임 오후 3시~5시 30분). 매주 월요일 쉰다.
 
한우 채끝 스테이크와 부암 치킨, 우거지 파스타 등이 잘 나간다. 한우 스테이크는 수비드(진공 비닐봉지에 음식물을 담아 미지근한 물에 오래 데워 익힘)로 조리한 고기를 팬에서 겉만 살짝 구워 낸다. 고기 성분의 유실을 최소화한 조리법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며 육즙이 고스란히 갇혀 씹을 때마다 배어나는 육미가 진하다.
부암 치킨. [사진=이영라 셰프]

부암 치킨. [사진=이영라 셰프]

부암 치킨은 치킨 롤라드(Roulade) 요리다. 닭을 절여(curing) 분리한 껍질에 살을 발라 김밥처럼 말고 수비드 해 팬에 겉만 살짝 구운 닭고기 요리다. 으깬 감자에 이탈리아 파슬리로 만든 페이스트를 섞고 레몬즙을 많이 넣어 새콤한 맛을 내는 그린 퓌레를 곁들여 낸다.

밀크 리소토.

밀크 리소토.

전복 리소토.

전복 리소토.

우거지 파스타는 우리에게 낯선 음식이지만 외국인들은 즐겁게 먹고 가는 음식이다. 면은 동글고 긴 건면(乾麵)으로 보통 스파게티보다 약간 가는 스파게티니(직경 1.6㎜) 정도를 썼다. 된장으로 버무린 배추 우거지를 면에 올리고 고급 올리브 오일과 파르메산 치즈를 뿌렸다. 접시 바닥에는 국물이 적지 않게 깔렸다. 우거지 삶은 물에 버터와 다진 고기가 들어간 국물인데 맛이 구수하고 부드러웠다. 면과 우거지가 번갈아 씹히는 리듬이 경쾌하다.

팝업 행사를 시작하면서 환영 인사를 하는 이영라·김민성 셰프(왼쪽부터).

팝업 행사를 시작하면서 환영 인사를 하는 이영라·김민성 셰프(왼쪽부터).

지난달 29일 열린 ‘프렙’ 이영라 셰프와 ‘쿠마’ 김민성 셰프의 제휴 팝업 행사의 테이블 세팅. 이 셰프의 코스에는 서양 음식이지만 나무젓가락이 놓인다.

지난달 29일 열린 ‘프렙’ 이영라 셰프와 ‘쿠마’ 김민성 셰프의 제휴 팝업 행사의 테이블 세팅. 이 셰프의 코스에는 서양 음식이지만 나무젓가락이 놓인다.

식재료 호기심 가득…"다루는 데 겁이 없어" 
이 셰프는 지난달 29일 생애의 한 전기가 될 만한 팝업 행사를 했다. ‘여의도 용왕’으로 불리는 ‘쿠마(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69길 7 충무빌딩 2층/전화 02-2645-7222)’ 김민성(43) 셰프와 손잡고 특별한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 발표회다. 점심(20명)·저녁(28명) 두 차례 같은 메뉴로 열렸다. 반응은 좋았다. 이 셰프는 식재료 공부에 목말라하는 사람이고, 김 셰프는 식재료에 관해서는 무모해 보일 만큼 저돌적인 사람이다. 지향이 같은 두 셰프의 의기투합 현장에 구경을 갔다. 6가지 요리로 구성된 점심 자리는 2시간 12분 동안 이어졌다.
케이퍼와 허브를 섞은 생새우 에스카베슈에 직접 구운 치아바타를 함께 낸 전채.

케이퍼와 허브를 섞은 생새우 에스카베슈에 직접 구운 치아바타를 함께 낸 전채.

전채는 치아바타에 생새우 에스카베슈를 올려 오픈 샌드위치처럼 먹는다.

전채는 치아바타에 생새우 에스카베슈를 올려 오픈 샌드위치처럼 먹는다.

