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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정신병? 낮과 밤 바뀌었을 뿐인데

중앙일보 2017.11.05 06:00 경제 8면 지면보기
초고층 빌딩들이 숲을 이룬 서울 테헤란로 주변. 왕복 8차선 대로는 밤낮으로 차들이 붐빈다. [중앙포토]

초고층 빌딩들이 숲을 이룬 서울 테헤란로 주변. 왕복 8차선 대로는 밤낮으로 차들이 붐빈다. [중앙포토]

 
고대보다 현대에 와서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무엇이 있을까?

 
일자리가 줄면서 생존경쟁에 내몰리는 상황, 미세먼지나 화학제품으로 인한 건강 위협, 오염된 먹거리, 피상적이거나 경쟁적인 인간관계 등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현대인의 스트레스 요인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새롭게 등장한 요인으로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들 수 있다. 전기가 발명된 후 인간은 밤에도 불편없이 활동할 수 있게 됐고, 점점 야간활동을 장려하는 듯한 사회가 됐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가게도 계속 늘어나고,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라는 신조어가 널리 사용되는 것을 보면 현대인의 야행성향은 '밤낮없이 소비하게 하라'는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친 결과이기도 하다.  
 
밤새도록 유흥을 즐기거나 각종 영상물과 게임에 몰두해 수면 리듬을 놓친 경험은 이제 특정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현대인의 생활 패턴은 신체와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면역기능이 감퇴해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리고, 우울증을 동반한 정신질환을 초래하기도 한다.  
 
 
불금을 보내는 클러버들. [중앙포토]

불금을 보내는 클러버들. [중앙포토]

 
인류는 몇 만 년 전부터 해가 뜨면 깨어나 활동하고, 해가 지면 잠을 자는 방식으로 다음날 활동할 에너지를 보충했다. 이는 낮과 밤으로 구성된 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의 생체 사이클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생체 시계의 비밀을 올해 노벨의학상 수상자들이 분자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낮과 밤의 주기에 따라 몸의 변화가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24시간 주기 리듬'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밝혀낸 것이다. 
 
 
생체 시계의 비밀  
 
이러한 유전자를 통해 인체는 밤 시간은 생체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세포 내에 축적하고, 낮 시간은 축적한 단백질을 분해해 유용하게 사용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이는 곧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휴식을 취하는 24시간 주기 리듬을 따라 살아야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생체리듬에 따라 우리는 최소한 밤 12시에서 4시 사이에는 깊은 수면을 취하고 아침 6시경에는 깨어나 활동하는 것이 좋다. 새벽 4시까지 깨어있다 늦게 잠들어 오전 내내 수면을 취했다고  하루 8시간 권장 수면을 충족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밤 12시에서 4시 사이에는 깊은 수면을 취하고 아침 6시경에는 깨어나 활동하는 것이 좋다. [중앙포토]

밤 12시에서 4시 사이에는 깊은 수면을 취하고 아침 6시경에는 깨어나 활동하는 것이 좋다. [중앙포토]

 
수면시간을 충분히 확보한다 해도 밤에 활동하고 낮 동안 자게 되면 생체리듬을 역행해 신체 질환이나 신경증에 노출 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실을 약 2000년 전 고대인들이 이미 밝혀 놓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치료에 적용하고 있는 고대자연치유의학서인 『상한론』에는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이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상한론』에는 '陰陽易差後勞復病'이라는 구절이 있다. 음(陰)은 밤을, 양(陽)은 낮을 의미한다. 역(易)은 뒤바뀐다는 뜻으로, 이는 곧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 오래된 이후에(差後) '노복'(勞復)이라는 병이 온다는 것이다. 피로를 반복해서 느낀다는 것을 그 당시 언어로 적확하게 쓰고 있다. 더구나 이를 일곱 가지 질병분류 패턴의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올해 미 과학자 세 명이 과학적으로 규명한 24시간 생체시계의 비밀을 고대인들도 이미 통찰했던 것이다. 
 
