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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침묵' 정지우 감독이 밝히는 반전 결말의 의미는?

중앙일보 2017.11.08 00:00
정지우 감독 / 사진=라희찬( STUDIO706)

정지우 감독 / 사진=라희찬( STUDIO706)

[매거진M] 모든 것을 가진 한 남자가 있다. 자수성가해 큰 부를 거머쥐었고, 느지막이 사랑까지 찾았다. 하지만 갑작스런 사고로 그 소중한 연인이 죽었다. 유력한 용의자는 남자의 딸. 그는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홍콩 영화 ‘침묵의 목격자’(2013, 비행 감독)을 리메이크한 ‘침묵’(11월 2일 개봉)은 재력가 임태산(최민식)이 처한 절체절명의 사건을 그린 법정 스릴러다. 정지우(49) 감독은 ‘해피엔드’(1999) 이후 18년 만에 최민식과 다시 합을 맞췄다. 그는 삶을 송두리째 잃은 남자의 이야기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침묵' 정지우 감독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침묵'

'침묵'

━범죄 스릴러 경향이 강한 원작과는 달리, ‘침묵’은 태산의 심리를 깊게 파고들더라.
“처음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가 연출을 제안했을 때, ‘눈에 보이는 사실이 다가 아니다’라는 원작의 메시지에 끌렸다. 우리는 늘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사니까. 이를 핵심 아이디어로 두고 태산에게 초점을 맞춰 전체 이야기를 다시 설계했다. 부를 세습받은 재벌 외에 자기 힘으로 사업을 일군 중년 재력가를 조사해보니, 이들이 집착하는 건 두 가지더라. 바로 진실한 사랑과 자식이다. 젊은 시절 돈을 버느라 사랑하지 못했다는 박탈감과 그렇게 번 돈을 자식에게 잘 상속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최민식의 농익은 연기에 그러한 현실적 요소가 더해져 태산이 탄생한 건가.
“맞다. 최 선배님에게 취재한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차린 밥상을 선배님이 잘 드시고 소화하시도록. ‘이렇게 연기해주세요’라고 할 순 없으니까(웃음). 드라마 연출에선 간접적인 연기 조율이 더 좋은 영화를 만든다고 믿는다. 배우와 목표를 충분히 공유한 뒤, 그들 스스로 캐릭터와 교감하길 기다리는 것이다.”
 
'침묵'

'침묵'

━“이 영화의 장르는 최민식”이라고 말했다. 의미심장한 농담처럼 들리던데.
“시나리오 쓸 때부터 제작사 식구에게 한 말이다. 이 영화를 장르의 규칙이 아닌 태산에 초점을 맞춰 풀면, 관객에겐 일견 낯설 수도 있지만 더 흥미로울 것 같았다. ‘침묵’은 임태산이 다른 인물을 만나며 진행되는, 로드 무비라 해도 무방하다. 사건이 벌어진 후 태산은 변호사 최희정(박신혜), 검사 동성식(박해준), 결정적 단서를 쥔 김동명(류준열) 등을 만난다. 그런데 이들 중 몇몇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산에게 욕을 한다. 이런 모욕을 참아가며 그는 어디로 향하는가. 이게 중요한 기둥이었다.”
 
━흥미롭게도 태산은 그들에게 똑같이 화내지 않는다.
“화를 내봤자 별로 득 될 게 없음을 잘 아는 실리주의자여서다. 희정이 자신을 속였다며 사과를 요구할 때도 ‘거 돈 드는 것도 아닌데 하지요. 미안합니다’라고 하지 않나.”
 
'침묵'

'침묵'

━이 영화의 진짜 반전은 범인의 정체가 아니라, 돈밖에 모르는 태산이 그토록 헌신적인 아버지였다는 것이다. 동시에 딸 미라(이수경)의 죄를 덮으려 자기 삶을 포기하는 그의 모습 때문에 반전이 주는 극적 쾌감은 다소 누그러지는 인상이다.
“‘나빠 보이는 인간도 자세히 보면 착하다’는 단편적인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다. 모든 걸 이룬 듯한 태산은 사실 딸과의 관계에선 완전히 실패했고, 그 때문에 사랑도 황망하게 잃었다. 이를 깨닫고 돈을 포기하며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는 것이다. 반전의 과정 자체보다는 결과가 주는 여운에 방점을 찍고 싶었다.”
 