①전채는 케이퍼와 허브를 섞은 생새우 에스카베슈(작은 생선을 젓국에 넣어 만든 요리)와 직접 구운 치아바타. 치아바타는 인공첨가물을 쓰지 않고 통밀가루·맥아·물·소금 등 천연 재료만으로 만든 담백한 맛의 이탈리아 빵이다. 생새우는 김 셰프가 강화 교동도의 단골 선장에게 공급받는 귀한 물건이다. 빵 위에 따뜻한 에스카베슈를 얹어서 먹으니 단맛이 약간 센듯했지만, 살짝 데워 습기를 날린 치아바타의 담백한 맛과 잘 어울렸다.
말고기 카르파치오는 제주 목장에서 직접 공급받는 경주마 고기에 채소를 곁들였다.

말고기 카르파치오는 제주 목장에서 직접 공급받는 경주마 고기에 채소를 곁들였다.

말고기 카르파치오 맛은 육회와 비슷했다.

말고기 카르파치오 맛은 육회와 비슷했다.

②두 번째 요리는 말고기 카르파치오(생고기에 가벼운 소스를 뿌려 먹는 이탈리아 요리). ‘쿠마’가 제주 목장에서 직접 공급받는 경주마 고기에 루콜라를 깔고, 샬롯·레몬껍질을 얹어 로즈마리 오일을 둘렀다. 고기에 소금 결정과는 모양이 다른 반투명의 얇은 알갱이들이 드문드문 꽂혀 녹고 있는데 무엇인지 궁금했다. 육회와 샐러드의 경계에서 서 있는 접점의 요리였다. 말고기는 상상 초월이라 할 만큼 연하고 부드러웠다.
수프로 나온 건관자 포타쥬. 통 관자 3쪽을 올리고 셀러리 잎으로 장식했다.

수프로 나온 건관자 포타쥬. 통 관자 3쪽을 올리고 셀러리 잎으로 장식했다.

③세 번째는 건(乾)관자 포타쥬(고기·야채 등을 넣고 걸쭉하게 끓인 수프). 홋카이도 산 마른 관자를 갈아서 셀러리 향을 가미해 수프를 끓이고, 따로 익혀 프라이팬에 굴린 통 관자 3쪽을 올린 위에 셀러리잎으로 장식했다. 마르면서 맛이 농축된 관자가 풀어내는 감칠맛이 입안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수프의 새로운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이트 와인으로 포칭한 생대구. 오렌지를 가미한 해삼 내장 소스(노란색)와 대구 이리(정소) 크림(흰색)이 맛을 더 깊게 해준다.

화이트 와인으로 포칭한 생대구. 오렌지를 가미한 해삼 내장 소스(노란색)와 대구 이리(정소) 크림(흰색)이 맛을 더 깊게 해준다.

↑④네 번째는 화이트 와인으로 포칭(비등점 직전 온도에서 살짝 데침)한 생대구에 오렌지를 가미한 고노와다(해삼 내장) 소스와 대구 이리(정소) 크림을 곁들이고 얇게 저민 영귤을 올렸다. 싱싱한 대구 살이 결마다 일어나 소스와 영귤을 얹어 먹으면 입 안에서 자리가 바뀔 때마다 다른 맛이 느껴진다. 새벽에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사 온 싱싱한 대구 살을 백포도주에 살짝 익히고, 부드럽고 농밀한 재료로 만든 소스를 얹었으니 맛이 깔끔하고 풍성하지 않을 수 없다.
메인 요리로 나온 수비드해 구운 울산 한우 채끝 스테이크와 자연산 전복찜. 접시엔 애호박 퓌레를 깔았다. 스테이크에는 씨겨자 무침, 전복에는 백 다시마를 대패로 밀어 웃기로 올렸다.

메인 요리로 나온 수비드해 구운 울산 한우 채끝 스테이크와 자연산 전복찜. 접시엔 애호박 퓌레를 깔았다. 스테이크에는 씨겨자 무침, 전복에는 백 다시마를 대패로 밀어 웃기로 올렸다.

수비드한 채끝 덩이를 굽는 이영라 셰프.

수비드한 채끝 덩이를 굽는 이영라 셰프.

