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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불통 정부 닮아가는 청와대 ‘쇼통’

중앙일보 2017.11.02 01:57 종합 34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이명박 청와대를 출입할 적에 ‘노 홀리데이 얼리 버드’의 피로를 호소하는 불평과 불만을 자주 들었다. 새벽 별을 보며 출근하는 직원이 많았는데 황당한 건 출근 서너 시간 전에야 퇴근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땐 그게 ‘불통 정부’여서 그런 줄만 알았다. 할 일도 없이 주말에 출근한 일선 부처 간부들에겐 ‘들들 볶아대는 강요된 부지런함’과 ‘무데뽀 대통령’이 안줏거리였다.
 

투명한 청와대 만든다 약속해 놓고
보여주기식 머물면 달라진 건 뭔가

그러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나갔더니 당시 오바마 백악관은 한술 더 떴다. 백악관 비서실장이 새벽 5시30분 일과를 시작했는데 비서가 자료 준비에 나서는 건 훨씬 전부터였다. 전임 부시 백악관 대변인은 “매일 오전 4시에 대포가 날아가듯이 벌떡 일어났다”고 기억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밤 10시가 퇴근시간이어서 그 전에 퇴근하는 건 상상하기 힘든 분위기였다는 증언도 자주 들었다.
 
문재인 청와대에선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정시 퇴근을 독려하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고 한다. 정시 퇴근 이행률과 연가 사용률을 직원 평가에 반영한다니 그냥 흘려 보내는 방송만은 아닌 모양이다. ‘휴식 있는 삶’을 공직 사회와 산업계 전반에 확산시키려는 좋은 의도야 이해 못할 바 없다. 하지만 살얼음판 나라 사정에 적폐청산으로 눈코 뜰 시간이 없을 텐데 ‘그래도 되나’란 궁금증은 생긴다.
 
청와대와 백악관은 특수 기관이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놔서도 안 되는 나라의 ‘게이트 키퍼’다. 이중, 삼중의 잠금 장치가 당연하다. 어느 조직이건 그렇게 24시간 팽팽 돌아가는 심장이 있다. 누구라도 그런 심장부에서 일하는 때가 자기 인생의 황금기다. 적당한 휴식이 따르면 더 훌륭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러자면 2교대, 3교대로 직원 수가 확 늘어야겠지만 그런 뉴스는 들어보지 못했다.
 
공직자는 지치도록 일하는 게 보람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과로 사회를 없애겠다’는 대국민 약속이야 맞는 말이고 또 필요한 일이다. 그러려면 수뇌부는 고민이 더 많아지고 바빠지는 게 정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도 ‘칼퇴근’을 강요하는 건 아마도 팽팽 돌아가는 안전판이 따로 있으면서 그저 보여주기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MB 청와대의 ‘보여주기 위한 근면’과 극적인 대비를 만들려는 것일 게다.
 
청와대가 역대 처음 공개했다는 대통령 일정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안 관련 내각 보고’ 등 공개하나마나한 내용을 읽고 있자니 대략 난감이다. 사후인데도 동정은 알 길이 없고 심지어 언론에 보도된 내용마저 빠졌다. 경호 탓이라는데 미국 대통령의 휴일 골프 멤버는 사전에 알 수 있다. 일본 총리가 어느 식당에서 누구와 식사했는지는 신문에 나온다.
 
문 대통령이 ‘대통령의 24시간은 공공재’라며 공개하자던 건 이런 일정표가 아니다. 공개 약속은 ‘세월호 7시간’에서 출발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세월호 7시간은 7시간30분’이라고 흥분한 게 얼마 전이다. 그런데도 이런 난수표 같은 일정표라면 차라리 공약 취소가 당당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이명박·박근혜의 불통 청와대와 다르단 걸 내세우고 자극하겠다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잘못된 걸 고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바꾸려면 체질부터, 내 편부터 바꾸는 게 순서다. 야당 시절엔 ‘수첩 인사’라고 두들겨 패다가 정권을 잡자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에 “홍종학 증여는 상식적”이라 우기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방송사건 공기업이건 전리품 취급은 여전한데 전임, 전전임 청와대와 다르다니 ‘쇼통(보여주기식 소통)’ 소리를 듣는 ‘소통 청와대’다. 전임, 전전임 청와대가 출범 때 꼭 그랬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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