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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랭지 배추 대신 고랭지 사과…따뜻해진 날씨에 과일 산지 북상

중앙일보 2017.11.08 17:19
맛있고 값이 싼 과일을 구매해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일을 하는 김교진(41)씨는 요즘 일주일에 4일 강원도를 찾는다. 제철을 맞은 사과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기온 높아지며 제주도 특산품인 한라봉, 충북에서도 생산
기온 계속 높아지면 재배 면적, 생산량 줄고 가격 오를 수 있어
"새로운 품종이나 재배법 개발 서둘러야"

3년 전만 해도 이맘때엔 전통적인 사과 산지로 꼽히는 대구나 충북 예산 일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최근 날씨가 더워지면서 김씨가 찾는 지역도 달라졌다. 평야 지대인 이들 지역이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여름 열대야에 시달리면서 사과 생산량이 줄고 당도도 이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반면 사과를 재배하기에 날씨가 추웠던 강원도 고랭지에서 생산 물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김씨는 “사과는 햇볕이 쨍쨍한 낮에 생장 활동을 하고 서늘한 밤에 당도가 높아져 일교차가 중요하다”며 “고랭지 사과의 육질이 단단하고 아삭한 식감과 높은 당도를 함유할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기온 상승으로 국내 과일 지도도 바뀌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국내 대표 과일 산지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어서다. ‘사과=대구’, ‘감귤=제주도’, ‘복숭아=경산’ 같은 전통적인 공식이 깨지고 있다. 사과를 비롯해 배‧복숭아‧포도‧단감‧감귤 등이 대표적이다.  
 
 
지국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남쪽에 몰려 있던 과일 산지가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고랭지 배추 대신 사과를 키우는 강원도 정선의 한 사과 농장.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남쪽에 몰려 있던 과일 산지가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고랭지 배추 대신 사과를 키우는 강원도 정선의 한 사과 농장.

대구, 충남 예산, 경북 안동 같은 분지 지대에서 주로 재배됐던 사과는 해발 500m가 넘는 강원도 고랭지로 터를 옮기고 있다. 지난 10년 새 평창‧영월‧정선 일대 사과농장이 크게 늘었다. 정선 일대에만 현재 사과 농가 130여 곳이 모여 있다. 10년 전엔 1곳에 불과했다.
 
이들 농가는 이전에는 배추를 재배했던 곳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강원도 사과 생산량은 10년 새 3.2배 증가했다. 2006년 1762t에서 지난해 5775t으로 늘었다. 반면 평야가 많은 경기도는 5060t에서 2234t으로 반 토막이다. 충청남도도 15% 감소했다. 정선군 임계면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배선철(62)씨는 “오랫동안 고랭지 배추 농사를 짓다가 기온이 높아지면서 배추에 병충해가 생기고 잘 자라지 않아서 사과로 바꿨다”며 “이전에는 ‘강원도에서 무슨 사과냐 ’던 사람들이 구매하겠다며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고랭지는 지역 특성상 여름에 열대야가 없고 평야 지대보다 기온이 낮다. 지대가 높아 낮에는 햇볕이 강하지만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일교차가 크다. 배씨는 “과일은 기후 변화에 민감해 날씨에 따라 생산량과 품질 차이가 크다"며 "여름에 열대야가 이어지면 당도가 높아질 시간이 없어 맛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특산품으로 여겨졌던 감귤도 북상하고 있다. 대표적인 아열대 과일인 감귤은 남해안 일대가 재배 한계선이었다. 하지만 최근 충북 충주, 강원도 해안가까지 재배 면적이 넓어졌다. 충주에선 해당 지역에서 재배하는 한라봉에 지역 관광 명소인 '탄금대'를 활용한 '탄금향'이라는 이름을 붙여 특산물로 판매하고 있다. 열대과일인 패션푸르츠도 제주도만 재배되다가 경북 김천·구미에 이어 경기도 평택에서도 재배된다. 경북 경산이 주요 산지였던 복숭아는 요즘 강원도 춘천에서도 자란다. 
 
대형마트도 새로운 산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마트는 이달 9일부터 강원도 사과 판매에 나선다. 아예 '청정 강원 임계 사과'를 내세웠다. 그간은 부사·홍옥처럼 사과 품종을 내세워 판매했다. 가격은 10% 정도 비싸다. 아직 다른 지역보다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이 많지 않아서다. 청정 강원 임계 사과가격은 1.5㎏당 8980원(4~6개)이다. 다른 지역의 사과는 1.8㎏에 8800원까지 받는다.
 
수요자 입장에선 당장 변화가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온 상승에 대한 우려가 크다. 결국 과일 재배 면적이 줄어들고 생산량이 감소하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00년 동안 세계 평균 기온은 0.7도 올랐다. 한국은 속도가 더 빨라 세계 평균의 배 수준인 1.5도 상승했다. 
 
과일 맛을 좌우하는 여름철 폭염도 심해졌다. 10년 전 대비 폭염 일수가 두 배 늘었다. 2005~2007년 7~8월에 낮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서울 기준)인 날은 22일이었지만, 2015~2017년엔 40일로 늘었다. 농촌진흥청은 2100년까지 한국 평균 기온이 5.7도 높아질 것으로 내다본다. 
 
박교선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소장은 "기후 변화에 따른 품종이나 새로운 재배법 개발이 필요하다"며 "수출이나 가공품 개발 등으로 소비를 촉진해 생산이 지속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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