⑤다섯 번째인 메인 요리는 수비드 한 다음 팬에 겉만 살짝 구운 울산 한우 채끝 스테이크와 자연산 전복찜에 애호박 퓌레를 곁들였다. 스테이크는 고기 맛이나 익힌 정도가 근래 먹어본 것 중 손꼽을 만큼 좋았다. 씨겨자를 소스에 버무려 스테이크에 올렸다. 향이 세지 않은 겨자씨가 고깃결에 섞여 하나씩 씹히는 돌발성이 재미있었다. 자연산 전복은 아기 주먹만 한 살의 크기로 시선을 압도했다. 1㎏ 6~7미 오르는 크기였다. 양식 전복도 이 크기면 값이 꽤 나간다. 교토 산 구로 시치미(黑七味)를 뿌려 찌고, 백 다시마를 대패로 밀어 가니시로 올렸다. 전복의 익힌 정도도 날것을 갓 벗어난 아슬아슬 경계 위에 섰다.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접점을 잘 찾았다. 백 다시마 향이 강해 다른 향을 느끼기 어려웠던 점은 아쉬웠다.
송이버섯과 백봉 오골계 초란 노른자를 올린 생면 탈리올리니. 국물이 있는 파스타다.

송이버섯과 백봉 오골계 초란 노른자를 올린 생면 탈리올리니. 국물이 있는 파스타다.

⑥여섯 번째는 송이버섯과 백봉 오골계 초란 노른자를 올린 생면 탈리올리니(너비가 약간 좁은 납작 면). 옆자리에 음식이 나왔는데 송이 향이 먼저 식탁을 건너왔다. 접시를 받고 보니 파스타인데 국물이 자작하고 면 위에는 저민 송이 6쪽에 누워있다. 국물을 한술 떠보니 동서양 맛의 물길이 흘러와 합쳐지는 듯하다. 중국산 냉동 송이를 녹여 나온 국물을 썼다 한다. 초란 노른자를 터트려 섞은 국물에 면을 적셔 먹어보니 맛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면은 찰기를 잃지 않아 씹을 때 탄력과 질감이 이에 전해질 만큼 잘 삶았다. (※와인·커피·디저트도 훌륭했으나 기사가 너무 길어져 언급하지 않는다.)
 
이 셰프는 “식재료 공부를 시작했는데 학생이 숙제 검사받는 기분으로 음식을 준비했다”고 인사했다. 김 셰프는 “저는 지켜보기만 했고 이 셰프가 다했다. 재료 다루는 데 겁이 없었다. 그게 좋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두 셰프는 이해림 푸드라이터의 소개로 행사 20일 전에 알게 돼 행사를 준비했으니 서로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미국 로스쿨 마치면서 폭발한 '요리 본능'

이 셰프는 2012년 만 32세에 정식 요리공부에 입문한 늦깎이 요리사다. 출발은 늦었지만, 요리사로서 성장은 일취월장했다. 5년만에 업계에서 나름대로 인정받고, 자신의 사업장 기반도 탄탄히 다졌다.  
 
글 쓰는 게 좋아서 1999년 대학 국문과에 갔는데 동기생들 글재주에 놀라고 주눅이 들어 진로를 바꿨다. 다시 입시 준비를 해 2001년 연세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법학자가 되고 싶다 했더니 정신적 우주와도 같던 아버지가 무척 좋아했다. 석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순탄하게 공부를 했다. 2008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한국에서 마친 석사과정을 인정받아 3년 과정을 1년 만에 마쳤다. 2년 유학을 마치고 2009년 결혼했다. 남편은 회사원이다.
 
유학 중 공부는 순탄하게 마쳤지만, 내재했던 ‘요리 욕구’가 뜻하지 않게 분출했다. 캘리포니아의 싱싱하고 풍성하며 다양한 식재료들을 보면서 접어뒀던 성장기 행복감이 그리워졌다. 구들장도 뚫고 올라온다는 죽순처럼 ‘요리하는 행복’이 자꾸 되살아났다.
부모님이 미식가였다. 가락동농수산물시장이 가까운 서울 잠실에서 30년을 살았다. 아버지는 새벽에 장 보러 가는 걸 즐겼다. 장을 봐오면 네 여자가 요리했다. 저녁은 다섯 식구가 다 모여서 식사하는 게 무언의 규칙이었다. 세 자매 중 이 과정을 가장 즐긴 사람은 둘째인 그였다. 초등학교 2~3학년 무렵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가 시장에 갈 때 함께 가겠다 조르고, 많이 따라다녔다. 초등학생 때 이미 가족 식사의 메인 요리를 만들기도 했다. 언니·동생은 먹는 건 좋아했지만, 요리를 즐기지는 않았다.
‘프렙’의 주방 앞 통로 창가를 장식한 서가. 요리와 와인에 관한 책들이 진열돼 있다

