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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친박 공천용 조사에 국정원 돈 사용 정황

중앙일보 2017.11.02 02:30 종합 1면 지면보기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총선 관련 여론조사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사용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를 포착했다고 검찰이 1일 밝혔다. 수사팀은 이 돈은 5억원 규모이고,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받은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 측의 횡령 및 국고손실 혐의와 청와대 관계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친박·비박 경쟁 치열 4·13 총선 때
TK 지역 진박계 경쟁력 여론조사
국정원서 5억 받아 비용 지불 의혹
당시 청와대 인사 “역대 정부 다 해”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4·13 총선을 앞둔 지난해 초 청와대가 새누리당 후보 경선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비용을 국정원이 대도록 했다는 국정원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청와대는 비공식적으로 여론조사 업체에 의뢰해 조사를 벌였으나 대금을 바로 지급하지 않았고, 이후 청와대 관계자가 국정원으로부터 5억원을 받아서 냈다는 게 검찰 조사 내용이다.
 
당시 새누리당에서는 친박계와 비박계의 공천 경쟁이 치열했다. 청와대 여론조사는 정무수석실이 주도했으며 대구·경북(TK) 지역에 집중됐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당시 정무수석은 현기환씨였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집권 4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여당 내에 친박 의원을 많이 포진시켜야 한다는 게 그때 청와대의 기본 인식이었다. 이른바 ‘진박계’(진짜 박근혜계라는 의미) 예비후보들의 총선 경쟁력을 알아보기 위해 은밀하게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청와대가 비밀리에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그 비용을 국정원 돈으로 낸 것은 선거 개입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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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따르면 청와대는 총선이 4개월가량 지난 2016년 8월 국정원에 여론조사 비용을 요구했다. 정무수석이 김재원(자유한국당) 의원으로 교체된 뒤였다. 청와대 외부의 한적한 도로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실 직원이 국정원 간부로부터 현금 5억원이 든 가방을 받아 이를 여론조사 업체 측에 건넸다. 검찰은 지난달 31일 이 돈을 받은 여론조사 업체 A사를 압수수색하고 업체 대표 이모씨를 불러 조사했다. 이씨는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 출신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국정지지도 조사 같은 일반적 조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국정원 돈을 쓴 것으로 의심된다. 공무원의 정치 개입과 선거 개입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황정근 변호사는 “선거법 위반은 선거 판세에 영향을 주는 구체적인 개입 행위가 동반돼야 한다. 후보 경쟁력 확인을 위해 여론조사를 했다면 선거법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특정 정당의 선거 문제에 국민 세금을 쓴 것만으로도 문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관계자는 “총선 관련 여론조사는 역대 정부 청와대에서 계속해 온 일이다. 조사비용을 국정원 특수활동비로 충당한 것도 박근혜 정부 때만의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현일훈·손국희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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