━같은 이유에서 진실을 좇으려는 성실한 희정과 성식마저 태산에 의해 이용당하는 듯 보인다.
“태산의 로드 무비 구조니까. 길에서 만난 주변 인물이 힘을 합쳐 주인공의 행선지를 바꿀 수는 없다. 희정과 성식이 치밀한 두뇌싸움을 벌이면, 또 다른 전환점과 반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관객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조를 식상하게 여길 것 같더라. 여느 미스터리영화와는 결이 다르길 바랐다.”
 
'침묵'

'침묵'

━영화를 다 봐도 태산의 연인인 가수 유나(이하늬)의 존재는 아리송하다. 그는 정말 태산을 사랑했을까.
“그런 모호함을 명백히 의도했다. 태산에게 그녀는 구원의 여인이지만, 진짜 유나는 그게 다가 아니다. 오랫동안 연예계에서 살아남으며 쌓인 피로도 있을 테고, 자신을 아니꼽게 여기는 미라와 잘 지내지 못해 고민도 있을 테다. 왜 그녀를 선하거나 악한 존재로 규정해야 할까. 사실 인간에겐 다양한 모습이 공존하는데 말이다. 유나 외에 다른 인물도 각자의 사연이 현실적으로 나타나도록 공을 들였다.”
 
━태산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라면을 먹고 있는 성식을 찾아오는 대목처럼?
“맞다. 재력가와 검사가 만난다면, 장소가 골프장이나 고급 일식집일 것 같잖아. 하지만 성식은 이런 만남에 쉽게 응하지 않는, 즉 돈에 휘청대지 않는 사람이다. 또 편의점이란 공간은 끼니를 대충 때우며 바쁘게 일하는 그의 성품을 보여줄 것 같았다. 태산과 유나가 한강에서 요트를 타다 컵라면을 먹는 대목도 비슷하다. 서울을 새로운 풍광으로 담아내면서, 호화롭지만 소박하게 마음을 나누는 두 사람을 보여줄 공간으로 요트를 활용했다.”
 
'침묵'

'침묵'

━재판장과 희정의 친구 로백이 여성인 점도 눈길을 끈다.
“영화의 중심이 태산이라 법정의 최고 권력자인 판사까지 남성으로 설정하는 게 꺼려지더라. 위엄과 카리스마가 느껴지도록 관록 있는 연극배우 김수진을 캐스팅했다. 로백은 희정과 기질은 다르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처럼 보이길 바랐다. 박신혜와 함께 여러 오디션을 보다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해 온 이예은을 캐스팅했다. 둘 다 무척 잘해줘서 고마웠다.”
 
━태산이 태국에서 찾은 미라의 대역을 이수경이 직접 연기했다. 의도가 있었나.
“ CCTV 영상에 누가 봐도 미라와 너무 다른 여성이나오면 사실적이지 않을 것 같았다. 이수경 배우가 가짜 코를 붙이고 눈 분장을 했는데, 몸의 움직임만으로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연기하더라. 정말 재능 있는 배우임을 새삼 느꼈다.”
 
정지우 감독 / 사진=라희찬( STUDIO706)

정지우 감독 / 사진=라희찬( STUDIO706)

━‘침묵’은 결국 아버지의 이야기다. 중년 남성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점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듯한데.
“현재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성차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이 영화가 중년 남성의 마음을 대변한다는 지적은 시대적 프레임에서 나온 것이라 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여성 인물을 도구로 활용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프레임을 넘어서 우리의 아버지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중년 남성을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이 영화를 ‘4등’과 연결시켜 보면, 부모 자식 관계라는 공통적인 주제가 있다.
“의도한 건 아닌데, 내 무의식에 있는 주제 같다. 이건 사회생활을 하며 맞닥뜨리는 고민과는 차원이 다른 고민이다. 흔히 자식을 낳으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던데, 나는 더 이해가 안 된다(웃음). ‘4등’이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영화라면, ‘침묵’은 와해된 부녀 관계의 문제가 자신에게 있었음을 인정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침묵’을 만들며 지키려 한 태도가 있다. 태산이 참회하는 것을 생색내거나 과시하듯 그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면회 온 미라에게 태산은 ‘너 때문에 아버지가 이렇게 됐어, 나한테 잘 해’라고 하지 않고 ‘술 그만 먹어’라고만 한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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