‘프렙’의 주방 앞 통로 창가를 장식한 서가. 요리와 와인에 관한 책들이 진열돼 있다

32세에 요리학교 처음 입학 늦깎이 셰프 

좋은 식재료가 많고, 모여서 식사하는 걸 즐기는 문화가 이탈리아 요리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처럼 미식을 즐긴 부모님이 본보기였고 즐겁게 요리하는 힘의 원천이 됐다.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에 매진했지만, 공부 스트레스가 쌓이면 BBC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풀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화면을 보고 있으면 위안이 됐다.
 
남편에게는 결혼 전부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요리”라는 말을 기회 있을 때마다 했다. 남편은 “지금껏 공부한 게 아깝지도 않으냐”며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귀국해서도 요리를 하겠다는 말을 쉽게 꺼낼 수는 없었다. 큰돈 들여 유학을 다녀왔고, 법학을 공부하겠다고 대입 준비를 다시 할 때 좋아하던 아버지의 얼굴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012년 3월 중앙일보에서 광고를 보게 됐다.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숙명 아카데미’에서 신입생을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입학을 결심하고 남편에게 말하자 “법률 쪽 일을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각오가 있으면 하라”고 했다. 서른세 살(한국 나이) 만학이었다. 1년 4학기를 마쳤다. 그곳에서 두 명의 좋은 선생을 만났다. 한 명은 엄격한 원칙주의자였고, 다른 한 명은 요리를 즐기는 타고난 요리사였다. 칭찬을 많이 했고 어떤 편견(인종, 남녀, 나이, 결혼 여부에 따르는)도 없었다. 20년 넘게 갈망하던 일이니 공부가 즐겁기 그지없었다. 학기를 마칠 무렵 프랑스인 강사 중 한 명이 여의도에 새로 생기는 큰 레스토랑의 총주방장으로 가게 됐다. 그가 스태프로 함께 가자고 했다. 바로 취업하는 행운을 잡은 셈이다. 나이 서른넷에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초보인 데다 기혼자가 바로 현장에 자리를 잡기란 흔한 일이 아니다. 거기서 1년을 근무했다. 그 레스토랑은 오래 가지 못했다.
‘프렙’의 테라스에서 건너다본 인왕산 아래 석파랑 주변의 여름. 지난해 8월 사진이다. [사진=이영라 셰프]

‘프렙’의 테라스에서 건너다본 인왕산 아래 석파랑 주변의 여름. 지난해 8월 사진이다. [사진=이영라 셰프]

오후 쉬는 시간의 ‘프렙’ 내부. 블라인드를 걷으면 창 밖으로 인왕산 북쪽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후 쉬는 시간의 ‘프렙’ 내부. 블라인드를 걷으면 창 밖으로 인왕산 북쪽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질녘 ‘프렙’의 창 밖으로 보이는 인왕산 줄기. 왼쪽으로 한양도성과 기차바위가 보이고 자하문터널 북쪽 출입구가 발아래 있다.

해질녘 ‘프렙’의 창 밖으로 보이는 인왕산 줄기. 왼쪽으로 한양도성과 기차바위가 보이고 자하문터널 북쪽 출입구가 발아래 있다.

