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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의 시시각각] ‘검찰 정치’, 그 달콤한 유혹

중앙일보 2017.11.04 01:28 종합 30면 지면보기
고대훈 논설위원

고대훈 논설위원

검찰의 정치성은 숙명적이다. 권력의 명운과 철학을 좌우하는 수사에선 더욱 그렇다. 검찰이 비(非)정치적이라는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 검찰은 ‘수사 정치’를 매개로 권력과 공생하며 강력한 기득권을 유지해왔다. 이런 ‘무소불위의 정치 검찰’을 타파하겠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이다. 적폐청산은 누가 뭐래도 지난 정권을 겨눈 정치적 사건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에게 그 선봉을 맡겼다. 정치 검찰은 이제 사라진 걸까.
 

권력 의지가 실린 적폐 수사
하명·편파·성역 없도록 해야

우선, ‘권력의 도구론’을 따져봐야 한다. 적폐 수사는 독특한 패턴으로 움직인다. 지난 정권에서 생산된 문건에 대해 선별적으로 의뢰가 오면 수사를 진행한다. 청와대·국정원·교육부·서울시가 ‘발주’하고 검찰이 ‘하도급’을 받아 수사에 착수하는 이상한 구도다. 청와대는 툭 하면 ‘캐비닛 문건’을 흔들었고 국정원도 댓글 공작,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각종 의혹이 담긴 내부 문건들을 넘겼다. 검찰의 자발적인 인지(認知)가 아닌 위탁에 의한 수사란 얘기다.
 
말이 좋아 ‘의뢰’일 뿐이지 압력일 수 있다. 의뢰인들은 실체가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범죄라며 사방에 떠들어댄 뒤 검찰에 던진다. 그런 걸 수사 단서가 안 된다고 내팽개칠 수도 없고 ‘혐의 없음’으로 처리하기도 어렵다. 당연히 정치적 고려를 의식한다. 검찰을 권력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도구나 하수인으로 보는 과거 정권과 뭐가 다른지 의문이 든다. 하명(下命) 수사와 수사 지휘 논란은 그래서 나온다.
 
둘째, 표적·과잉 수사 여부도 중요하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을 동원한 사정(司正) 푸닥거리는 우리의 전통이 되다시피 했다. 노무현 정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이명박 정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 달러 수수 의혹 사건, 박근혜 정부의 포스코 등 공기업 표적 수사가 그랬다. 이번 적폐 수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세적이고 파상적이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 검사 240여 명 중 절반가량이 적폐 수사에 매달려 있다. 이처럼 대대적인 검찰 총동원령은 기억에 없다.
 
부패 수사는 환부를 도려내는 핀셋 수사가 정석이다. 검찰 스스로 개시한 것이 아니라 ‘의뢰 수사’이다 보니 혼란스럽다. “걸리면 다 까발려 보자”는 심산인지 저인망식 수사로 진행되고 있다. 마구 헤집고 칼질하는 외과식 수사는 많은 피를 흘리게 한다. 인해전술에 죄 없는 사람까지 겁이 들 정도다. 수사에도 절제와 품격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역(聖域)의 존재 여부다. 진 권력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뜬 권력에게는 엄두조차 안 낸다면 누가 봐도 공정한 수사라고 할 수 없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청와대에 ‘상납’되는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면 과거 정권 모두를 대상으로 파헤쳐 바로잡아야 한다. 적폐 수사의 시효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시절로 맞춰져 있다. 성역을 깨지 못하는 수사는 정치다.
 
죄 지은 자에게 벌을 주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형평성을 잃고 정치적 수사로 일탈해 버리면 한풀이와 보복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하명·표적·성역 남기기 수사라는 3대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치 검찰의 오명을 벗을 수 없다. 권력에 오염된 검찰이라는 비난을 자초하는 길이다.
 
수사에도 끝은 있게 마련이다. 당장은 누구에게 유리할 수 있지만 궁극적인 평가는 국민과 역사의 몫이다. 적폐 수사는 검찰에게 정치를 하라는 유혹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기개는 여전히 울림이 있다. 그 윤석열이 지금 적폐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그 달콤한 유혹을 잡을지 뿌리칠지는 그에게 달렸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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