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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풋풋하고 날카로운 풍자 그대로 … 다시 보는 박완서 작가 초기작들

중앙일보 2017.11.04 01:00 종합 24면 지면보기
문학이 있는 주말
꿈을 찍는 사진사 표지

꿈을 찍는 사진사 표지

꿈을 찍는 사진사
박완서 지음, 문학판
 
좀 더 오래 살아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써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고 박완서(1931~2011) 작가의 중편집이다. 여전히 싱싱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전집이나 선집으로 묶여 우리 곁에 있지만 일부 빠진 작품도 있었던 듯하다. 출판사는 1978년 열화당 초판 이후 절판됐던 작품집을 재출간했다고 밝혔다. 표제작과 ‘우리들의 부자’ 등 모두 4편이 실려 있는데, 작가 연보를 찾아보면 모두 70년대 중후반에 발표한 작품들이다. 70년 불혹의 나이로 등단해 부족한 작가 이력을 벌충이라도 하겠다는 듯 누구보다 숨 가쁘게 많은 작품을 쓰고, 인기 작가로 이름을 알리던 시기다. 그래선지 네 작품 모두 강렬하고 매력적이지만 ‘아직 무르익지 않은’ 풋풋함도 느껴진다.
 
표제작 ‘꿈을 찍는 사진사’는 작가가 이런 작품도 남겼나, 싶은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사랑에 빠진 남녀의 ‘애정 행위’ 묘사가 구체적이고 과감한데, 역시 40년 전 연애 풍속의 반영인지라 지금 기준으로는 복고풍을 대하는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글래머 몸매에 소학생 얼굴을 한 옥순과 조급한 휴머니스트 영길의 위태로운 사랑은 끝내 파국에 이른다. 정작 소설이 주목하는 건 사랑의 종말 따위가 아니다. 촌지가 일상화된 파탄 직전의 중학교 교육 현장이다. 달큰한 로맨스가 박완서 소설에서 이례적인 장면이라면 세태 풍자는 그의 장기다.
 
맨 앞에 실린 ‘창밖은 봄’에서도 세태가 위력을 발휘한다. 불행한 여인 길례는 난생처음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 아버지뻘 남편 정씨가 갑자기 사라지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점쟁이를 찾아간다. 하지만 신통하다고 이름난 백봉선생은 점 쳐주는 일에 대한 염증이 극에 달한 상태다. ‘수다는 고객의 것이지 결코 점쟁이의 것이 아니다.’ 고객의 고민을 눈치껏 때려잡아 감동시킨 다음 스스로 구체적인 내용을 털어놓도록 유도하는 게 점쟁이 영업 제1 강령이다.
 
‘우리들의 부자’는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의 내면에 똬리를 튼 속물근성과 허위의식을 작가 특유의 신랄함으로 한껏 까발린 작품이다. 하필이면 이름도 ‘강남여고’인 학교 동창생들이 동기 순복의 장애인 딸 혜나를 돕는 데 발 벗고 나서지만 정작 이들의 관심사는 자기만족, 공명심, 남들의 존경 어린 시선이다.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되는가.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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