 
3년 전 '준비' 뜻하는 다이닝 'Prep' 개업   
6개월을 준비해 2014년 9월 파인다이닝(코스 메뉴 위주의 고급식당) ‘Prep’을 차렸다. 과욕이다 싶은 도전이었다. 당시로써는 외진 부암동 신축건물 3층 172㎡(52평/테라스 66㎡ 포함) 전체를 임차했다. 백사실계곡으로 이어지는 추사의 별서(別墅)터 백석동천을 병풍 삼고, 흥선대원군의 별서 석파정을 품은 인왕산 기차바위 능선을 바라보고 있는 자리여서 경치는 빼어난 곳이다. 요리사 동료와 1억씩 투자해 지분 50 대 50 동업으로 시작했다. 보증금 1억원, 월세 500만원에 관리비가 월 100만원이었다. 새 건물이라 권리금은 없었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물건 중 돈이 될 만한 것은 모조리 처분했다. 남편에게 빌리고, 은행 대출도 받았다. 사람들은 처음 시작하면서 어떻게 저런 레스토랑을 차렸나, 부자인가 보다 하는 눈초리로 봤지만 실은 아주 많은 돈이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사업은 대성공이라 할 만큼 순항했다. 1년 만에 은행 대출 70~80%를 갚았고 전체적으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 동업자가 수완이 좋았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명한 ‘먹방’ 프로그램에 나가면서 이름이 빨리 알려졌다.
 
초기 음식은 한국 색이 섞인 서양식 코스 중심이었다. 최근 한식이 고급스럽고 섬세(fine)하게 가는 것과 반대로 프렙은 크고 거칠게(rough) 했다. 마늘장아찌를 가니시로 올리는가 하면 600g 스테이크, 1㎏ 삼겹살, 큰 쟁반 해산물 모둠(platter) 같은 걸 내놨다. 모임 때 편안한 분위기와 여럿이 먹기 좋은 음식들을 했다. 주변에 교수들이 많이 사는데 식사하러 왔다가 보고서 학회나 회의 끝나고 뒤풀이하러 많이 왔다. 그 바람에 한동안 대관 파티 잦은 양식당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손님 맞을 준비를 마친 별실(VIP룸). 8~10인이 들어갈 수 있다. 창 밖 언덕은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손님 맞을 준비를 마친 별실(VIP룸). 8~10인이 들어갈 수 있다. 창 밖 언덕은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별실의 안쪽 벽에는 커다란 거울 2개를 걸어뒀다. 창을 등지고 앉은 사람도 창 밖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장치다.

별실의 안쪽 벽에는 커다란 거울 2개를 걸어뒀다. 창을 등지고 앉은 사람도 창 밖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장치다.

지난 4월 10일 목련이 활짝 핀 별실 창 밖 언덕의 봄 풍경. [사진=이영라 셰프]

지난 4월 10일 목련이 활짝 핀 별실 창 밖 언덕의 봄 풍경. [사진=이영라 셰프]

 
편안한 프렌치 추구…상엔 나무젓가락도
개업 16개월만인 2015년 12월 31일 동업자 지분 50%를 모두 인수해 지난해 1월 1일 새 출발을 했다. 음식점을 홀로 이끌어가게 되니 자연히 자신의 스타일이 더 선명해졌다. 서울식 프렌치를 표방하고 추구했다. 본토보다 짠맛은 줄이고 경쾌(light)하면서 한국의 제철 식재료를 많이 활용하는 음식, 낯설거나 어렵지 않은 프렌치를 하려고 했다. 격식 안 갖추고(casual)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코스요리, 어른들 드시기에 거북하지 않은 양식을 마음에 두고 음식을 준비했다. 그래서 ‘프렙’의 코스요리 식탁에는 포크·나이프와 함께 나무젓가락이 놓인다.
  
별실(VIP룸)도 가족식사나 소규모(8~10인) 모임 분위기에 맞게 리모델링했다. 안쪽 벽에 좌우로 긴 거울 2개를 달았다. 창밖 언덕으로 사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창을 등지고 앉은 사람도 풍경을 보면서 식사할 수 있게 하려는 배려였다.  
 
2016년 연말 촛불시위는 역사적으로는 올바른 일이지만 ‘프렙’에는 고통의 세월이었다. 평일 나흘(화~금)보다 주말 이틀에 손님이 더 많은데 주말마다 경찰은 자하문터널과 창의문길을 봉쇄했다. 시내로부터 완전히 고립됐다. 홍제동이나 정릉으로 돌아 세검정로를 거쳐야 진입이 가능했다. 매출은 반 토막 났다. 평일에도 거기는 막힌다는 인식이 퍼졌다. 6개월 동안 임대료·관리비 내기가 벅찰 정도였다. 너무 힘이 들어 건물주에게 두 달만 임대료를 10% 깎아 달라고 읍소했다.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남의 사정 봐줄 처지가 아니다”며 단칼에 잘랐다. 입지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먹었다. 
 