필자는 올해의 노벨의학상 내용을 접하고 『상한론』에도 노벨상의 연구소재가 될 수 있는 아이템들이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과 여건만 잘 만들어진다면 고대인들의 통찰에서 여러 질병의 발생기전을 알아낼 수 있으리란 강한 기대감이 든다.  
 
실제로 필자는 임상에서 낮과 밤의 뒤바뀜으로 인해 고통 받는 환자를 수없이 봐왔다. 문제는 증상은 있으나 뚜렷한 원인을 알지 못해 적절하지 않은 치료를 받아온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환자 스스로도 낮과 밤이 바뀐 생활로 인한 병폐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현대의학에서 이러한 상태를 질병의 원인으로 여기지 않아 정신질환으로 오인 받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례가 많았다. 특히 야간 교대근무를 오래 하거나 외국에서 오래 지내다 귀국한 후 시차를 극복하지 못해 생긴 몸의 변화를 정신질환으로 진단받은 사례들 또한 빈번하다.  
 
 
근무교대하는 소방관들. [서울=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근무교대하는 소방관들. [서울=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여기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울증으로 진단 받은 47세 남자 환자였다. 병의 내력을 확인해보았다. 그는 1993년부터 만 2년 동안 군대에서 야간경비근무를 했다. 제대 후 2년간은 카피라이터로 주로 밤에 일을 하면서 공황장애를 앓았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10년 동안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밤에 작업하고 낮에 자는 생활 패턴을 유지했다. 그러다 2015년 8월 귀국해 회사원으로 취직했다. 정리하면 약 15년 동안 낮밤이 바뀐 생활을 한 후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생활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귀국 후 첫 2년 동안은 아침에 일어나기 너무 힘들고 겨우 출근해 온종일 깨질듯 한 두통에 시달리며 정신이 멍한 상태가 지속됐다. 그러다 오후 4시가 되면 묘하게도 머리가 맑아지고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곧 근무가 마감되는 때였다. 백방으로 알아보며 병원을 다녔지만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늘 무기력하고 정신을 차릴 수 없던 환자는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했지만 점점 증상은 악화됐다고 한다. 본인도, 주변 사람들도, 의사도 낮과 밤이 뒤바뀐 것이 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우울증도 뭣도 아닌 타고난 생체주기가 깨진 데서 문제가 생긴 것인데 말이다.
 
 
우울증.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우울증.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는 바로 『상한론』에서 칠병의 하나로 언급한 ‘음양역차후노복병’에 해당하는 사례다. 노복병에 적용하는 처방으로 '지실치자시탕'을 투여했다. 그리고 환자에게 증상의 발생 원인을 인지시켰다. 덧붙여 30분씩 조금만 앞당겨 잘 것을 당부하며 약복용과 함께 수면 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는 약 복용 후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조금씩 수월해지고 점차 낮에 졸리는 증상과 심한 두통도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약 6개월 후에는 수면시간을 정상으로 유지했고 몸이 처지고 우울했던 증상은 없어졌다.  
 
진리라는 것도 알고 보면 단순하다. 몰랐을 때는 쉬운 길도 어렵고 힘들게 돌아가지만 말이다. 진실은 내 가까이에서 언제나 답을 말하고 있어도 잘 보지 않으며, 바로 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몸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기본부터 챙겨봐야 한다. 지금 나는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 있는지 말이다.  
 
건강해지고 싶은가? 먼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부터 실천해 보라. 
 
노영범 대한상한금궤의학회 회장 neoherb@hanmail.net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news.joins.com/Digitalspecial/210)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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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범 노영범 노영범부천한의원 대표원장, 대한상한금궤의학회 회장 필진

[노영범의 소울루션] 그동안 한약은 보약이란 인식이 강했다. 병을 치료하는 건 양약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앞으론 한약도 치료 약으로 쓰이는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화학적 조합으로만 만든 양약은 강한 독성을 띨 수밖에 없다. 반면 한약은 생약 성분으로 이루어져 몸에 이롭다. 한약이 치료 약으로 사용된다면 양약이 쳐놓은 울타리를 허물어 의학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전문 한의사가 진단체계를 상세하게 소개한 '상한론'을 바탕으로 치료 약으로서의 한약을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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