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개헌과 경제 패러다임 변화 강조한 시정연설

중앙일보 2017.11.02 01:51 종합 34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의 어제 국회 시정연설은 감성적이었다. 고통스럽던 20년 전의 외환위기를 언급하며 지금의 건실한 경제여건과 대비했다. IMF 충격으로 우리 경제의 저성장과 실업이 구조화됐고 우리 국민은 무한경쟁과 과로에 지쳐가고 있음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연설을 끝내고 퇴장하면서 현수막 시위를 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악수하는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지방선거 때 개헌’ 대통령 언급 의미있지만
권력구조 개편 빠진 원론적인 수준에 그쳐
‘재정 마중물’ 투입 땐 ‘혁신 펌프질’도 해야

대통령이 개헌 의지를 다시 강조한 점은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은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지방선거) 시기를 놓친다면 국민들이 개헌에 뜻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의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변화한 시대에 맞게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하고,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하며, 국민권을 보장하고 정치를 개혁하는 개헌이라는 개략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개헌과 함께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선거제도의 개편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처럼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은 새로운 국가의 틀을 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다만 대통령의 발언이 지나치게 원론적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은 아쉽다. 대통령 권한 축소를 포함하는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선제적인 의견 제시가 있었다면 개헌 논의의 폭과 깊이에 있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내년 지방선거라는 개헌 데드라인만 제시하고 개헌 책임이라는 공을 국회로 넘겨버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시정연설이 내년도 예산을 설명하는 자리였던 만큼 경제 얘기가 많았다. ‘사람 중심 경제’는 결코 수사(修辭)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작은 정부가 선(善)이라는 건 고정관념일 뿐이라며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429조원의 내년 예산안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7.1%의 증가율을 기록한 것도 그래서다. 청년 일자리 등을 위해 재정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내년 이후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게 문제다. 공무원 3만 명 증원, 최저임금 인상분 3조원 지원 등은 국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중물을 부었으면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다. 과감한 규제 개혁과 혁신 성장이라는 펌프질을 게을리하면 아까운 마중물만 허비하기 십상이다.
 
정부는 일자리 사정이 빠르게 호전되는 미국과 일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일본의 구인배수는 1.52, 미국은 0.91이었다. 취업 희망자 100명이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가 일본은 152개, 미국은 91개라는 의미다. 일본의 아베노믹스와 미국의 신성장 산업이 이뤄낸 기록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구인배수는 0.62로 취업 희망자 100명이 62개의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우리도 미·일처럼 혁신과 규제 개혁으로 성장 잠재력을 키우지 않으면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사람 중심 경제도,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도 성공할 수 없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