문 닫고 공부하려다 일단 1년 더 하기로

그런 와중에 지난 2월에는 정신적 우주이자 기댈 언덕이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상실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자존감의 근원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건물 임차계약 만기가 8월 15일이었다. 연장하지 않고 ‘프렙’ 문을 닫기로 했다. 3월에 건물주에게 통보했다.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으로 식재료 공부를 체계적으로 해 마음속에 아버지처럼 든든한 기둥을 세우고 자신감을 회복하려 했다. 홀로 서려면 단단해져야 하니까 1년간 전국 농부·어부와 음식의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내 안에 기둥을 다시 세우는 시간을 가지려 했다. 늦깎이로 입문해 여러 업장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외국의 큰 레스토랑 스타주(stagiaire; 연수생)로 일도 해보고 싶었다. 미국·프랑스 여러 곳에 1개월만 해볼 수 없는지 메일을 보내 몇 곳에서 승낙 회신도 받았다. 1년 후엔 장소를 옮겨서 작지만 자기 색깔을 온전히 담은 레스토랑을 할 생각이었다.
수비드한 항정살 스테이크를 굽고 있는 조현찬 셰프. ‘프렙’ 운영을 이원화하면서 단품 음식을 주로 맡도록 영입한 젊은 셰프다.

수비드한 항정살 스테이크를 굽고 있는 조현찬 셰프. ‘프렙’ 운영을 이원화하면서 단품 음식을 주로 맡도록 영입한 젊은 셰프다.

수비드한 항정살 스테이크.

수비드한 항정살 스테이크.

구상을 얘기하자 지인들이 이 소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7월 31일까지만 손님을 받고 남은 15일 동안은 사은 행사로 단골과 지인들 초대해 마음껏 먹이고 퍼주려 했다. 쓰던 기물도 아는 셰프들에게 싸게 팔았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너무 아깝다고 안타까워했다. 나가려면 시설을 철거하고 원상회복을 해줘야 하므로 3년밖에 쓰지 않은 시설을 폐기하면서 돈까지 들여야 하니 아까웠던 것이다. 청산 협의를 해야 할 건물주는 연락해도 만나주지 않았다. 계약만료 하루 전인 8월 14일 주인이 왔다. “3월에 중개사무소 10곳에 내놨는데 5개월 동안 현장을 보겠다는 연락이 한 건도 안 왔다. 월세 한 번 밀린 적도 없고, 지난번 어렵다고 할 때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계속 있어라. 1년 연장하고 월세를 100만원씩 깎아주겠다. 나가려면 원상회복 비용 1000만원을 내라”고 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고는 폐업 계획을 철회했다.

 
대신 운영 시스템을 바꾸기로 했다. 파인다이닝에서 품격 있는 비스트로(서민적 분위기의 편한 식당) 수준으로 문턱을 낮추고 음식을 이원화했다. 일반 운영은 젊은 셰프를 뽑아서 맡겼다. 건물 월세만 떠안는 조건이다. 젊은 셰프에게 간섭 안 받고 자신의 요리 세계를 맘껏 펼쳐볼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영입한 셰프는 조현찬(25)씨로 한때 배우 활동도 했고, 연희동 ‘몽고네’와 한남동 ‘마렘마’ 주방을 거쳤다. 그를 뽑은 이유를 “맛을 만들어내는 자세가 좋았다. 장난 안 치고 식재료 특성을 잘 살려내는 솜씨가 눈에 띄었다.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일로 하는지 즐겁게 음식을 만드는지 알 수 있다. 즐거움이 들어간 요리라야 손님도 즐겁게 먹지 않을까”라고 설명했다.
 
금~일 3일 예약된 '셰프 코스'만 맡기로
이 셰프는 자신의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단골들을 위해 금·토·일 3일만 나와 별실에서 예약 손님에게 주문형(customize) ‘셰프 코스’ 요리만 낼 예정이다. 주문형 코스는 손님의 취향과 원하는 음식을 물어보고 매번 다르게 코스를 구성한다. 남는 시간에는 해외 레스토랑 주방 연수도 가고 계획했던 식재료 공부를 할 예정이다. 팝업 행사는 이 같은 ‘프렙’의 시즌2를 알리려고 기획했다. 
지난달 31일 ‘셰프 코스’를 예약하고 찾아갔더니 쉬는 시간에 노트에 붓방아를 찧으며 음식 구성을 고민하고 있었다.

지난달 31일 ‘셰프 코스’를 예약하고 찾아갔더니 쉬는 시간에 노트에 붓방아를 찧으며 음식 구성을 고민하고 있었다.

 ‘셰프 코스’의 테이블 세팅. 서울식 프렌치를 추구한다는 그의 스타일을 상징하듯 나무젓가락이 놓여있다.

‘셰프 코스’의 테이블 세팅. 서울식 프렌치를 추구한다는 그의 스타일을 상징하듯 나무젓가락이 놓여있다.

셰프 코스를 예약하고 지난달 31일 저녁에 그를 찾아갔다. 팝업 음식이 아니라 그의 평소 음식을 먹어보고 얘기도 들어보려고 좀 일찍 도착했다. 그는 식탁에 앉아 노트에 뭔가 적고 있었다. 내용을 보니 내가 주문한 저녁 식사 코스를 짜는 중이었다. 그는 “요리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원재료 맛을 해치지 않고 적당한 산도(酸度·신맛)를 지배하는 것이다. 음식 맛의 균형이 신맛에서 나온다”고 자신의 요리를 설명했다. 1인 5만원 코스는 5가지 음식으로 구성했다.

직접 훈연한 연어 브루스케타.

직접 훈연한 연어 브루스케타.

①전채(前菜)로 연어 브루스케타(bruschetta). 바삭하게 구운 자가 제빵 치아바타에 직접 훈연한 연어를 서너 점 올리고 말리부 크림(말리부 술에 사우어 크림을 섞은)을 얹은 다음 핑크 페퍼·레디시·루콜라로 장식했다. 와인은 미국산 웬티 모닝 포그 샤르도네 2016년산 화이트 와인. 프랑스 문화에서 와인은 음식의 일부라서 따로 공부했다는 그의 ‘셰프 코스’에는 늘 와인이 함께 한다. 와인은 양념이자 국물 재료이고 입가심(cleanser) 역할도 한다. 식사 중에 먹으면 요리가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고, 식사를 대화하면서 천천히 하도록 유도하고, 소화도 돕는다고 그는 생각한다.

지중해식 해산물 스튜인 부야베스.

지중해식 해산물 스튜인 부야베스.

조개류가 많이 들어간 부야베스 국물은 양이 넉넉하고, 매운 고추가 들어가 맛이 칼칼하고 시원했다

조개류가 많이 들어간 부야베스 국물은 양이 넉넉하고, 매운 고추가 들어가 맛이 칼칼하고 시원했다

부야베스 국물에 적셔 먹으라며 내준 직접 구운 치아바타.

부야베스 국물에 적셔 먹으라며 내준 직접 구운 치아바타.

②수프는 지중해식 해산물 스튜인 부야베스(bouillabaisse)였다. 홍합·모시조개·바지락·새우살과 껍질을 벗긴 대추토마토, 애호박이 들어갔다. 레몬 슬라이스 한 쪽도 올렸다. 서양 요리로는 드물게 넉넉한 국물은 진한 조개 맛과 버터 향이 어우러지면서 매운 고추의 칼칼함도 있어 미각 구조가 다채로웠다. 해장음식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치아바타를 따끈한 국물에 적셔 먹으니 해산물 맛이 진하게 밴 빵이 부드럽게 입 안에서 녹아 없어졌다. 와인은 앞의 화이트 와인이 이어졌다.  

메인으로 나온 양갈비 스테이크는 방아잎 퓌레를 바닥에 깔고 파김치로 만든 처트니와 적양배추 퐁드르를 곁들였다.

메인으로 나온 양갈비 스테이크는 방아잎 퓌레를 바닥에 깔고 파김치로 만든 처트니와 적양배추 퐁드르를 곁들였다.

양갈비는 수비드 한 다음 겉만 살짝 익혀서 육질이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양갈비는 수비드 한 다음 겉만 살짝 익혀서 육질이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③메인은 양갈비 스테이크에 방아잎 퓌레를 깔고, 파김치로 만든 처트니(과일이나 채소에 식초·향신료를 넣어 만든 인도식 소스)와 적양배추 퐁드르(야채를 약한 불에 천천히 녹은 것처럼 보이게 볶음)를 곁들였다. 와인은 남프랑스 코르비에르 지역의 앙드레 그와쇼 2012년산 레드 와인으로 바꿨다. 처음 맛보는 방아잎 퓌레는 향이 풍부해 서양 민트보다 독특하고 새로운 맛을 보여줬다. 수비드 해서 구운 양갈비는 속이 촉촉하면서 미디엄 레어로 잘 익혀, 양고기 냄새 트라우마가 있는 내 입에도 거슬리지 않았다.
덤 요리로 나온 라구 소스 가지 구이.

덤 요리로 나온 라구 소스 가지 구이.

라구 소스를 헤치자 속에서 구운 가지가 나왔다.

라구 소스를 헤치자 속에서 구운 가지가 나왔다.

④덤 요리로 라구 소스를 얹은 가지 구이가 나왔다. 계획표에 없던 음식이다. 내가 먹는 걸 보니 음식량이 좀 모자랄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가지를 동그랗게 통썰기해 살짝 굽고 토마토를 곁들인 라구 소스를 넉넉히 올렸다. 맛이 진해 안주로 맞겠다.
마무리 식사로 나온 우거지 파스타. 실험을 거듭해 레시피를 7번이나 개정한 ‘프렙’의 스테디 셀러 메뉴다.

마무리 식사로 나온 우거지 파스타. 실험을 거듭해 레시피를 7번이나 개정한 ‘프렙’의 스테디 셀러 메뉴다.

⑤마무리 식사로 우거지 파스타가 나왔다. 직접 구상해 레시피를 작성하고 일곱 번이나 고쳐 현재에 이른 ‘프렙’의 야심작이자 스테디셀러 메뉴다. 굵은 면도 써보고 생면도 써봤다. 실험을 거듭해 스파게티니 굵기로 정했다. 무시래기도 써봤으나 배추 우거지 맛이 더 시원했다. 레몬즙도 뿌렸다. ‘신맛을 지배하는 요리’를 강조한 이 셰프는 “레몬이 된장의 쿰쿰함을 없애주더라”고 했다. 파스타 양이 적지 않았는데 단품으로 나갈 때의 절반이라고 했다.
디저트로 나온 티라미수와 산딸기 크림으로 속을 채운 떡.

디저트로 나온 티라미수와 산딸기 크림으로 속을 채운 떡.

⑥디저트는 커피가 나온 다음, 쿠키에 밤톨 크기로 나눠 올리고 꽃잎 장식을 한 티라미수와 산딸기 크림으로 속을 채운 떡이 나왔다.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프렙’ 창 밖으로 보이는 인왕산 야경.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프렙’ 창 밖으로 보이는 인왕산 야경.

"스펙으로 화제 되는 것 싫어…나는 요리사" 

두 차례에 걸쳐 그의 음식 11가지를 먹으면서, 조금 엉뚱하지만 여러 과장으로 전개되는 탈춤이나 마당놀이 관객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음식은 저마다 흥을 끌어올리려고 상황에 따라 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보고, 관객과 밀고 당기는 놀이꾼·재담꾼의 춤사위로 다가왔다. 총연출자 이 셰프는 “명문대와 미국 로스쿨 나온 ‘엄친딸’로 알려지는 것, 그렇게 규정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건 부차적 스토리일 뿐 나는 요리사다. 요리가 즐거워 오래도록 하고 싶다. 그걸로 부각되고 싶다”고 자신을 규정했다.  
상투적이지만 공자님 말씀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知之者不如好之者), 좋아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好之者不如樂之者).” <논어 옹야편(雍也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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